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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진성
  • 입력 2023.03.2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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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01:30.

이유 같지 않은 이유. 그런 게 있다. 나는 대본을 분석할 때나, 수업을 하면서 하는 질문, 심지어 삶을 살아가며 이유를 찾는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장면을 더 빠르고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습관이 어느덧 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꽤나 만족스러운 습관이라고 생각했고 자주 타인에게도 질문했다.

수업을 하고 면담을 하다 보면 권태기, 권태롭다, 혹은 지겹다는 답을 듣는다. '이렇게 해서 뭐가 될까.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안될 거 왜 하나.' 등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지치고 지겨울 때가 있었다.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았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마음에도 없는 '지치지 말자' 같은 되새김질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혼자 여행을 가서 충전이라는 명목의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내 정서에 크게 도움이 됐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공허는 또다시 몇 달 뒤에 나를 괴롭히고 되풀이되는 굴레에 갇혀 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연기를 그만둔 직장인 동료들을 본다. 똑같이 힘들어한다. 웃기다. 왜 출근하는지 매일 질문을 하고 하기 싫다고 내면 독백을 한단다. 그래도 출근을 한다. 마치 <유리동물원>의 톰처럼 '그래도 출근을 하잖아요!' 하며 직장을 간다. '차라리 쇠망치로 내 머리를 박살 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지만 출근을 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연기자로 결국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 권태감이 올 때에도 연기연습이든 오디션 지원이든 여행이든 뭐든 해야 한다. 하다 보면 기회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냥'이란 단어를 안 좋아하는데 '그냥' 해야 한다. 톰처럼. '내가 연습실에 환장한 줄 아세요? 그래도 출근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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