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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7

문정기
  • 입력 2023.03.27 21:43
  • 수정 2023.03.2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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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여신이여!)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7

 (평화의 여신이여!)

 마르마라 해를 넘어온 햇살은 너무나 눈부시지만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메인다. 하늘은 명징하고 눈이 시리게 푸르다. 마르마라 해는 북동쪽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와, 남서쪽에 있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에게 해와 연결된다.

 마르마라 해의 물길은 다르라넬스 해협을 통해 에게 해로 나가지만 내 발길은 유럽의 끝자락 땅의 구릉지대를 통해 에게 해 방향으로 가느라 오르락내리락 쌀쌀한 날씨에도 구슬땀을 쏟아낸다. 내 유모차는 내 몸이 건강할 때는 한혈마이더니 몸이 망가지니 돈키호테의 로시난테보다도 못한 한낮 시지프스의 돌바위 같다.

 어제는 하늘이 파랗고 날씨도 훈훈하더니 오늘의 다시 비바람이 물아치고 춥다. 힘들게 손수레를 밀며 몇 번째 고개인지도 모를 고개를 넘어 쉴만한 곳을 찾아도 안 보이기에 초로의 농부 부부가 집 앞마당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참 쭈뼛쭈뼛거리다가 “짜이 한 잔만 주세요!”했더니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안에 들어가 차와 함께 빵과 치즈에 버터까지 한 접시 들고 나왔다.

 튀르퀴예 국토의 97%는 아시아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고 3%가 유럽에 있다. 유럽 쪽 땅을 트라키아라 부르고 아시아 쪽 땅을 아나톨리아로 부른다. 이제 마리차 강만 건너면 그리스로 넘어간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친구와 같이 다르다넬스 해협의 세스토스에서 반대편의 아비도스까지 헤엄쳐서 건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의하면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애처로운 사랑이야기가 이 바다에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헤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아름다운 여사제였다. 잘 생긴 젊은 레안드로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사랑을 주저하는 헤로를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유혹하였다.

 둘 사이에는 헬레스폰스(다르다넬스) 해협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침내 사랑을 얻어낸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헤엄쳐 헤로에게 가서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이면 다시 건너왔다. 그러다 어느 폭풍이 부는 겨울밤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해변에 떠밀려온 연인의 주검을 발견한 헤로는 절망에 빠져 탑 위에서 몸을 던져 연인의 뒤를 따랐다.

 

 

레안드로스가 헤엄쳐 건넜다는 해협은 그저 신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여겼지만 한 청년은 모험심이 발동했다. 청년은 해협을 헤엄쳐서 횡단하는데 성공한 후 ‘세스토스에서 아비도스까지 헤엄친 후’라는 시를 쓰고 시집을 발표했다. 이 시집은 즉시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청년은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다. 그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느 날 한 초로의 노인이 지구 끝까지 달려서 갔다. 신화에 의하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면 ‘평화의 여신’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평화의 여신은 한 번도 사랑에 빠져 보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여신은 이제껏 평화를 꼭 움켜쥐고 다락방 깊은 곳에 숨겨 두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여신이 사랑에 빠지는 날 그것을 봄날 꽃비를 뿌리듯이 평화를 온 세상 가득히 흩뿌릴 것이라고 한다.

 그 사내는 5년 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구 끝까지 달려서 갔다. 그는 평화의 여신을 유혹하려  지구라는 세상에서 제일 큰 무대에서 마라톤이라는 행위예술을 펼쳐보였다. 때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불꽃같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고, 두 다리를 붓 삼아 땀을 먹물 삼아 지구를 화선지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달리는 행위 자체를 춤사위 삼아 어화둥둥 춤도 추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평화의 여신은커녕 여신의 치맛자락 끝도 보지 못 했다.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한 평화의 여신은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는 동안 그 초로의 노인은 몹쓸 병을 얻었다.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되어 이젠 그 사내가 남들 앞에 나서기도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는 좌절하여 실의에 빠졌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는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이 죽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였다. 남북은 그야말로 충돌 직전의 마주달리는 열차 같았다. 그는 맥 놓고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는 몸이 불편하고 남들이 보기에 불안해 보일 뿐 불구는 아니었다.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여장을 꾸렸다. 절룩절룩 이번에 동에서 서로 ‘평화의 여신’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늙고 병든 모습에 유혹당할 리는 없겠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감동을 선사하여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을 것 같아 위험한 바다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폭풍우에 휩쓸린다 해도 나의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두둥실 떠서 그녀가 사는 곳에 닿을 것이다.

 나와 바이런의 공통점은 다리가 절름발이라는 것뿐이다. 

 평화의 여신이여!

움켜쥔 손을 활짝 펴서 평화 

입 바람으로 불어 날려 보내 다오. 

훈훈한 에게 해의 해풍을 타고 흩날리게 

나의 영혼이여. 

내 그대를 찾아 헤매다 쓰러질 것이다.

봄 햇살을 맞아 나무에 

새싹이 트고 꽃망울이 트네. 

봄바람을 맞아 내 얼굴도 트고 입술도 튼다. 

내 마음속 소망은 

어느 하늘 아래 어느 햇살 어느 바람에 

새싹이 트고 꽃망울이 틀까나?

평화의 여신이여! -정리 j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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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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