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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권력1번지의 사람들이 배운 ‘국사 교과서’, 그들이 통과한 考試(고시) ‘한국사 시험’ 문제는 ‘부일역사배’ (이병도 등 일본제국주의 조선사편수회 참가자들과 그들의 제자 집단)이 쓰고 만든 것.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46)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3.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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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상수지적자 (수출입,여행 등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다는 표현)

 

당장의 생활고로 지쳐 있다. 코로나 19는 풀렸다지만 주머니 사정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더 어려워졌다.

 

로봇, 챗지피티 (인공지능이 질문에 대답해주고 논문도 써 주는 것) 등이 사람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당장 미국 중국의 대립 등으로 한국은 경상수지적자 (수출입,여행 등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다는 표현이다.)시대에 들어섰다.

 

기업이 적자 즉 손실을 계속 보면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가계가 계속 돈을 못 벌어 빌려서 생활하면 사실상 노예생활을 하게 되고, 노예같은 일자리도 없으면 죽음에 이른다.

 

한국의 적자가 큰 폭으로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순이익을 내는 몇 개의 글로벌 대기업은 국내에서 로봇을 도입하면서 대량 해고를 할 것이고, 순이익을 내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제외한 글로벌 대기업의 하청 중소기업들과 중견기업들은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주위에 자영업자 상인을 찾는 빈 가게가 늘어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 늘어간다.

 

2. 경제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사대事大하고 일본을 방문하다

 

웬 날벼락인가?

 

대한민국 권력1번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갔다 왔다. 딱 맞는 속담이 있다. “혹 뗄려다가 혹 붙여갔고 왔다.”

 

대한민국 권력1번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부 잘하기로 유명하다. 변호사시험으로 바뀌기 전 사법시험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 시험에는 국사과목이 있다. 현재는 국사시험을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으로 바꾸었다.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민족정신을 북돋우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공무원이 된다는 것이다.

 

권력1번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만점을 먹고 통과한 국사 시험, 국사 교과서는 누가 썼나? 바로 이병도 등 일본제국주의 조선사편수회 참가자들, 그들의 제자 집단 현직 국사학과 교수들 ” (이하 부일역사배라고 한다) 이다.

 

부일역사배의 가르침을 3가지로 줄인다.

 

1) 한반도와 만주 접경지역이 한민족(조선민족)의 주 무대였다. 차이나 대륙은 진출한 적이 없었다. 한반도는 고대에는 북으로는 차이나의 식민지였고 (한사군을 말한다.), 남으로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때가 있었다. (임나일본부를 말한다)

 

2) 근대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로 이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3) ‘사대주의’ (힘 있는 자에게 빌붙음) 은 한민족이 선택할 유일한 외교전략이다. 미국이 없었으면 한민족은 독립할 수 없었다. 남북으로 갈리고 남북이 전쟁을 한 것은 미국의 적국인 소련(지금의 러시아)와 중공(차이나) 때문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때로는 차이나, 때로는 심지어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절대 미국을 배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부일역사배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한민족의 민족성에 노예근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했으며, 서로 당파싸움이나 하는 집단·지역 이기주의, 그리고 엽전은 안돼로 표현되는 패배주의를 은근슬쩍 심어 놓았다.

 

부일역사배의 가르침 사대주의에 물들어

 

힘 있는 자들에게 잘 보여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 즉 나의 경제공동체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권력1번지에 있는 나의 경제공동체들은 나의 경제공동체에 속하는 또다른 나와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경제공동체들은 시류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하여 왔다.

그러나 권력은 경제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다.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가 높으면 배는 침몰할 수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직설적으로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오르지 않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취업이 힘들어지면, 백성들은 정권 교체를 요구한다. 권력1번지에 있는 나의 경제공동체들을 바꾸라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라는 희한한 낱말에 휩쓸려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의 착취구조를 못본척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집권세력이 단 한번이라도 한국이 잘살고 민주화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을까? 승전국 미국에 사대하고, 미국이 시키는대로 과거의 식민지국가 한국을 도와주는 척했을 뿐이다.

 

지금도 일본은, 미국이 시키는대로 혹은 미국이 고치라고 지적하면 고치면 된다. ”라는 편한 생각으로 일본의 이익 최우선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4. 역사를 돌아보자. ‘일제·일본제국주의·지금의 일본 지배층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만주라는 이름으로 일제는 한민족의 역사를 지금의 차이나 동북3·내몽고자치구,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완전히 빼 버렸다.

만주라는 말을 제대로 쓴 것은 일제이다. 그 전에는 요동이었다. 심지어 일제가 사용한 관동은 산해관 동쪽이라는 표현이다. 일본 관동군 의 관동그 단어이다.

 

놀라지 마시라! 산해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차이나가 주장하는 곳이다. 지금 차이나 북경에서 동쪽으로 300km 떨어져 발해만(황해)에 접한 해안 도시 진황도 시에 있다. 진황도 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에는 섬이었던 모양이다. 진황도 인근의 산맥이 바다에 닿아 있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사실상 진황도시 동북쪽에서 황하가 있는 서남쪽으로 진출할려면 반드시 산해관을 통과해야 했다. 여진족 청나라가 차이나를 지배하기 전까지 차이나는 진황도시 동북은 차이나의 역사무대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일제 일본 관동군이 괴뢰국 만주국을 세워 조선총독부동북을 사실상 관할하도록 한 사실은 강조되지 않는다. 청나라 왕조 이전에 만주족은 없었으며, 청나라 왕조 자체도 스스로를 만주족이라고 한 경우는 없다. ‘동북이라는 지명을 청나라 왕조가 사용했다. 한민족은 말갈족,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해 왔다. 심지어 동북지방에 사는 한민족에게는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며 조선족 (차오씨엔주~) 혹은 선족(씨엔주~)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최소 산해관 동쪽 발해만 일대의 만주지역을 조선과 청나라의 접경지역으로 한민족의 역사무대에서 사실상 빼버린 세력은 조선왕조와 역사가들이 아니라, ‘일제 일본제국주의 지금의 일본이다!

 

실제 동북지방에서 같이 살았던 청나라 왕조와 조선은 같은 민족 혹은 최소한 같은 연방 내에서 헤게모니 쟁탈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동북지방에서 한민족과 같이 살던 조선족, 여진족, 말갈족을 서로 구분해 버린 작자들이 일제와 부일역사배이다!

 

왕건이 세운 고려 초기의 강역은 어디이며,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시대의 장군일 때 고려의 강역이 어디였는지를 우선 밝혀야 한다. 진황도시 산해관을 남쪽으로 넘어서까지 고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지기 전까지 조선의 강역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밝혀야 한다.

 

5. ‘부일역사배들은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를 읽지 않았으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깃꾼들이고, 읽었으면 한민족 강역을 차이나 대륙에서 빼버린 매국노들이다. 최소한 황하 이북은 ()조선 혹은 조선민족의 강역이었다.

 

사마천은 사기 권27 史記 卷二十七 천관서 제5 天官書第五 에서 ()나라가 삼진(三晋)과 연(), () 나라(지역)을 병탄한 후에 화산과 황하 이남을 중국中國 이라고 불렀다.” 라고 기록했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도읍을 지금의 서안에 했는데 지금의 낙양 인근 지역을 중국이라고 불렀다고 기원전 300년 기준 1,000년 뒤인 기원후 736년에 편찬된 사기정의라는 역사책이 주를 달아 놓았다. 사기 원문에 나오는 河山以南에서 黃河이고 華山이라는 것이다.

 

원문

及 秦 并吞 三晉自河山以南者中國。〔

正義 河黃河也華山也從 華山 及 黃河 以南 為 中國也

( 출처 : 国学导航史記 卷 二十七 天官書第五

http://www.guoxue123.com/shibu/0101/00sj/027.htm )

 

삼진(三晋)

삼진(三晋)은 전국시대에 중국에 있던 조(), (), ()의 삼국의 총칭이다. 후에 지금 차이나 산서성山西省 (황하 안쪽 부분이다) 의 별칭이 되었다. 전국 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76년 또는 기원전 403~ 기원전 221)는 기원전 476(기원전 403)부터 진()나라가 중국 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며, 그 시기의 이야기가 주로 전국책(戰國策)에서 등장하므로 전국시대라 불린다.

 

正義

사기정의(史記正義)는 사기의 주석서로 당나라의 장수절(張守節)이 저술하였다. 사기집해, 사기색은과 함께 사기 3가주(史記三家注)라 불리며 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 의하면 당나라() 개원(開元) 24(736)에 저작되었다고 한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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