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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5

문정기
  • 입력 2023.03.19 07:22
  • 수정 2023.03.1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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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5

(이스탄불)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동서양을 함께 품은 땅, 이 땅의 주인은 수 천 년 동안 수도 없이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바람도 섞이고 문화도 섞였고 사람도 섞였다. 터를 잡고 살다가 정 붙이지 못하면 다시 떠나기도 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 새 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종착역이었던 이곳은 평화 시기에 장사꾼들이 중국에 가서 실크를 사다가 백배나 되는 가격을 받아 팔고 흥청망청 하던 곳이다. 그야말로 모든 인종과 물류가 이곳에 모였다가 각지로 흩어졌다.

터키 총영사 이우성 씨의 배려로 총영사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총영사 부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편안하게 유럽 구간을 달릴 수 있게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지진 피해 복구 작업 때문에 바쁠 텐데도 싫은 내색이 없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송 교수님 하고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같이 근무 했던 사이다. 텐트와 침낭 등을 장만하여야 했는데 자기가 쓰던 게 있다고 쓰라고 한다. 날씨가 쌀쌀했으므로 두꺼운 티셔츠 하나와 우비를 더 샀다. 이곳에서 이틀 있으면서 영양보충도 충분히 했다.

이제 아시아 구간의 여정은 마치고 유럽 구간의 시작점을 톱카프 궁전 앞으로 잡았다. 보스포루스 해협, 골든 혼, 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전망이 압권이다. 오스만 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시절 세상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그 맞은편에는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인 모방해 지은 초호화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인다. 성소피아 모스크와 술탄 마호메트 모스크가 바로 옆에 있다.

이곳이 매년 수백만 명씩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마법의 중심지이다. 출발에 앞서 지진 피해 희생자를 위해 잠시 모자를 벗고 묵념을 했다. 지난번 여정에서 성소피아 모스크 앞 이끼 낀 돌담 아래서 피리를 불며 동냥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의 큰 눈망울이 자꾸 눈에 선하다. 5년 전이니 지금은 많이 컸겠지. 앞에 햄버거 가게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친 게 못내 아쉽다. 집도 잃고, 나라도 잃고 피난 나와 학교도 못 가고 남의 나라 광광지에서 동공이 풀린 눈으로 피리를 불던 소년이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상선이 조심조심 왔다 갔다 하고, 갈매기들은 한가로이 하늘을 날고, 덩치 큰 개들은 길거리에서 비를 맞고 졸고 있고, 요트들은 해안가에 닻을 내리고 비를 맞으며 졸고 있다.

튀르키예의 길거리의 개는 유난히 덩치가 크다. 그래서 위험하기 그지없다. 일설에 의하면 정부에서 사료에 수면제를 넣어서 개들이 다 졸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졸고 있는 개와 지진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개가 대비된다.

우리 구조견이 네 마리 왔는데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위험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엄마와 아기를 구하는 등 공로를 많이 세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네마리 모두 부상당하고 붕대를 감은 발로 참사 현장을 누비며 양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멕시코 구조견은 순직했다고 한다. 터키 항공에서는 임부를 마치고 귀환하는 네 발 갖은 영웅들에게 화물칸대신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배려했다고 한다. 뉴스를 보면서도 훈훈하다.

막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양탄자 가게 주인이 유모차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들어와서 따끈한 짜이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 나는 잠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이를 컵에 따르면서 한국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우리 딸이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에 간다고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스탄불에는 어디에 가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스탄불은 지난번 대륙횡단 때도 거친 길이다. 실크로드에서 동서양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인도가 문화적인 충격을 안겨주면서 낯설었던 곳이라면 튀르키예는 사람들 생김새는 달라도 오랜 형제를 만나는 것처럼 편하다. 하지만 두 나라 다 흥미롭고 동화적인 몽상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는 면에서 똑같다.

튀르키예가 우리의 형제국이 된 배경에는 고구려-돌궐 동맹 역사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튀르키예의 옛 국호인 터키(투르크)의 한자 표기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돌궐이다. 돌궐국은 중앙아시아 초원에 세워진 유목 국가로, 인접한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고, 두 국가가 연합군을 만들어 당나라군과 싸우기도 했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에 겨우내 움츠렸던 풀들이 고개를 내민다. 나도 향기를 잔득 찍어 바르고 힘찬 출발을 한다. 봄꽃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봄꽃보다 진한 향기를 피울 수는 없겠지만 지구를 돌면서 묻혀온 사람들의 숨결의 향내가 날 것이다. 오늘도 그 향내를 육신과 영혼에 덧입히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빛의 정수를 모아 신이 온기를 불어놓은 피워 낸 것이 꽃이라면,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피와 땀을 뿌려서 키워내야 할 것이 평화이다.

사람들의 가슴에 불씨를 점화시키기 위하여 반신마비의 몸을 일으켜 세워 나선 길이다. 나는 아무 것도 잘 할 수 없기에 그저 은근과 끈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오래 달리기를 선택하여 평화를 위해 헌신할 것을 서원했다. 그마저 뇌경색에 걸려 마비가 되어서 오히려 잘 됐다고 하였다. 사람들 뇌리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통일의 의지, 몇몇 사람들만 광장에서 외치는 울림 없는 외침을 증폭시켜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려면 불쌍한 모습으로 절름걸음으로 눈물겹게 뛰는 모습을 연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겁쟁이라네

통일운동은 오늘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나섰지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은 피 흘려 싸웠지

나는 겁쟁이라 피 흘려가며 모진 고문 받아가며

독립운동을 할 수 없어서

땀 흘려서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었어!

온 세상에 땀 뿌려

시큰둥한 사람들의 가슴에 휘발유처럼 뿌려

불 붙이려 길 위에 섰어.

불씨가 되어 광인(狂人)처럼

여기저기 널뛰며 날아들려고 길을 나섰다네. -정리 j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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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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