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1) ‘부여’를 추적하면서 ‘연’을 추적하게 되었고, 이제 ‘발해(군)’을 같이 추적한다.
2) 사기 화식열전은 “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也。燕 은 발해와 갈석 사이의 한 도시이다. 南 通 齊、趙,남으로는 제나라 조나라와 통하고 (중략) 北鄰烏桓、夫餘, 북으로는 오환, 부여와 붙어 있다. 東綰 穢貉、朝鮮、真番之利。 동으로는 예맥, 조선, 진번과 남북으로 줄을 이어 붙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勃、碣之閒 발갈지간 즉 발(해)와 갈(석) 사이는 어디인가?
2. 발 勃
1) 한나라 시대에는 발해군이 있었다. 이 때의 ‘발’은 勃 삼수 없는 발이다. ‘발’이라는 지명 혹은 성씨 씨족이 있었다는 말이다. ‘발해’는 물이 있는 강, 호수, 바다가 아니라 ‘발’씨의 땅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발’은 ‘밝’ 즉 동이족을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1-1) 차이나 역사에서 한 글자 로 나오는 경우, 漢字(한자)의 뜻과 관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차음문자이다. 부르는 소리 음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다. 차이나 역사서를 보면 발음을 달아놓은 것이 아주 많다. 대부분이 성씨가 되고, 고향이 된다. (부록 참조)
勃海郡,戶二十五萬六千三百七十七,口九十萬五千一百一十九。縣二十六:浮陽,陽信,東光,阜城,千童,重合,南皮,定,章武,中邑,高成,高樂,參戶,成平,柳,臨樂,東平舒,重平,安次,脩市,文安,景成,束州,建成,章鄉,蒲領。
1-2) 통상 삼수 ( 水)가 붙으면 어느 지역에 흐르는 강을 말한다.
즉 ‘발勃’이라는 지명, 인명 옆에 흐르던 강이 ‘삼수있는 발渤’인 것이다. 帶(대) 지방에 흐르는 물이 삼수 대(체) 滯(체) 이고, 玄(현) 지방에 흐르는 물이 삼수 泫(현) 이고, 端(단) 지방에 흐르는 강물이 삼수 湍(단) (여울 단) 이고, 胃(위) 지방에 흐르는 물이 삼수 渭(위) 이고, 單(단) 지방에 흐르던 물이 삼수 潬(단) 이다.
1-3) 발음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右阜傍(우부방) 이 붙으면 그 지방 땅 자체를 말한다.
單(단) 옆에 우부방이 붙은 것이 鄲(단) (통상 조나라의 서울로 알려져 있다) 이고, 甘(감. 달다 중심이 되는 맛) 옆에 우부방이 붙은 것이 邯(한 혹은 감)이다. 邯鄲 은 통상 ‘한단’으로 읽는데 사실은 ‘감단’으로 읽는 것이 글자 만드는 원리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한서지리지 위군 조에서 안사고는 ‘한’으로 읽는다고 토를 달아 두었다!
1-4) 한서지리지, 기주, 위군 본문이다.
魏郡,高帝置。莽曰魏城。屬冀州。(중략) 邯會,侯國。〔一0〕 (후략)
본문에 달린 10 번째 주석이다.
(전략)
〔一0〕張晏曰:「漳水之別,自城西南 與 邯山之水 會,今城旁 猶有 溝渠在也。」師古曰:「邯 音 下安反 ‘ㅎ‘ 과 ’안‘ 반틈씩 ’한’으로 읽어라。」
(후략)
2) ‘발勃’ 이라는 지방에 가까운 물이 ‘발해勃海’ 일 수 있고, 이를 군의 이름으로 한 것이 발해군이다.
‘발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渤海(삼수변이 있는 발해)라면,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也。”에서 碣 은 태행산맥 서쪽 기슭 어느 지방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발갈지간이 되는 것이다.
‘발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渤海(삼수변이 있는 발해)가 아닌 호수나 강인 발해 (삼수변이 없는 발해)를 말한다면 매우 복잡해 진다. 발 과 갈이 너무 가까우면 안 되고, 어느 강이나 호수가 발 이라 불렸는지 일일이 찾아보아야 한다. 하여튼 ‘발’은 강 가운데에 있는 바다같이 넓은 호수를 지칭할 수도 있다. 황하나 황하와는 다르지만 지금의 발해로 흘러들어가는 강 즉 호타하 등을 부르는 말로 ‘발해’가 쓰여졌을 수도 있다.
3) 勃을 渤 (이하 삼수 발이라 한다)로 고쳐 부른 것은 수나라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삼수발渤’ 이 나오는 역사책은 수나라 이후에 삼수 없는 ‘발勃’을 고쳐 쓴 것인가?
4) ‘사기 조선열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渤 로 기록하고 있으니 수나라 이후에 삼수없는 발勃 에서 삼수 있는 발渤로 고쳐 쓴 것인가?
한나라 수군은 ‘제齊’에서 발해를 떠서 (부발해 浮 渤海) 왕험에 먼저 닿았고, 육군은 요동에서 출발했다. 요동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다음 줄에 ‘요동병’이 뚜렷이 있다. 육군대장 좌장군의 부하 졸정卒正 ‘다’ (정다?)는 요동병사를 이끌고 선공했으나 패하여 참수되었다. 수군 누선장군 양복은 제나라 병사 7천명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닿았다.
其秋, 遣樓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 荀彘 出 遼東 討右渠.
右渠 發兵 距險. 左將軍 卒正 多 率 遼東兵 先縱(총), 敗散, 多 還走, 坐法 斬.
樓船將軍 將 齊兵七千人 先至 王險
4-1) 발해를 건너든 (渡), 따라가든 (浮 . 원문은 渡 가 아니라 浮 이다) 발해라는 호수 혹은 강에서 가까운 조선의 수도 왕험 가까이에 한나라 수군이 먼저 도달한 것이다.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는 “왕험이 한반도 평양이고, 한나라 육군은 지금의 요양시 (당시 요동)에서 출발하였고, 한나라 수군은 지금의 산동반도 위해시나 어디에서 7천명이 바다를 건너(渡) 한반도 평양에 왔다.” 는 것이다.
배 한척에 50명이 식량과 물과 병장기를 (말은 태우지 않는다고 치자) 가지고 탄다고 해도 140척이 일시에 황해를 건너야 한다. 기원전 100년 경에 이게 가능했을까? 140척의 돛단배를 만들려면 얼마나 걸려야 할까? 그당시 한나라는 산동반도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참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4-2) ‘사기조선열전’에서의 요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북3성에 있는 요동이 아님이 확실해졌다. 한나라 육군이 요동의 병사를 선봉으로 침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4-3) ‘도渡발해’가 아니라 ‘부浮발해’ 임으로 경우의 수는 두가지이다.
① 산동반도 북단에서 서쪽 연안을 타고 수군이 북으로 올라가 지금의 진황도 시 인근에 있는 왕험을 공격한다.
② 지금의 산동성 하북성 접경 지역에 있는 호수나 황하 등의 강인 발해를 따라 호수나 강인 발해와 가까운 왕험을 공격한다.
한나라 수군은 제齊에서부터 발해를 따라갔다. 제齊는 어디인가?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제군에 임치현이 있다. 임치현을 지금의 치박시 임치구로 비정한다. 한나라 수군이 출발한 제齊 가 반드시 임치현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당시 임치현이 발해에 (강이든 호수이든) 가까운 곳인지 조차 확정할 수는 없다. (계속)
부록
부록1
魏郡,高帝置。莽曰魏城。屬冀州。戶二十一萬二千八百四十九,口九十萬九千六百五十五。縣十八:鄴,故大河在東北入海。館陶,河水別出為屯氏河,東北至章武入海,過郡四,行千五百里。斥丘,莽曰利丘。〔一〕 沙,內黃,清河水出南。〔二〕 清淵,〔三〕 魏,都尉治。莽曰魏城亭。〔四〕 繁陽,〔五〕元城,〔六〕 梁期,黎陽,莽曰黎蒸。〔七〕 即裴,侯國。莽曰即是。〔八〕 武始,漳水 東至邯鄲 入漳,又有 拘澗水,東北至邯鄲 入 白渠。〔九〕 邯會,侯國。〔一0〕 陰安,平恩,侯國。莽曰延平。邯溝,侯國。〔一一〕 武安。欽口山,白渠水 所出,東至列人 入漳。又有 浸水,東北至東昌 入虖池河,過郡五,行六百一里。有鐵官。莽曰桓安。〔一二〕
〔一〕 應劭曰:「斥丘在西南也。」師古曰:「闞駰云地多斥鹵,故曰斥丘。」
〔二〕 應劭曰:「春秋『吳子、晉侯會于黃池』。今黃澤在西。陳留有外黃,故加內云。」臣瓚曰:「國語曰『吳子會諸侯于黃池,掘溝於齊、魯之間』。今陳外黃有黃溝是也。史記曰『伐宋取黃池』。然則不得在魏郡明矣。」師古曰:「瓚說是也,應說失之。」
〔三〕 應劭曰:「清河在西北。」
〔四〕 應劭曰:「魏武侯別都。」
〔五〕 應劭曰:「在 繁水之陽。」張晏曰:「其界為繁淵。」
〔六〕 應劭曰:「魏武侯公子 元食邑於此,因而遂氏焉。」
〔七〕 晉灼曰:「黎山 在 其南,河水 經 其東。其山上碑 云縣 取山之名,取水之陽 以 為名。」
〔八〕 應劭曰:「裴音非。」
〔九〕 應劭曰:「拘音矩。」
〔一0〕張晏曰:「漳水之別,自城西南 與 邯山之水 會,今城旁 猶有 溝渠在也。」師古曰:「邯 音 下安反‘한’으로 읽어라。」
〔一一〕師古曰:「邯水之溝。」
〔一二〕師古曰:「浸音子衽反。虖音呼。池音徙何反。其下並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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邯溝=河北省肥乡县(區). 邯会=侯国(前127)封 赵敬肃王子刘仁 置,属 魏郡。治所 在 伯阳城(今 河南 安阳县西北) 魏 : 위, 외 두가지로 읽힘. 隗 높을 외 와 동자= 同姓(동성) 芈 양 울 미, 魏姓出自姬姓。商末周文王占领隗姓魏国之地,封其亲属于魏国 |
부록2
국사편찬위원회 사기 조선열전 주 32
樓船將軍楊僕從齊浮勃海 : 본문에 ‘樓船將軍楊僕從齊浮勃海’라고 하여 西漢의 樓船將軍인 楊僕이 齊를 출발하여 渤海에 떳다고 했으니, 이 구절은 衛滿朝鮮의 위치를 알게 하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齊가 지금의 山東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으므로, 당시의 渤海의 위치에 따라 楊僕軍의 항로를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渤海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戰國策』「齊一」에는 渤海가 齊國의 북쪽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史記』「河渠書」에는 黃河가 渤海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戰國策』은 戰國時代의 상황을 전해 주고 있고, 『史記』는 西漢의 武帝 때에 저술되었는데, 戰國時代의 齊國은 지금의 山東省이었으므로 戰國時代로부터 西漢時代에 이르기까지의 渤海는 지금의 渤海와 그 위치가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西漢의 樓船將軍 楊僕의 군대는 衛滿朝鮮을 치기 위하여 山東省을 출발하여 북쪽의 渤海로 항해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衛滿朝鮮의 右渠王은 이 楊僕의 군대를 맞아 싸웠으니, 衛滿朝鮮의 위치가 渤海의 北岸 즉, 지금의 중국 河北省 동북부로부터 遼寧省에 이르는 지역이었고, 한반도 북부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해진다.
이것을 밑받침하는 기록이 『山海經』에도 보인다. 『山海經』의 「海內北經」에는 ‘朝鮮은 列陽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위치하며 列陽은 燕國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同書「海內經」에는 ‘朝鮮은 東海의 안, 北海의 귀퉁이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朝鮮은 북쪽이 산과 접해 있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해 있었으며 중국 동해의 안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朝鮮(古朝鮮·衛滿朝鮮)의 위치가 한반도 북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한반도 남부에는 三韓 또는 그 전신의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朝鮮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면 그 남쪽은 바다와 접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山海經』은 朝鮮이 중국 동해의 안쪽에 있었다고 하였는데, 중국 동해는 한국의 황해가 되므로 한반도는 중국 동해의 밖이 되어 『山海經』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이상과 같은 문헌상의 기록을 밑받침하는 자료로서 13세기에 曾先之가 그린 지도가 있다. 그 지도는 그의 『十九史略通考』에 실려 있는데, 朝鮮의 위치가 압록강 밖, 발해의 북쪽에 있으며, 그 지도의 遼水는 그 흐름 방향으로 보아 지금의 灤河로 상정된다.
『十八史略』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曾先之는 南宋 말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라는 것은 주지되어 있거니와, 이 지도는 문헌의 기록이 지니는 모호함을 해결하여 주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그리고 이 지도는 『三國遺事』가 집필되었던 시기와 거의 같은 때에 그려진 것으로, 당시까지도 중국의 역사가들은 古朝鮮과 衛滿朝鮮의 위치를 한반도가 아닌 渤海의 北岸으로 인식하였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참조>
『史記』「朝鮮列傳」註 28)
渤海
渤海는 기원전 3∼2세기 이전부터 渤海로 불리워 왔다. 즉, 기원전 5∼3세기의 기록으로 이해되는『山海經』「海內東經」에 ‘潦水出衛皋山 東南注渤海 入潦陽’(東南至潦陽注渤海로 읽어야 될 듯 하다)로 나타나고 있고,『史記』「河渠書」의 黃河가 渤海로 들어간다는 내용 등을 불 때 기원전 3∼2세기 이래로 渤海는 변함없이 渤海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渤海는 遼東半島와 山東半島에 둘러싸인 지역으로 渤海灣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渤海의 이같은 위치확정에서 戰國時代의 齊지역인 山東半島에서 출발하여 향한 지역이 韓半島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올 경우 山東半島를 출발하여 발해만을 거쳐 요동반도 외곽으로 내륙을 끼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견해는 다시 한번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參考文獻≫
『戰國策』卷8「齊策」 1.
『山海經』卷13「海內東經」
『史記』卷29「河渠書」 7.
申采浩,『朝鮮上古史』(『丹齋申采浩全集』上卷, 1972)
리지린,『고조선연구』1964.
≪參考文獻≫
『史記』卷29 「河渠書」
『戰國策』卷8 「齊一」
『山海經』卷12 「海內北經」; 卷18「海內經」
尹乃鉉, 『韓國古代史新論』1986.
부록3
‘발勃’은 ‘밝다’ 의 밝인가? 발조선의 ‘발發’
하나라 마지막 걸왕의 아버지 발
发(生卒年不详),夏朝第十六任君主,发的功绩之一是破格提拔当时养马的长者关龙逄为相(关龙逄的祖先是为夏朝饲养牲畜的牧正,为豢龙氏的后代,也称豢龙),使夏朝国势更加强盛。但是夏朝在他的儿子桀的统治下由盛转衰,走向灭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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勃 [bó]
(1)突然,忽然:勃然(a.突然,如“勃勃大怒”;b.兴起的样子,如“勃勃作色”)。
(2)变色的样子:勃腾腾(怒气上冲的样子)。
(3)旺盛,兴起:勃起,勃发,勃蓬。
(4)古同“悖(bèi)”,违背事理,惑乱糊涂。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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