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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601] 테너 박인수를 추모하며(1938-2023)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3.03.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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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미국 팝 가수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함께 부른 '퍼햅스 러브' 이탈리아 재즈 음악가 루치오 달라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함께 부른 '카루소' 안드레아 보첼리가 2009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맨유와 FC바르셀로나 결승전 때 부른 유럽 축구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식 응원곡인 헨델의 대관식 찬가, 보첼리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함께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이 노래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바로 클래식이거나 성악가들이 대중음악가들과 함께 불러 성악의 반열에 오른 장르를 초월한 애창곡이다.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라는 노래를 아는가? 성악과 다른 장르를 결합하는 ‘크로스 오버’ 물꼬를 튼 곡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시구(詩句)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 발매 이후 13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지금도 클래식 성악가와 대중 가수의 협업인 크로스오버의 대표적 명곡으로 꼽힌다. 198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클래식 음악은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때문에 ‘향수’를 발표한 뒤인 1991년 국립오페라단 단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명색이 한국 최고 대학의 교수로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단장으로 내정되기까지 한 국립 오페라단에서 '성악을 타락시킨 죄'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난 셈이다.

가수 이동원(1951~2021)과 함께 ‘향수’를 불러서 ‘국민 테너’로 불렸던 성악가 박인수(85) 전 서울대 교수가 3월 1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생 때부터 과일 행상, 신문 배달을 하면서 고학했다.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뒤 대학 4학년 때인 1962년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전곡을 부르며 성악가로 데뷔했다. 당시 피아노를 연주했던 동기인 신수정(81)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학창 시절부터 미성(美聲)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독일 가곡을 연주할 때면 생각나는 목소리”라고 말했다. 1967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대 오디션에 합격한 건 지금도 한국 음악계에서 회자되는 일화다. 1990~2000년 전국에서 2000회 이상 공연했고,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주역만 100여 차례 맡았다. 1990년대 ‘열린 음악회’(KBS)에도 단골 출연해서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데뷔 50주년이었던 2012년까지도 매년 50여 회씩 무대에 섰던 ‘영원한 현역’이었다.

 

팝페라라는 장르가 생긴 것도,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클래식 음악인이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도 테너 박인수가 음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들고 용기 있게 나선 덕이다. 성악가 김동규가 노르웨이 혼성 듀엣 ‘시크릿 가든’의 연주곡을 편곡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박인수에 이은 성악 대중화의 성공 사례다. 최근에는 성악가 김호중·길병민 등이 트로트와 성악을 접목해 대중 앞에 섰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인물들은 당시의 편견과 그릇된 시각을 깨트린 영웅들이다.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큰 틀을 마련하셨던 박인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삼가 평안히 영면에 드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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