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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쓰는감정] 피동, 피동형 문장

이진성
  • 입력 2023.02.0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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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01.00:03.

요즘 들어 쓰는 내 글들을 보면 나는 피동형 문장을 자주 쓴다. '하다' '한다' 같은 말보다는 '된다' '됐다' 같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 보니, 내 심리를 더 자세하게 나타낸다는 거라고 으레 짐작한다. 사실 대부분 능동형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쓰고 싶지가 않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음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된다' 내 의지로 하긴 했지만 뭔가 내 의지 밖의 무언가에 기대게 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삶이란 노선에서 내 맘대로 혹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경로가 있던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작법에 틀려도 피동형 문장이 좋다. 물론 논술과 논설문을 쓰던 고등학생 때는 그렇지 않았다. 정확한 게 좋았고 내 글의 의중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논문과 과제도 팩트 위주의 글이며 문장구조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날 내 일기를 보는데 우습기 짝이 없고 황량하게 보였다. 그래서 점점 물을 주고 꽃을 키우듯 글을 적고 다양한 색채를 입혔다. 나는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글들에는 묘미가 있다. 가장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썼던 동시. 글을 배우면서 논술을 위해 주로 쓰던 논설문, 대학 다니면서 눈이 빠지게 읽었던 희곡. 졸업하고 처음 본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어떤 글은 문학이고 어떤 글은 비문학이었다. 그래서 한 차이가 있고 매력이 있다. 어릴 때 중2병에 걸려서 시를 쓰곤 했는데, 그때 들은 말이 시적허용이다. 문법에 안 맞아도 표현이 전달되는 데에 용이하면 허한다는 뜻이다.

나의 피동사들도 이제는 시적 허용이다. 할 만큼 했으니 될 대로 돼라. 피동형 인생. 살이나 피 피동 쪄라. 나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조금 어긋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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