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2부 청춘예찬 12
떨어지고 나니까 깨지고 나니까
시가 쓰고 싶었다
인생은 가슴 뭉클 더 깊어졌다
그렇구나, 시인이 굳이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
펜대를 굴려야만 하는가
비를 노래하고 바람을 노래하면 그뿐
개똥 골목길 나무를 노래하고
새를 노래하면 그뿐
꾀죄죄한 절망과 희망 하냥 사랑하고
또 미워하면 됐지
싸구려 츄리닝 속
허여멀건 멀대 목 파묻으면 됐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으면 됐지
긴긴밤 와룡생 무협지도 끝이 났어라
밀려오는 대미의 진한 허무
씹고 또 씹었으면 됐지
삼선쓰레빠 찍찍 끌명
복개천 속 끈적한 그리움 찾아
귀 기울여 속삭이고 속삭이면 됐지, 흐흐흐
담배 피우는 고삐리들 만화방 모퉁이 굽돌아
그 꿀꿀함에 절고 또 절었으면 됐지
별에 찌들고 안개에 찌들고
개버즘 넓적한 잎
지린내에 쩌들었으면 됐지
망치고 나니까 청춘 다 잡치고 나니까
조지고 나니까 인생은, 이름은
외려 깊어졌더라 눈부시더라
찌그러진 봉고의 저, 빛나는 범퍼처럼
발가락이 닮았다
아들아
나는 네가 공부 못 하는 게
재수, 삼수 공부하고 공부해도
대학에 계속 떨어지는 게
너무 좋다 그래야 네가 나중
땀 흘려 몸으로 벌어먹고
피로 벌어먹고 살지
그래야만 어디에서 또 누군가
머리로 벌어먹고
입으로, 눈으로도 벌어먹지
하다못해 마음으로라도
벌어먹고 살 게 아니냐
아들아
그래 나는 네가 골통이라도
오히려 기쁘다 우리 머릴 닮지 않고
발가락을 닮았으니
전혀 아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