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맹강녀(孟姜女)를 아십니까? (동·서) 맹강녀하(江)가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산서성 황하 옆에 있었네!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8)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2.12.01 12: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환이 쓴 모든 글의 저작권은 이원환에게 있습니다. 유튜브 제작중임을 밝혀 드리오니 이원환의 글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맹강녀(孟姜女) 이야기는 중국에 전해오는 4대 민간 전설의 하나다. 진시황 (기원전 210년 사망)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천하에 인부 동원령을 내렸다. 제나라 여인이었던 맹강녀의 남편 범희량(范喜良)도 인부로 징용됐다. 혼인한 지 사흘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맹강녀는 길을 나섰다. 몇날 며칠이 지나 만리장성 축조현장에 도착했다. (위키백과 맹강녀 요약)

 

자그마치 2,200년 전에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은 진()나라에서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황하 서쪽 서안이 진시황의 수도였는데 황하를 건너 저 멀리 천진 위 진황도까지 가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서안에서 북경까지 육지로 직선거리 748키로미터, 북경에서 산해관까지 300키로미터 합계 1,048키로미터 산넘고 물건너야 되는데 그 시절에 고속도로는 없었다. 제나라 여인 맹강녀가 며칠만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다.

 

지난 호에서 사마천의 사기에서 부여의 위치를 추적하였다. ‘사기 화식열전원문을 다시 보자

1)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南通齊東北邊胡(중략)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연은 발갈勃碣사이에 있는데 북쪽으로는 오환과 부여가 인접했다

 

2) 1) 번문장 바로 위에 있는 문장이다.

然邯鄲亦漳河之閒一都會也北通燕涿南有鄭

한단邯鄲 은 장·(·)사이에 있는데 북쪽으로 연 , 涿과 통한다.

 

3) 2)번 문장에서 장·(·) 중의 는 현재의 황하로, 역시 강이름이라고 차이나는 해석해 왔다. 장하(漳河. 특히 장강)을 추적하다가 뜻 밖의 발견을 했다.

 

장하는 맑은 장하 즉 청장하()와 흐린 장하 즉 탁장하()가 합쳐지고, 합쳐진 장하는 위하와 만난다. 위하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흐르는 지를 구글 ( 및 바이두) 지도를 따라가다가 서맹강녀하 西孟姜女河를 발견한 것이다.

 

맹강녀하가 있으니 맹강녀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찾아보니 바로 옆에 있었다.

 

(·) 맹강녀하는 지금 신향시에 흐르고 있고 (·) 맹강녀하라고 불리고 있다. ‘신향시는 당연히 하북성 (황하 북쪽)이나 산서성 (태행산맥 서쪽) 에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신향시는 황하 북쪽에 있음에도 하남성’ (황하 남쪽이라는 의미)에 속하는 도시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황하 물길이 지금과 달랐다는 의미일 수 밖에 없다.

 

4) 신향시에서 동북으로 대략 1백키로미터 떨어진 곳이 은나라 유적지가 발굴된 안양시 (안양시에는 은나라도읍지라는 뜻의 은도구 (()()()가 있다)이다.

 

지난 글에서 서술한 대로 안양시에서 동북으로 약 60키로미터에 한단시가, 한단시에서 정북으로 약 150키로미터에 석가장시가 있다. 만약 현재의 한단邯鄲시가 사기가 쓰여진 시대의 한단邯鄲이었다면 연은 한단시의 북쪽 지금의 석가장 시가 되고 석가장의 동북쪽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 보정시 일대가 오환, 부여가 되며 석가장시 동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지금의 산동성 일대가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이 된다.

 

이제 수수께끼가 풀어진다.

 

(·)맹강녀하가 있는 신향시와 신향시 동북에 있는 안양시 사이 어디인가가 진시황의 진나라 그리고 뒤를 이은 한나라와 동이족(= 한민족)()조선의 경계 였다.

 

나라가 낙양이든, 서안이든 동()쪽에 요새를 지은 것이 사기조선전에 나온 요동외요요동외요에 있는 요동고새’ (遼東故塞요동의 옛 요새)이다.

 

(·) 맹강녀하 가까이에 있는 요동고새가 만리장성을 쌓던 맹강녀의 남편이 죽은 곳이다.

 

아래는 사기조선열전 첫 부분이다. 국편위 번역을 그대로 옮겼다.

 

朝鮮王滿 燕人. 自始燕時, 嘗略 屬眞番朝鮮, 爲置吏 築 障

조선왕朝鮮王 滿은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나라 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군리軍吏(군사와 관리)를 두기 위하여 국경에 성을 쌓았다.

 

秦滅燕, 屬 遼東外徼. 나라가 연을 멸한 뒤에는 요동외요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漢興, 爲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遼東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에 속하게 하였다.

 

5) 만리장성을 동북쪽으로 옮기면서 맹강녀 이야기는 맹강녀가 슬퍼서 바다에 빠져 죽었고 바다가 지금의 진황도 라고 전한다. (맹강녀 나무위키)

 

만약 원래 맹강녀 이야기는 맹강녀가 남편이 죽고 난 다음에 만리장성 공사장에 들어서서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강이 되었다.”고 한다면, 만리장성은 (·) 맹강녀하 근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직까지 ‘(·) 맹강녀하가 황하북쪽 하남성에 흐르고 있을 수는 없다!

 

6) 이제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한단邯鄲은 나라이름인가? 단순한 지명인가? 한단邯鄲이 나라이름이면, 이는 동이족 ()조선 아닌가? 사마천이 한단韓檀을 숨기려고 한단邯鄲으로 쓴 것 아닌가? 다음호에 알아보자. 장하지간 ·河之閒 과 같이.

한단邯鄲이 장하지간의 도시라고 하지 않았는가? 然 邯鄲亦 漳河之閒 一都會 也

은 발갈지간의 도시라고 하지 않았는가? 夫 燕亦 勃碣之閒 一都會 也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