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취. 내 가을에는 요 몇 년간 어떤 정취가 있다. 서른이 넘어서 매년 가을 정도에 작거나 큰 공연을 준비한다. 못했던 해도 있었지만 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내가 연극을 보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행동이다.
그래서 연습실에 연습하러 가는 길이 항상 가을이었다. 가을은 하늘이 현기증이 나게 퍼렇다. 파랗다고 하기에는 그 깊이감이 아주 대단해서 퍼렇다. 구름도 적다. 구름을 한 번도 흠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시월의 하늘에는 없어도 될 것 같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래서 보고 있으면 탄성이 나온다. 멍하게 창공의 깊이를 가능해본다. 크게 숨을 쉰다. 그러면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느끼하게 표현한다면 가을을 들이켜는 느낌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오프날이 많아서 꼭 연습을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생긴다. 그러면 미술관에 간다. 그림을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했던 나의 손을 잡고 어머니께서 미술관을 데려가곤 하셨다. 또 집도 가까워서 소품으로 매년 이맘때에 미술관과 동물원을 가곤 했다. 그러니까 가을에는 내가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주 과거의 아름다움을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 재작년에 연극 연습하러 가던 가을, 내가 연기를 직업으로 선택하려 했던 가을, 내가 그것을 좋아하게 됐던 마음을 쫓아간다. 어린 시절의 내가 미술관을 가려했던 그 길. 자꾸 그 시절, 과거의 아름다웠던 내 모습을 추억한다.
여름이 좋아서 가을이 멋진지 몰랐다. 가을에도 내가 좋아하는 게 많구나. 하늘, 단풍, 미술관, 동물원, 연극, 공기, 온도, 습도, 조명... 내일 문 열고 운전해야지. 그러면서 드라이브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해야지. 내일도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