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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 ‘모개 시절’ (5)

윤한로 시인
  • 입력 2022.10.0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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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1부 모개(木瓜) 시절 5

보리밭고랑 깜부기 훑치랴
냇갈에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으랴
거무튀튀한 사촌형들
여자 냄새 역한 사촌누이동생
나는 끼니 때마다 빨리 먹고 자리를 뜨려
고추장 한 가지로만 후딱 비벼먹기 일쑤였다
작은집에 내 별명은 고추장 벌거지가 됐다
―어머니는 두고두고 이 별명을 가장 가슴아파하셨지
어머니와 식구들이 그립고도 야속했다
심지어 밤마다 악을 쓰며 울던 모개와
감꼭지니 개떡을 놓고 다투던 작은누이까지도
엄청 보고 싶었다 내 벗은
분교 마당 한 켠 둥구나무 한 그루였다
사촌형을 피해, 그 나무에 기대면
이른 잘새들 왈치고
무엇보다 멀리 해거름을 바라는 게
슬프고 좋았다

분교 마을의 봄

우리 분교 마을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
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
먼 산엔
붉은 봄
하늘엔
뻐꾹 봄
손등엔
쓰린 봄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주던
아직도 작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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