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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80] 리뷰: 제5회 서초문화원 클래식판타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10.07 08:49
  • 수정 2022.10.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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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같은 길이다.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서초구청에서 PCR 검사를 받기 위해 양재역부터 서초문화예술회관 야외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엔 길게 장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1시간은 기다리는 게 기본이었다. 그런 음침하고 우울했던 길이 문화의 향기로 밝고 화사하게 활력이 넘쳐났다. 가을비가 도리어 운치를 더해줬다. 분명 같은 길이지만 체감은 천지차이다. 문화의 힘이다.

오페라 카르멘 갈라쇼 후, 왼쪽부터 플라멩코 댄서 시현정, 바리톤 김동섭,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소프라노 박지현, 테너 신동원
오페라 카르멘 갈라쇼 후, 왼쪽부터 플라멩코 댄서 시현정, 바리톤 김동섭,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소프라노 박지현, 테너 신동원

예술의전당이나 유니버설 아트센터 같은 홀에 가면 연주회 관람 분위기 조성 및 안내라는 명목으로 관객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고압적이고 융통성 꽉 막힌 하우스어셔와 매니저들로 인해 기분만 잡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잔칫집에 초대받은 손님 맞듯 정성을 다하는 전문적인 교육받은 스태프들의 친절하고 화사한 응대가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든다. 음악회가 7시 시작이나 여유 있게 도착해 문화예술회관 야외주차장에 마련된 푸드트럭에서 닭강정에 수제 맥주를 한잔한다. 음악회 전에 기름기 있는 음식이 부담스럽다면 치맥은 공연 후에 여흥으로 즐기기로 하고 보리빵이나 스시 한 접시로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까지 살짝 흩뿌린 가을 저녁 공기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제 앉아서 오늘의 콘서트를 즐겨야지 하고 있으니 아직도 못 고쳐진 관변 음악회 티가 필자의 심기를 거스른다. 물론 행사라는 관점에서는 공연한 딴지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필자같이 순수하게 음악회를 즐기러 간 사람은 내빈소개하면서 각 지역마다 계시는 의원 나으리(국회, 시.구 등)나 단체장들의 인사말씀은 질색이다. 어느 내빈의 말마따나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온 관객들 앞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식은 삼가고 거절하는 게 성숙한 문화의식이다. 홍익표 의원은 인사만 하고 가는지 알았는데 다행히(?) 1부 <사랑의 묘약> 끝부분 '여자란 알 수 없는 동물이야' 아리아 때 다시 들어오더라. 다시 와서 다행이다. 그냥 얼굴만 비추고 가버렸다면 괜히 안 좋은 인상만 남길뻔 했으니....

서초문화원의 클래식판타지 팻말
서초문화원의 클래식판타지 팻말

무대 위의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꿔다만 보릿자루인가? 높으신 분들 마이크 잡을 동안 그저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드디어 풍악이 울리는가 했더니 이번엔 지휘자 서희태가 마이크를 잡고 오페라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센스쟁이 서희태는 간결하면서도 요점만 딱 집고 곧바로 음악으로 넘어갔다. (덕분에 서희태가 서래마을에 사는 서초구민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건 덤) 역시 현장에서 수많은 무대를 끌어온 노련한 지휘자답다. 분위기 파악과 낄끼빠빠를 제대로 안다. 하긴 그나마 작년 11월의 도봉구에서 열렸던 어느 콘서트에 비하면 오늘은 양반이다. 그때는 구청장이 지각해서 기다렸다. 그리고 온 동네방네 귀빈들 다 소개하고 마이크 잡고 시작 시간은 30분이나 훌쩍 넘겼으니 말이다.

1부 '사랑의 묘약'을 마치고, 좌로부터 테너 전병호, 소프라노 박지현, 베이스 전태현, 바리톤 김동섭
1부 '사랑의 묘약'을 마치고, 좌로부터 테너 전병호, 소프라노 박지현, 베이스 전태현, 바리톤 김동섭

성악가들이 핀마이크를 쓰고 오케스트라도 마이크가 부착되어 있어 음악적 기량을 평하는 건 보류다. <사랑의 묘약>에선 중간중간 한글로 개사했다. 역시 알아듣는 말이 나오니 관객들의 반응이 급 달라지고 친밀해진다. 음악적 뉘앙스와 예술성은 포기하더라도 오페라 대중화를 위해선 원어 대신 번역해서 한글로 불러야겠다. 이미 국제화 시대에 언어적 제약은 오직 오페라와 가곡이라는 장르에만 남아 있는 형편이니..... 2부의 <카르멘>은 한글 없이 순수하게 원어인 프랑스어로만 진행되고 코미디가 아닌 비극이라서 그런지 주옥같은 선율과 이국적인 다채로운 색채에도 불구하고 웃고 즐기는 재미는 감소했다. '꽃노래'와 '아무것도 나를 두렵게 할 수 없어' 같은 순수 감상용 아리아 그리고 마지막 '당신인가요? 나라오!' 같은 2중창의 극적인 긴장에 언어적 제약이 따른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이 사람을 알아볼지 안다. '하바네라'에서 그녀에게 꽃을 받았다. 나도 답례로 크게 브라바를 3번 외쳐줬다. 음악회를 끝나고 나오니 평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양재역 인근은 불야성이다. 음악회를 즐긴 관객들이 노천카페로 모여든다. 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서초의 밤은 더욱 깊어만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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