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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감정은동쪽에서떴다가서쪽으로사라졌다

이진성
  • 입력 2022.10.05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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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5.01:36.

감정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사라졌다. 눈을 뜨고 엄습하는 분위기가 있다.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생체에서 보내는 신호가 있다. 어떤 계기도 없이 그런 날이 있다. 그래서 나는 호르몬의 노예임을 빨리 자각한다. 제아무리 정신력으로 이겨내려 애써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강한 우울감이 있다. 그렇게 정신력이 강하면 총 맞고도 살아보라지.  

 

그런 날이었다. 해가 뜸과 동시에 우울감이 격정적인 날. 다른 곳에 집중하려고 애써 책을 읽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는 듯이 작가의 공간을 유영하면서 현실의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면 좀 차분해지거나 중화되곤 한다. 그래도 안되면 일을 더 열심히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나를 밀쳐오는 현실에 내던졌다. 할 일을 찾아서 헤맸다. 다른 생각이 나를 공격하지 못하게, 항체와 바이러스가 싸우는 것 같았다.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락을 한다. 친목과 유희를 빌미로 바쁜 척한다. 그리곤 애써 웃는다.

 

풋 하고 웃는다. 근데 그 웃음을 빈틈 삼아 어떤 농담이 들어왔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대화였고 그게 우울감의 벽을 뚫고 들어와서 단단한 긴장감을 흔들었다. 유능제강이라 했다. 부드러운 일에는 강한 벽도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서서히 벽이 무너지고 숨도 쉬며 편안해졌다. 

 

이런 날도 있다. 연관성이 없는 것이다. 이유 없이 우울함에 하루를 시작하고,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를 농담에 웃다가 시간이 흘러 차츰 가라앉은 마음으로 저녁 하늘을 본다. 감정이 본능이라면 호르몬을 탓하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서쪽으로 사라지길 애쓰지 말자. 쿡쿡쿡하고 웃는 게 고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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