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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72) - 이런 여자는 사랑해 줘야 한다

서석훈
  • 입력 2015.09.2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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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장화자가 ‘여자를 사랑해 본 적 있느냐’고 물어서 강호영은 ‘그런 넌 남자를 사랑해 본 적 있는냐’고 재치 있게 되물어주었는데 고작 돌아온 대답이 “난 인생을 사랑해” 였다. 인생? 좋지. 근데 인생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폼 나는 인생, 그저 그런 인생, 구질구질한 인생이 있는 것이다. 물론 왕년의 여배우이자 몸매와 열굴이 되는 그대는 폼 나는 인생을 구가하고 싶겠지. 하긴 어떤 인생인들 폼 나고 싶지 않겠나만은 이 여자는 그게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미모에 뇌쇄적인 몸매라는 무기를 지니고 있으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고 왜 생각하지 않겠나? ‘인생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여자의 얼굴은 보통 꿈꾸는 얼굴이 되기 쉬운데, 장화자의 얼굴은 꿈꾸는 게 아니라 현실적이고 냉정한 얼굴이어 강호영은 이 여자가 좀 무서워졌다. 인생을 얼마나 사랑할 거면 저런 얼굴이 되나 싶었다.
강호영이 여기 모텔에 온 이유가 오직 이 여자와 한 두 세 시간 쾌락의 세계를 누리자는 건데 이게 자꾸 연기되니 안타깝고 또 화가 나려 했다. 해서 일단 먼저 씻을 게 하고 욕실로 입장했다. 실컷 인생을 사랑해라. 나는 씻고 너만 사랑하다 세 시간 후에는 길거리에 서 있으련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빨을 닦고 샤워를 했다. 하다 보니 좀 전에 사우나에서 씻었는데 그 사이에 뭐가 묻었다고 또 씻나 싶었다. 여자와 누우면 먼지 한 톨이라도 묻어 있으면 안 되나? 어떤 여자는 남자의 땀냄새 심지어 구취까지도 원한다는데... 아무튼 몸에 물만 뿌리고 룸으로 돌아와 보니 장화자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니가 무슨 인생 운운 하냐. 어서 씻으렴. 가만 보니 혼자 보기 아까운 몸매였다. 대체 이 여자의 남편이라는 자는 또 어떤 훌륭한 육체가 있어 이 여자를 버리고 사리진 것인가. 어떤 돈 많은 년의 강아지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더라도 그 돈을 받아 이 여자를 종종 방문할 수 있을 터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여자는 매우 사랑해줘야 하는 것으로, 몸이 좀 고단하더라도 봉사를 많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장화자가 수건 두 장을 들고 욕실로 걸어갔다. 한 장이면 안 되나?
모텔이 뭐 남는 게 있다고... 빨래비용이라도 아껴줘야지. 두 장은 어디 어디에 사용하게 되나. 이런 의문을 품고 강호영은 텔레비전을 켜서 범죄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알몸으로 시청하고 있자니 범죄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전화가 와 받아보니 당나귀 형님이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이 왜소하고 초라한 양반이 술을 드셨나. 경마 할 돈이 없나 왜 전화를 해 오나? “네 형님....... 그러죠 내일 뵙죠.” 내일 경마장에 오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하니 형님은 신속하게 사라졌다. 같이 배팅하면 적중률이 높아지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욕실에서 수건 두 장을 사용하고 있는 장화자는 이제 곧 온전히 그만의 것이 될 것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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