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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권의 책: 이 한 권의 책: 토포포엠(Topopoem) 그 섬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9.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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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정 그림 & 이민호 시, 도서출판: 북치는 소년

토포포엠? 무식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또 먹물들이 고상한 척, 배운 척, 현학적인 척, '있어빌리티'를 시전하려고 만들어낸 단어인가 보다하고 책장을 넘기니 쭉 지명들이 펼쳐지고 각각의 장소에 화사한 드로잉,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찌푸려진 미간이 금세 환하게 풀렸다. 방랑벽이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내가 가본 장소부터 읽고 싶다. 서울에 사니 2부 '사라진 섬'부터 만나보았다.

도서출판 북치는 섬에서 발간한 차순정 그림, 이민호의 시의 토포포엠(Topopoem) 그 섬

이 책은 기행문이 아니다. 장소를 소개하고 거기에 얽혀 있는 스토리를 풀어주는 안내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부 '보이지 않는 섬'은 경기 지역을, 3부 ' 꿈꾸는 섬'에서는 한반도의 딱 허리가, 5부 '떠오르는 섬'에서는 전라도 & 경상도 등 남부를 다닌다. 짝수인 2,4,6부는 서울이 주 무대다. 먼저 그 동네의 모습 중 한 장면을 그린 차순정의 그림이 나오고 그 그림을 보고받은 감상을 이민호가 글로 남겼다. 물론 개중에는 이민호가 직접 가보고 거기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이나 감상을 덧붙인 곳도 있었을 것이다.

이민호 시인
이민호 시인

읽는 사람은 그래서 이질감을 느낀다. 내가 알고 가본 장소가 이런 곳이었나 하는 낯선 당혹감과 함께 가끔 살아온 세대가 다름을, 그리고 그 풍천노숙을 견딘 상황이 다름을 알게 된다. 나의 이대역 5번 출구는 마포아트센터를 넘어 2호선을 타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최루탄 냄새를 맡았다니 확실히 80년대 학번과 80년대를 관통한 사람답다. 그러고 보니 조각이 맞춰진다. 2부 사라진 섬의 바운드리(송구하지만 영어를 써야 딱 달라붙겠다. 영역, 범위라고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공덕5거리에서 북쪽으로 애오개를 넘어 자리 잡은 대흥동, 북아현동, 충현동 거기다.

연희네 슈퍼

6부 '높고 외롭고 쓸쓸한 섬'은 대신 서울의 방방곡곡이다. 홍제동에 갔다가 자양동으로 오고 신당동에 갔다 청량리로 간다. 홍제동 개미마을은 영화 '7번 방의 선물' 촬영지이기도 해서 서대문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인왕산 수정계곡 쪽으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림은 눈에 익지만 여기서 시인 김관식을 떠올리다니 역시 저자가 시인답다. 시인 김관식은 개미마을이 아닌 평지인 문화촌에서 살았지만 분명 여기까지 올라와 온 마을을 휘젓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 164쪽의 <바이올린 케이스>- 종로구 낙원동에 가서야 저자의 상황과 입장이 공감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맞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나 그 소리가 그 소리이긴한데 그걸 위해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목포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토포포엠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장소를 나타내는 토포스(Topos)와 시(Poem)가 만난 합성어이다. 눈에 비치는 삶터를 그리고 거기에서 시가 떠올랐으니 풍경을 넘어 의미 없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과 감각이 되살아나 자신만의 섬으로 떠오르면서 각자의 추억을 되살려준다. 그림이 시를 만났는데 난 음악가다 보니 그림과 시에서 음악이 떠오른다. 거기에 맞춰 음악을 새로 작곡하면 분명 너무 선을 넘은 거가 되겠지? 그럼 기시감이 아니라 재해석과 재창조로 홀로 둥둥 떠 있겠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작업에서 받은 영감의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애(場所愛)를 어떻게 거부해야 될까? 아~~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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