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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통구)의 장군총은 1천5백년 전의 무덤인가? 4천년 전의 피라미드인가? (2)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2.09.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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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중류 강변의 집안(통구)에는 구석기 유적부터 기원후 1천년 경까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명한 광개토태왕비가 있다. 이는 천천히 살펴 본다. 우선 장군총이라 불리는 유적을 보자. 차이나는 장군총을 고리(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부일강단사학은( 부일(附日) 즉 일본에 부역한다는 의미) 차이나와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받아들이고 있다.

 

전편에서 살펴 보았듯 장군총은 의문 투성이다.

1) 장군총 일대에서 고리 장수왕의 유물은 단 하나도 나온 것이 없다. 이는 경주의 무덤에서 어느 왕의 유물은 하나도 나온 것이 없는데 제 멋대로 00 왕릉, 00왕릉이라고 갖다 붙인 것과 같다.

2) 장군총 옆의 돌 기단부 (‘배총이라고 멋대로 부른다) 위에 고인돌이 있다. 통상 고인돌은 기원전의 석조물이라고 본다. 장군총이 장수왕의 무덤이라면 건축연대는 대략 기원후 500년 전후이다. 고인돌 기단부와 장군총이 동시대 것이라고 하면, 둘다 기원전의 석조물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장군총에서 고리 장수왕 관련 유물이 발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고인돌 형상을 띠고 있으나 묘실의 거대한 천장돌이라고 해석하는 강단사학계의 견해가 있다. (장군총 1호 배총. 장군총 뒤에 부속된 배장묘 유적으로, 규모는 작으나 역시 계단식 적석총이며 묘실의 거대한 천장돌이 남아 있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제공. “1500년 버텨온 동방의 금자탑만년 굳센 고구려 축조기술” 2020.11.29. 서울신문)

 

 

 

 

장군총에는 무덤의 입구라고 불리는 외부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닮은 것이 연상되지 않는가?

첫째는 이집트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이다. 많은 연구가 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통일된 견해는 없다. 통로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별을 관측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둘째는 경주 첨성대이다. 첨성대의 구멍은 통로라고 하기에는 적어 보인다. 별을 관측하는 관측구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장군총과 피라미드와 첨성대는 통로 및/혹은 관측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터넷사진캡쳐편집
인터넷사진캡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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