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쪽에 쓰는 감정] 비와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진성
  • 입력 2022.09.17 23: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2.09.16.22:31.

비 오는 날은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촬영을 하면서 밖엔 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산이 없어서 어쩌나 하는 동료 앞에서 미안하여 표정을 감췄지만 기분이 좋았다. 비가 내리는 상상을 하니 시원하겠구나 싶었다.

 

운전을 하며 오는 길에 비가 오는 게 왜 좋은지 생각해봤다. 그동안은 비 오는 게 좋았던 이유를,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 말로는 내 심상을 다하기에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 일만 놓고 봤더니 오늘의 비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하는 촬영과 신이 난 나의 기분이 더욱 나를 즐겁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았다는 나의 생각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나의 주관이 크게 반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비가 오면 그날을 특별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리라. 비가 오면 괜스레 사람들이 호들갑 떨고 무슨 일이라도 난 듯이 부산스러워지니까, 오늘 뭔가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징조로 여기는 느낌. 그 착각. 그게 착각이라도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돌이켜보면 비 오는 날에는 좋은 기억이 많다. 친구와 물을 튀기며 하교했던 기억과, 수업이 빨리 끝나는 조퇴 이벤트라든가, 텐트 안에서 친척형과 바다를 봤던 것, 우산 아래에서 닿을 듯 말듯한 팔이 간지러웠던 옛사랑의 시작과, 그냥 비를 맞았던 순간 까지도.

 

글을 쓰다 보니 나쁜 기억도 떠올랐지만 좋은 기억이라고 여긴다. 비라는 마법은 그 시원한 소리처럼 나쁜 기억도 시원하게, 쿨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기분도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비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우린 주거니 받거니 기분이 좋다고 서로 덕이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