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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열병이 태우고 간 자리

이진성
  • 입력 2022.09.0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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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4.20:20

 열병이 태우고 간 자리. 집에 오자마자 거의 기절하다시피 자리에 누웠다. 어떻게 집에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운전하며 졸며 허벅지를 쳐가며 왔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베개와 이불이 흠뻑 젖어있다. 열병을 앓아서 나오는 땀 때문이다. 이마에 손등을 얹어 보니 뜨끈하다. 밤새 진통제와 해열제를 삼키면서 씨름하다가 날이 밝은 창밖을 보면서야 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열이 어느 정도 내리니 지난밤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간밤에 온몸을 적시는 땀을 뿜어대는 순간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갖고 싶은 것이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 몇 주를 피곤하게 살았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만 그 못 갖는 이유가 나에게 있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해진다. 열병에 볼이 상기되는지 나의 모자람에 몸이 뜨거워져서 볼도 빨간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다. 열등감이 심해진 날에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나는 왜 이렇게 모자라지? 난 왜 이걸 할 수가 없지?' 같은 쓰레기를 스스로에게 버린다. 머릿속에 불특정 다수가 실컷 나를 비웃고 가게 둔다. 그런 뒤 '더 좋은 사람이 되자' 같은 뻔한 합리화로 다짐하곤 한다. 

 

어제의 그 열병 앓는 시간에도 그랬다. 그런데 어제는 좀 달랐다. 열이 나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하며 결론 또한 같았지만 타고 남은 나의 마음이 달랐다. 후련했다. 그동안은 해결하지 못했던 미련 같은 것이 많이 날아갔다.아파서 앓아누운 뒤에야 내 욕심을 포기하게 된 것 아닐까? 조금 덜 욕심내고 조금 덜 앓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열등감이 질병이라면 열병은 해열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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