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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그 불멸의 이름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2.09.03 11:42
  • 수정 2022.09.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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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충무공 이순신 복원 영정
충무공 이순신 복원 영정

성웅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에 태어나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전사한다.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 호는 기계와 덕암, 덕곡, 옛 집 부지인 백암 등이다. 시호는 난을 평정하면 무 자를 넣어 충무이며 조선 중기 무신이다. 외가는 아산이라 그곳에서도 지낸다

 이정과 초계 변 씨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정은 네 아들 이름을 중국 복희(복희씨), 요, 순, 우 임금을 시대 순서 따라 이희신, 이요신, 이순신, 이우신으로 지었다.

 자 여해는 어머니가 지었으며 순임금이 신하들 중 우임금을 지적하여 오직 너라야 세상이 화평케되리라라고 한 말에서 가져왔다. 개인적으로 너 여 자는 중국 강 이름이기도 하고 해는 화평, 어울리다, 이루다의 뜻이 있어 한산대첩도 연상된다. 기도 그릇, 도구고 계는 시냇물이나 산골짜기여서 거북선과 견내량을 상상해본다.

 5대조 이변은 홍문관 대제학이었고, 증조부 이거는 연산군 초에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병조참의를 했다. 조부 이백록은 조광조와 가깝게 지내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에 연루돼 화를 입고, 관직을 그만 뒀다. 이 일로 아버지 이정은 관직에 나가지 않아 가난했고 늦게 무관이 된다. 고려 때는 문반 가문이라 그런지 이순신은 시도 잘 지었고 용감하고 정의롭고 인자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흥행에 성공했다. 이순신의 명량대첩, 한산대첩, 노량대첩 시리즈 중 두 번째다. 한산대첩은 한산도대첩, 견내량대첩이라고도 하며 조선 선조 25년(1592)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크게 이겼다.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삼대첩의 하나이며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함께 한국사 삼대대첩이기도 하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해전, 1588년 스페인과 영국의 칼레 해전, 1805년 영국과 프랑스의 트라팔가 해전과 함께 세계 사대 해전이다. 칼레 해전 대신 악티움 해전이나 레판도 해전이 포함되기도 한다. 

 한산대첩을 당시는 견내량에 숨은 적군을 한산도로 불러내 전쟁한 거라 견내량대첩으로 불렀지만 최종 점멸지가 한산도니 한산대첩이 맞는 듯하다. 학익진이 신의 한 수로 일본 함선 47척을 격침하고 12척을 나포하였다. 영화에서 학의 날개 안에 폭 안길 때까지 기다리는 장군의 전술이 돋보인다. 한산도에 대한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전쟁 후에도 얼마나 고뇌했는지 짐작간다. 큰 승리는 대첩이라 부른다.

 명량대첩은 1597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의 대첩으로, 정조 때 왜선 330척이라 적혔지만 난중일기엔 130척 숫자가 정확히 보인다. 적이 볼까봐 글씨체를 흐린 걸 오독했다지만 업적을 높이려 한 듯하다. 노량대첩 1598년에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충무공이 난중일기를 쓴 이유는 정확히 기록해서 전투와 본인의 전술, 지휘에 오해가 없도록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잘못을 전가하는 군상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철투철미, 명명백백히 남긴 거 인지도 모른다.

 거북선은 한자로는 구선, 귀선이라 하며 지붕이 있는 배를 귀선이라 불렀으며 고려말부터 있었다. 고려 배를 본땄으며 실제 여부가 논란이기도 하지만 일본 배도 누각같은 부분 지붕이 있으니 가능한 구조다.

 이순신이 만든 건 아니고 과학자 겸 장수인 나대용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영화에서는 거북 모양이 들어가기도 하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장인이 제안한다. 어느 비평가는 이순신이 부각되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전쟁 영웅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라는 걸 강조하는 듯 싶다.

한산도 밤바다

바다에 가을 저무니

추위에 놀란 기러기 높이 난다

근심에 뒤척이는 밤

새벽달 활과 칼 비추네

Hansando Island Night Song

Fall falls in sea;

wild geese frightened by cold fly high.

Night tossing with anxiety

Wan morning moon shines on bow and sword.

 제목은 단어로만 했다. 한시 제목은 한산도야음으로 한산도에서 밤에 읊다인데 시제목은 간결함이 나아 짧게 했다. 수국은 물의 나라가 아니라 여기서는 바다다.

 원어 추광은 가을빛이 아니라 가을 경치, 가을 전경을 말하는데 그냥 가을 저문다가 더 시적이다. 새벽달 창에 들어 번역은 창이란 원어가 없어 적절치 않고 희미한 달보다 새벽까지 고뇌했다는 의미로 새벽달로 직역함이 낫다.

 시는 조사 생략이 간결성을 더해서 조사를 되도록 없앴다. f 슬랜트를 주로 했고 wild, wan 두운을 맞췄고 sea, anxiety 발음 각운을 했다. 한시를 한글시로 바꿀 때는 근심으로 보다 에 라임을 맞췄고 첫 글자를 세글자로 디자인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보는 온순한 현 국가표준영정은 상상화이고 기록에 의하면 기이하고 강하게 생겼다고 한다. 새로 그린 이순신 장군상은 왜군이 보기만해도 벌벌 떨게 생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에서 거북선 용머리가 이순신의 실제 얼굴과 닮은 듯하다. 용의 출현은 이순신의 출현이다. 안성기 님이 주연을 해도 어울릴 듯하다.

이순신이 명장이 된 이유는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이 있었다. 신사임당과 마찬가지다. 혼자 된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부모 잃은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길렀다.

 부인 방 씨는 친정에 도둑이 들었을 때 지혜롭게 잡았으며 이순신이 무과 급제를 위해 훈련할 때 패물을 팔아서 최선을 다했을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남편을 도운 현명한 아내였다.

 우리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하루 집에 안 들어오셔서 도둑 든 것처럼 집 안을 다 어질러 놓았더니 두 번 다시 외박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예전 어르신들은 우리보다 더 지혜로우신 듯하다.

 

한산도 달 밝은 밤

한산도

달 밝은 밤

수루에 올라

큰 칼 차고

깊은 시름할 때

어느

피리 소리

근심 더하네

              

Hansando Island Song

Hansando Island

Moonlit night

Going up watchtower,

with sword

when I worry deeply

somewhere

pipe sound

adds worry.

 난중일기에 1595년 8월 15일에 기록된 시다. 한산도가라고 한산도에서 읊다 제목이나 한산도 밤바다 시와 어울리게 단어로만 지었고 영시 제목은 다르게 했다.

 수루에 혼자 앉아라고 번역된 게 유명한데 원문은 수루에 올라다. 수루는 초소같은 곳이라 앉을 곳도 없다. 의역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도 시적이다.

 애를 끊다, 단장은 원숭이 유래 고사성어인데 새끼 원숭이를 잡아 갔더니 어미가 끝까지 따라와서 나중 배를 갈라 보니 장이 다 끊어져 있는 거에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근심을 끓다는 의미니 끊다는 오버다. 하지만 끓나니로 하면 시는 듣기도 좋아아 하는데 발음이 어색해서 기존 번역이 어울린다. 호가 원문은 강적으로 강적은 중국 강족의 피리 이름이다. 필자는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았다.

 이순신과 한 동네였던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어린 시절 이순신이 아이들과 놀 때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눈을 쏘려 해 어른들도 그 집 앞을 지나려 하지 않았다고 썼다.

 한산대첩 하루 전 군영을 이탈한 부하를 참수해서 효시하여 기강을 바로 잡았다. 징기스칸이 어릴 때 이복동생이 도둑질했다는 이유로 죽여 그 아들도 사랑했던 징기스칸의 어머니에게 혼난 일이 있는데 그처럼 강인하고 완벽주의 성향인 듯하다.

 직속상관인 좌수사 성박이 첩인지 좋아하는 기생의 거문고를 만들려 오동나무를 베어오라 하자 관청의 물건이고 여러 해 길러 온 것을 하루아침에 벨 수 없다, 이 같은 큰 나무가 성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냐며 거절해서 미움받았다. 그의 강직함도 돋보인다. 나무 하나에도 마음을 쓰는 게 대단하다. 오동나무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그 마음도 더했을 거다.

무제

궁함과 통함은 하늘에 달렸으니

모든 일을 자연에 맡겨라

부귀는 때가 있어 맘대로 되지 않고

공명은 주인 없어 이리저리 가네

멀리 갈 때는 천천히 걷고

처음 갈 때는 넘어짐을 조심하라

도성 길 세상 나아가는 길

남의 뒤 가고 앞서지 말라

No Title

When door closes, another opens; it's up to heaven;

leave everything to nature.

Wealth and rank are moment so not up to you,

fame has no owner so goes here and there.

Walk slowly when you go far and

be careful of falling when you go for first time.

Way to capital city, way to world

Go behind others, don't be ahead of others.

 공자의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를 가난과 성공으로 하면 축소되고 이순신이 돈과 성공만 따지는 게 되니 저렇게 함이 맞다. 영번역할 때 궁즉통을 속담으로 처리해서 이해가 잘 되게 했고 is up to 라임을 살렸다. 한글시에서 멀리 이후 앞 부분 글자수로 디자인을 맞췄다.

 요새 유행하는 드라마 우영우에서 똑바로, 거꾸로 읽어도 같은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이 나온다. kayak, deed, rotator, noon, racecar 등으로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철자가 그대로인 영어 단어로 대체 번역했던데 wild goose 등으로 한다면 어감이 살지 않는다. 번역할 때 도착 언어도 잘 생각해서 속담도 이용하고 언어 기교도 맞춰야 한다.

 부사는 시의 임팩트를 떨어뜨리니 원어 오직 저 하늘, 마침내 멀리 갈 때 그대로 할 필요는 없다. 맘대로 되지 않고 원어 독찬은 맘대로 휘두른다 뜻이니 기존 번역 홀로 갖기 어렵다는 오역이다.

 이리저리 원어는 한자 번갈아 의미니 여기저기가 어울리지만 사람에게 가는 거라 이리저리가 낫고 영어에서는 같은 단어라 here and there로 했다.

 도성 길 원문은 구맥으로 중국 장안성 안 도로를 말하는데 여기선 도성 길로 하면 적당하다. 도성의 누런 티끌 속을 헤쳐 나아갈 길에라는 번역도 있지만 황진, 누런 흙먼지는 속진으로 속세의 티끌, 세상 여러가지 번잡한 사물을 칭하니 세상으로 번역함이 어울린다. 헤쳐 나아간다는 뜻도 원어엔 없다.

 원문 인후는 남의 밑이란 의미도 있지만 시어로는 뒤가 적절하다. 가편은 채찍질하지 말라, 재촉하지 말라 직역보단 뒤, 앞 의미 맞게 함이 낫다.

 본인의 경험이 우러난 시같다. 너무나 특출나 많은 시기 질투를 받았다. 잔 다르크가 영국군에 잡혔을 때 프랑스 왕은 구명하지 않았다. 잔 다르크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자신의 입지가 약해서였다.

 선조는 조현병을 앓았다 한다. 조선 최초 후궁 서자가 첫 왕이 된 사례라 그런지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이순신을 신임하기도 했지만 그의 인기가 높아지자 견제하고 원균 편을 들었다.

 여러 전투에서 전승했으나 모함으로 임진왜란 중 토사구팽하여 나중 벼슬 없이 군대 따라 싸움터로 가게 하는 백의종군시켰다. 순신의 친구 류성룡이 친구 칭찬을 하자 친하니 그러겠지라고 했다 한다.

 진중에서 읊다 시에서 임금은 나의 공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은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리라고 썼다. 그의 소외감도 느껴지고 세상 의미를 한자 사해로 써서 그가 바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임금 의미를 한자 하늘 천으로 써서 외면당해도 그가 얼마나 왕을 위하는지 언어 선택에서도 알 수 있다.

 왜군이 쳐들어 오지 않을 거란 낙관론이 있었을 때도 그는 왜군의 배를 연구했다. 폭이 좁아 가볍고 날렵해서 속도는 빠르지만 옆 부분을 치면 반파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우리 군함은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감 있고 견고했다.

 영화에서는 왜선도 네모 모양이라 변별력을 못 살린 게 아쉽다. 보통 총과 활이 싸우면 총이 유리하지만 그 당시 기술은 한 번 장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활이 더 좋은 병기일 수 있다.

 난중일기에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묘사하고 영화도 그런 장면을 잘 살려 멋졌다. 장군이 왜 전두지휘해서 유탄을 맞았나하지만 유럽 왕들도 그렇고 맨 앞 선봉장에 선 영웅들도 많았다.

 영화에서는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앞장 선 걸로 나온다. 왕이나 대신들간의 갈등으로 극단선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사는 자살하지 않는다. 책임감 강한 사람이 왜군이 또 쳐들어 올텐데 그런 선택을 할 리 없다. 전쟁은 전술이다. 울돌목이 단순히 물살로 이긴 줄 알았는데 난중일기를 보면 그보다 치열한 전투로 승리한다. 죽음을 알리지 않았던 이순신, 현대에 불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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