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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거머쥔 이재명, '문재인의 길' 따라 대권으로 향할 수 있을까

권용
  • 입력 2022.08.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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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로 석패한 뒤, 6·1 재보선을 통해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28일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쥐었다.

일찌감치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 등으로 불리며 초반부터 승리가 확실시 됐으며, '개딸'들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으며 아무런 이변 없이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에 따라 이 대표는 차기 대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며 이번 도전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치를 시험대에 올렸다. 당 대표를 거쳐 다음 대선에서 승리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 갈지, 대선 패배 후 곧바로 야당 총재가 됐다가 낙선한  이회창의 뒤를 이을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의 성과에 따라 대표직 수행이 대통령으로 향하는 약이 될지, 또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쉽게 대표직에 올랐으나 '이재명 방탄' 논란을 빚었던 당헌 개정 과정 등에서 빚어진 당내 계파 갈등 극복과 사법 리스크 해소, 총선 승리 등 적지 않은 고비들이 남아있다.

지난달 17일, 전대 출마 선언 당시 이 대표 본인 역시 "많은 분이 저의 정치적 미래를 우려하며 당 대표 도전을 말렸다. 저 역시 개인 정치사로 보면 위험한 선택임을 잘 안다"라고 밝혔다.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걸어온 이재명, 그는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소년공으로 일하며 가난에서 탈출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흙수저 출신에서 인권 변호사가 됐다.

이후 정치권에 발을 내디디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권주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초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의 쓴맛을 봤으며, 6·1 지방선거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이제는 정치의 가장 중심인 여의도에서 169석 거대 야당을 이끌어 돌아오는 총선과 정권 교체 등의 막중한 임무를 맡은 중책을 안게 됐다.

 

이재명은 경북 안동의 가난한 화전민 가정에서 5남 4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시계공장에서는 스프레이 작업 도중 후각이 상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어 골절상을 당하며 팔이 구부러진 평생 장애를 갖게 됐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구타에 시달렸던 이 대표는 이런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어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검정고시를 쳤다.

홀로 외롭게 공부하며 주경야독 끝에 스스로의 힘으로 검정고시를 통과, 이후 장학금을 받고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지난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로 석패한 뒤, 6·1 재보선을 통해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28일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쥐었다.(사진=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대학에 들어가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 공부하며 사회에 헌신하는 공익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한 이 대표는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이때 연수원 동기로 만난 4선의 정성호 의원은 지금까지 정치적 여정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이 대표는 연수원을 마치고 성남에서 개업해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며 시민운동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2006년 지선에서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낙선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실패를 경험했다.

 

앞선 실패를 교훈삼아 2010년에는 성남시장에 도전해 당선됐고 2014년에 재선하며 성공하는 행정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성남시장 첫 임기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성남시장에 재선하며 청년 배당,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등 정책을 추진하며 끊임없이 정부와 각을 세웠다. 이때 이 대표가 추진한 보편적 복지 정책들은 훗날 기본소득 등 그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기본 시리즈'로 이어졌다.

2016년에는 '최순실 게이트'로 전국이 시끄러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많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 존재감을 키웠다.

2017년 민주당 경선에서도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고 그 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경선에 실패한 뒤 경기도지사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당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문 진영과의 경쟁 끝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현재까지 상처가 남아 이 대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후 이 대표는 경기도정을 이끌며 기본 시리즈 정책을 구체화, 실행하며 대권 재도전을 준비했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 정부의 방역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는 등 강경하고 소신있는 결단력으로 행보를 이어갔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재정 당국가 각을 세우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주장하기도 했다.

확고한 정책 추진과 선명한 노선을 발판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힌 이 대표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도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결선투표 없이 집권여당의 후보로 대선에 나섰다.

하지만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부동산 민심, 높은 정권교체 여론과 대선 막바지에 터져 나온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의 악재로 아쉽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후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해 바로 정치권에 복귀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라는 공세와 비판이 이어졌지만,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0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원내에 입성하고 여의도내 정치 기반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번에 치러진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자로 출마해 권리당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박용진 후보를 쉽게 제압하고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이 밟았던 '대선패배→원내입성→당권→총선 승리→대권'의 경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민주당 내 마땅한 차기 대권 라이벌은 보이지 않지만 당 대표로서의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 대권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당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로 성공한 당 대표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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