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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통구)의 장군총은 1천5백년 전의 무덤인가? 4천년 전의 피라미드인가? (1)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2.08.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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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중류 강변의 집안(통구)에는 구석기 유적부터 기원후 1천년 경까지의 유적이 남아 있다고 평가된다. 1만여개의 무덤을 일일이 분류하기도 힘들다. 눈길을 끄는 두 개의 유적이 있다. 하나는 유명한 광개토태왕비다. 이는 천천히 살펴 본다.

우선 장군총이라 불리는 유적을 보자. 차이나는 장군총을 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래는 나무위키 장군총을 옮긴 것이다.

 

장군총은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장군총을 비롯,

 

배총 2, (필자 주 1) 주위의 무덤. 기단부 상부에 고인돌이 있다)

 

추정 제사시설 1,

 

배수구 1,

 

추정 부속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능원(陵園)을 갖는 구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군총은 강돌을 깔아 기초부로 삼고 가공된 화강암으로 기단을 형성한 후 그 위로 7개의 계단으로 구성하여 석재를 쌓아갔다.

 

(필자 주 2) 7개의 계단인지 혹은 9층 건축물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장군총에는 1,146매의 석재를 사용해 외면을 구성하였으며 그 내부를 강돌로 채웠다. 특히 장군총에 사용된 석재들은 태왕릉의 석재 가공도보다도 더욱 가공되고 대체로 일정한 규격으로 돌을 짜르는 등 한층 규격화되고 정치해진 석재를 사용하였다.

 

특히 장군총의 가장 밑의 계단인 1단 부분에 사용된 석재는 그 위로 쌓은 다른 계단에 사용된 석재에 비해서 훨씬 크다.

 

1단의 계단에 사용된 석재를 보면 살짝 들여쌓아가면서도 석재가 맞물리는 면에 과속방지턱처럼 턱을 두어 하중으로 적석총의 형태가 어그러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이러한 건축 기법 상에서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장군총을 적석총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이자 완성된 형태로 보는 것이다.

 

(필자 주 3) 고대의 건축물이 현대보다도 더욱 발달되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장군총이 반드시 기원후 5,6백년경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군총의 매장주체부는 평행 고임식의 천장을 갖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장군총의 밑에서부터 세릴 때 (헤아릴 때), 3번째의 계단 위에 묘실을 두었다.

 

무덤 현실의 한 변은 543~550cm의 정방형이고 높이는 510cm로 집안 통구 고분군 내에서 가장 가공도가 높은 석재를 사용하였다.

 

장군총보다 먼저 만들어진 태왕릉보다 규모적인 측면에서는 작아졌지만 매장주체부만 놓고 보면 장군총의 매장주체부가 태왕릉의 그것보다 2배가량 크다.

 

무덤의 정상부에는 난간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고 난간의 일부도 확인되었다.

 

이에 연구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한데 단순히 난간이 있다는 설, 나아가 적석총에 계단을 밟고올라가서 제의를 할 수 있었다는 설, 아예 무덤 위에 기와로 형성된 구조물이 있었다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장군총의 주변과 계단의 상면에서 기와나 막새가 출토되는 맥락을 보면 분명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도 볼 여지는 있으나 역시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 양상을 추정할 근거는 이 이상으로는 없다.

 

1) ‘나무위키사진의 배총1을 촬영한 다른 사진을 보자. 배총1, 배총2, 제사유적지 모두 나무위키설명하는 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배총1의 아래 부분을 보자. 장군총 무덤과 같이 화강암으로 보이는 석재가 4개 층으로 쌓여져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위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이다.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에 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고인돌은 윗부분이 평평하며, 내부에는 방이 마련되어 있다. 세워진 연대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유럽과 아프리카는 기원전 5,000~ 기원전 4,000, 동아시아는 기원전 2,500~ 기원전 수백 년 전후로 추정된다.(위키백과 고인돌)”

 

왜 동아시아의 고인돌은 기원전 2,500년으로 한정해 놓았는지 매우 불만이다. 이 역시 부일강단사학의( 부일(附日) 즉 일본에 부역한다는 의미)입장에서 무조건 한민족 역사를 줄여놓고 보자는 심보의 결과라고 본다.

 

배총1의 고인돌이 몇 년 전 것인지 조사해 보아야 하겠지만 양보하여 3천년 전 것이라고 하자. 고인돌 아래에 정교하게 가공한 4층의 기단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층 기단부가 장군총에 부속된 무덤이라는 주장을 고집한다면 두 가지 주장이 가능하다.

 

장군총이 고리 (고구리, 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이고 장수왕은 대략 5세기 후반에 사망했음으로 (장수왕이 49197세로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동의하기 어렵다)

4층 기단부는 기원후 5,6백년경에 만들어 진 것이고 그 위의 석축물은 고인돌이 아니라 단순한 장식물이다.

그 위의 석축물은 고인돌이지만 장례용이 아니라 장식용이다.

 

4층 기단부가 장군총에 부속된 무덤이 아니라 별도의 석축물이라고 가정하면, 4층 기단부는 고인돌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으며 세월이 흘러 4층 기단부 위의 건축물이 무너지고 그 위에 고인돌을 세웠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4층 기단부가 고인돌보다 오래 되었다면 최소한 3,4천년 전 건축물이고, 장군총이 동시대에 건축되었다고 가정하면 장군총 역시 3,4천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나무위키 사진 편집
나무위키 사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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