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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70] 김은혜가 플루트를 계속 불었더라면?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8.16 10:16
  • 수정 2022.08.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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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 요구가 컸던 대통령실 홍보수석실의 새 홍보수석으로 인수위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김은혜 전 의원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개편 시기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재 모든 참모들이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17일로 예정된 취임 100일 회견 준비에 몰두하고 있어 개편 시기는 그 이후인 주 후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올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지만 2위로 낙선했다. 

대통령실 새 홍보수석으로 유력한 김은혜 전 국회의원

6.1 지방선거가 끝난지 어언 두 달이 넘었지만 경기도지사 결과만큼 아슬아슬하게 당락이 갈리면서 그때의 숨막히던 레이스를 떠올리면 등에 땀이 다시 흐를 정도다. 몇몇 신문에서는 확실치도 않는데 당선이라고 오보를 내었다가고 부리나케 신문 타이틀을 바꾸고 정정기사를 내고 사과를 하는 등 "정말 김은혜가 되었구나~~"하고 새벽에 텔레비젼 리모컨을 끄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경천동지가 되어 있었던 결과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에게 진 김은혜는 언론인으로 MBC 아나운서 최근에는 MBN의 앵커로서 브라운관에서 보았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낙선자 김은혜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다 학력사항이 눈에 번쩍하고 들어왔다. 선화예술중학교 졸업-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정신여자고등학교로 전학 가서 졸업!

선화예중과 예고는 필자의 모교 아닌가! 물론 필자는 김은혜보다 훨씬 어리니 같이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바이올린을 하는 김은혜와 동갑인 사촌누나 2명은 선화예고 출신으로 김은혜와 동기인 셈이다. 또 그 당시 필자의 거주지는 정신여고 바로 뒤에 있던 종합운동장역의 잠실 우성아파트였고 다시 사촌누나 2명을 소환하면 그 둘은 정신여중을 나오고 선화예고에 진학하였으니 김은혜와 거꾸로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보통 인문계에서 예체능학교 진학은 흔하고 반대는 드문데 왜 그랬을까? 또 김은혜는 그럼 예중과 예고에서 무엇을 전공했을까? 아나운서 또는 지금의 정치인 이미지로서는 성악 같은데? 아님 피아노? 결과는 의의로(?) 플루트였고 플루트를 그만둔 건 그녀의 선생이 입시비리에 걸려 음악에 회의를 품게 되어 본인도 진로를 바꾸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수소문해서 찾고 알게 되었다.

사진 갈무리: MBC 무릎팍도사

본인을 가르치던 플루트 선생이 입시비리에 연루되 구속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니 그때 김은혜의 상심과 좌절은 얼마나 컸을까? 오직 음악만 바라보고 음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던 한 학생이 본인의 잘못도 아닌 어른들의 그릇되고 추악한 행동에 충격을 받아 진로를 다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에 89학번으로 입학,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면서 문화방송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1999년 여성 기자로는 처음으로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으면서 '유리천장을 깬 선구자적인 인물'로 주목을 받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화 함께 초대 외신담당 제1부대변인으로 공직을 시작하고 제2대변인을 역임한 후 MBN에 앵커로 복귀하였다가 21대 총선에 분당에서 출마,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 투표날, 개표를 시작한 이후 김은혜가 상대방인 김동연 후보를 넉넉한 앞서고 오전 2시 전후로는 당선 유력을 띄울 정도로 언론에서 설레발을 쳤으나 개표율이 96.6%를 찍은 오전 5시 32분 골든 크로스가 일어나더니 최종 득표율은 48.91%로 김동연에게 단 0.15% p(8,913표) 차로 밀려 낙선했다. 개표율이 99%가 넘어갈 때까지도 김동연의 당선 유력이 뜨지 않았을 정도로 정말 초초접전이었다. 

우리 동네도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나라를 위한다는 거국적인 마음 말고도 유난히 경기도지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필자의 지인이자 김은혜의 언론계 선배가 경기도청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재명계인 그 지인은 만약 김은혜가 도지사가 되어 경기도청에 입성하였더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두 사람 다 특별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서로 다른 진영을 선택(?), 언론사 이후부터는 인생의 테크트리가 갈라져 한 명은 유력 정치인이요, 한 명은 경기도청 별정직 공무원이었으니....

사진제공: 대통령실

그런데 김은혜가 계속 플루트를 불고 어린 시절 원하던 대로 음악가의 길을 계속 걸었더라면 또 어땠을까?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40대 후반의 필자의 친구는 그게 더 편안하고 안정적이었으며 그녀에게 좋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하지만 수많은 음대를 나온 목관 연주자 중의 한 명으로 유학을 갔다 와 오케스트라에 취직하거나 아님 여기저기 오브리를 하고 다니거나 아니면 어떻게라도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고(또는 잡아서) 동분서주하고 있지 않을까?

뭐가 더 나은 삶이라고 감히 단정할 순 없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역경과 좌절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으니 굳이 현재의 안목과 판단으로 우리도 우리네 인생에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김은혜의 낙선..... 억장이 무너지고 그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안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다. 원망스러웠던 그녀의 고등학교 플루트 선생님이 도리어 지금은 그녀에게 인생의 은인일지도... 그가 입시비리로 붙잡혀 갔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음악계의 추악한 일면을 파악하고 일찌감치 다른 진로를 택해 여성 최초 뉴스테스크 앵커에 청와대 대변인, 국회의원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뭐가 더 나았을 거냐고?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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