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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61] 나 떨고 있니? 클래식 음악에서의 표절 사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7.21 09:35
  • 수정 2022.07.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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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유희열의 표절 의혹에 가요계가 시끄럽다. 부활의 가수 김태원이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대중들에게 선택되고 사랑받지 않은 음악은 존재가치가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창작자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고 그걸 인정받는 순수예술이 아닌 철저하게 비즈니스 측면에서 재화로서 대중 선택의 상업 분야는 돈이 되냐 안되냐가 표절이 맞다 아니다 보다 상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중가요에서의 표절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창작자, 프로듀서들이 이미 대중들에게 검증되고 익숙한 곡을 살짝 바꾸고 비틀어서 흉내 내고 모방하여 대중의 익숙해진 기호에 편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모방의 정도가 지나치고 유사성이 과하다면 그게 표절 시비로 이어진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사진 갈무리: IKBS

이와 같은 현상은 서양음악사에서 바로크 시대와 비교할 수 있다. 작곡가들은 궁정과 교회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연주될 음악을 무수히 작곡해야 했다. 요즘에야 과거의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전통의 보존이라는 의미로 당연시되지만 바흐, 헨델 시대에는 모든 음악이 특정한 대상이나 행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 일회성이었으며 새로운 행사에 맞춰 새로운 곡이 나와야 했다. 녹음은커녕 악보 같은 기록물로서의 장비도 미비하고 통신과 기술력의 한계는 전달과 전파도 어렵게 하였다. 역설적으로 그러다 보니 유럽 북쪽 독일 끄트머리에서 남겨진 악보가 여차여차하여 유럽 남부의 어느 시골마을까지 전해져 다른 작곡가의 이름으로 나오기도 하는 등 그 당시의 사회상이 그랬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당대에도 '사기꾼''도둑놈'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헨델이다. 남의 악보를 가져다가 적당히 고친 다음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그 유명한 경건하기 그지없는 '라르고'의 선율을 기억하는가? 그건 조반비 보논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그대로 베낀 거고 서곡과 30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은 심지어 1/2 이상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온 잡탕이다. 헨델이 다른 이들에 비해 지나쳐서 그렇지 남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건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음악학자 노만 캐럴은 바흐의 베끼기 경력을 무려 396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엮어낼 정도니 말이다. 새로움과 독창성이 예술에서의 커다란 덕목이자 최고 가치로 여겨지며 음악이란 천재의 산물이며 하늘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쓰는 거라는 '창조'의 개념이 생긴 건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부터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출연한 MBC 백분토론, 사진 갈무리: MBC 백분토론

변주곡과 편곡이란 정의도 원작을 다른 편성으로 바꾼다는 기능적인 요소 외에 이미 존재한 음악을 다른 방식과 스타일로 변형시킨다는 유희적 요소도 다분하다. 낭만시대 수많은 비르투오소들은 자신들의 빈약한 창작력과 작곡 기술을 메꾸기 위해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당대의 히트곡들을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에 맞게 화려하게 편곡하여 마치 무대 위의 서커스처럼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쳐 보이며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띄우는 발판으로 삼았다. 브람스 역시 자신의 출세작 '헝가리 무곡'이 헝가리 집시 음악의 표절과 차용이라는 비난과 소송을 피하기 위해 관현악으로 편곡까지 하면서 작곡이 아닌 편곡이라 주장하였다.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인쇄술의 발달과 개인 예술가의 성장으로 인해 인세와 연주를 통한 수입원이 되자 자기 작품에 대한 의식 또 강화되고 표절은 인용이 아닌 남의 것을 훔쳐 자기 배를 불리는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사진갈무리: MBC 백분토론

클래식 음악에서 남의 작품의 선율을 가져와 원작자는 모르는데 도리어 그게 더 유명해져 원작자 이름은 사라지고 차용자가 원작자인지 아는 경우도 무수히 많으며 고금의 클래식 명곡에서는 이름 없는 민요와 대중가요, 민속 선율들을 선율로 사용하여 예술작품으로 격상 시킨 경우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걸 통해 어차피 알지도 못하고 사장될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부활하고 생명력을 얻은 거니까. 필자 역시 대부분 일회성 연주에 그치는 한국 창작음악계 풍토에서 예전에 쓴 선율을 재탕, 자가복제하고 다른 곳에 가끔 재인용한다. 왜? 아까우니까... 그렇게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깝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가요에서도 커버와 번안 또는 다른 후대의 다른 가수의 리메이크를 통해 애창곡인 된 경우는 부지기수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노래며 찬송가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과거의 민중 노래였다. 서양의 문물을 복제하고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였던 우리나라 사정에 비추면 그런 성향을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수치로 남을 2010년 제3회 창작관현악축제의 도용 작가를 뺴고 다시 찍은 포스터와 프로그램, 위 작곡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걸릴지 않았을 뿐 표절과 모방의 경계에 선 곡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수치로 남을 2010년 제3회 창작관현악축제의 도용 작가를 뺴고 다시 찍은 포스터와 프로그램, 위 작곡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걸릴지 않았을 뿐 표절과 모방의 경계에 선 곡들이 얼마나 많은지.....

각설하고, 21세기 클래식 창작음악계에서의 표절 사례 두 가지만 언급하고 이만 마치겠다. 2010년의 제3회 창작관현악 축제는 주최 측에게는 악몽으로 남았을 테다. 당선된 작품의 연주가 끝나고 로비에서 몇몇의 감상자들이 미국 작곡가 Corigliano의 교향곡 No.1과 너무 유사하다고 수군거렸다. 심지어 개중엔 그 사람에게 수학한 제자들도 있었고 그 곡으로 논문을 작성한 사람들도 있어 의혹이 가중되어 결국 조사 결과 베낀 게 드러났다. 또 성가곡 공모전에도 생존하는 작가의 작품을 표절해 제출, 온라인에서 독자들이 발견해 재보해 알려져 난리가 났다. 2건 모두 이미 출판한 악보들을 전량 회수하고 다시 찍었으며 사과문을 발표하고 표절한 작곡가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클래식 창작음악은 상업적인 논리가 아닌 문헌과 연구의 관점이다. 즉 돈을 버려고 표절하는 게 아닌 논문 표절과 같은 학위 취득, 콩쿠르나 음악제 입상, 학술적인 가치가 우선순위다. 여전히 음대 졸업 작품 발표회나 대부분의 일신홀에서 열리는 작곡 발표회, 무슨 무슨 악회라는 이름 하의 동인 단체의 정기발표회 또는 음대 교수들의 실적 제출을 위한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식의 급조된 발표회의 곡들은 20세기 중후반 유럽 현대음악의 철 지난 아류나 모방에 불과하니 그것도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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