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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우린 모두 아이니까

이진성
  • 입력 2022.07.18 14:06
  • 수정 2022.07.30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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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지 않는 날의 연기자는
한 페이지에 담는 감정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한 분을 마주하다가

2022.07.17.00:11,
 집에 오는 길에 달이 마치 알감자처럼 노랗고 복스럽게 떠서, '오늘은 옥상에 올라가서 달 좀 보다가 글을 몇 자 적어야지'하고 생각했다. 올라와서 여름밤 바람에, 옥상에 핀 꽃들과 모기향을 보고 작년, 재작년 재재재작년,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37년째 보는 달인데 질리지도 않는다. 그런 모습이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자는 커서도 애라고 하나보다.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나만큼은 남혐, 여혐 하지 않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여자도 나이가 들어서도 잃지 않는 순수함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하신 분을 수업하게 됐었다. 세월을 무시 못하는 만큼 암기나 표현이 느리고 더딜 때가 있었기에 본인도 답답해하셨었다. 그러다 원하는 표현이나 연기가 나왔을 때, 손에 깍지를 끼고 마치 기도 드리듯이 입 앞에 모아서 폴폴짝 뛰시곤 하셨다. 그 모습이 낯설긴 했지만 보기 좋았다.

 그때의 발구름은 마치 그분의 여중생 내지는 대학생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모습 같았다. 시간을 뛰어넘어 마치 유물처럼 간직해온 순수한 모습이었다. 잠깐이지만 그분의 어린 시절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귀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잠시 지나, 어느 날 집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을 사간 날에도, 헬스장에서 줌바댄스를 하시는 어머님들을 보면서도 그 순수한 표정의 어린 시절을 봤다. 내가 오늘 봤던 달을 보고 호기심 가졌던 그것처럼.

 남자든 여자든 커서도 잃지 않는 순수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렇기에, 남자가 커서도 애라면, 여자는 커서도 소녀다. 시간이 될 때 또 앞에 있는 사람을 유심히 봐야겠다. 그리고 자꾸 다독여 주고 야박하게 굴지 말아야지. 애한테 너무 그러면 안돼. 그리고 우린 모두 오늘 나이까지의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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