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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63.퉤퉤 2

윤한로 시인
  • 입력 2022.07.05 16:10
  • 수정 2022.07.0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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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퉤 2

 

 

왜 늦은 밤

산사 토방 같은 데다 사람들 뫄 놓곤

잘난 체 이빨까는 게 싫여

또 그 앞에 빙 둘러앉아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마냥 헬렐레하는 것조차도 너무 싫여

마침내 안 되겠다, 이쯤 찌그러져얐다

몸무게를 줄이러 가는 척 자리를 뜬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그러나 밖은 너무 춥다

바람과 구름 별과 나중에는 기껏 오동나무나 담벼락

이런 것들과 얘기를 할 수밖에

무얼 빨러 나 여기 쫓아왔나

거기 침을 뱉거나 발로 차거나 긁거나 할 수밖에

퉤 진실은 제발

재미없기를 감동적이지 않기를

사뭇, 심각 진지하지 않기를

시골구석에서 올라온 듯

더듬더듬 말 잘 못해 어눌하기를

이따금 깔깔거리는 저들, 아유,

진실은 거지 라자로*처럼

이 세상에서는 온갖 좋은 것 갖지 않기를

제발 부자이지 않기를 배에 기름지지 않기를

추운 데서 홀로 오들오들 떨기를

이 세상에서만큼은 제발

부자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채우기를

개들까지 와서 종기를 핥기를

진실은 꽁지머리에 백구두에, 퉤퉤

사람들 뫄 놓고 잘난 체 이빨까지 않기를

 

*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로 거지이다

 

 

 


시작 메모

언젠가 어떤 산사에서 하는 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아주 먼 곳에 산사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말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부르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듣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감동하고, 나중에는 잘나가는 사람끼리 먹고 마시고 웃고 토하고 싸우고 추켜 주고, 퉤퉤. 못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세미나에 가고 싶다. 못나가는 사람들과 듣고 싶고 감동하고 싶고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울고 싶고 웃고 싶다. 못나가는 사람들과 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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