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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62. 퉤퉤 1

윤한로 시인
  • 입력 2022.07.05 16:09
  • 수정 2022.07.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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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퉤 1

 

 

퉤 천구백삼십 년대 지금처럼 그때도

시인 박사 선상님들

애법 먹물깨나 먹었단 이들

퉤퉤 너도 나도 유식한 말

왜말 찌꺼기 좇아 쓸 때

봄봄 산골나그네 만무방 동백꽃

김유정이만큼은 우리말 잘 살려 썼다

비리직직한 총각눔들

새끼 꼬고 산에 낭구하면서

장인님 붕알 잡고 늘어지면서

지게작대기로 대이구 얻어터지면서

까무잡잡한 시골뜨기 가시내들

밭 매면서 빨래하면서 나물 캐면서

머스마들께 여시 떨면서

잡수풀 구렁에다간 냅다 훌치면서

땡전 한 푼 없는 따라지들

흑흑, 땅바닥에서 먹고

땅바닥에서 기고 땅바닥에서 자면서

오갈 데 없어

땅바닥 사랑을 나누면서

웃고 울고 쫑알대고 속삭이고

내뱉던 밑바닥 말 밑바닥 마음

밑바닥 짓거리들 싱싱하게 퍼올렸으니

봐라, 유정이야말로

이 땅에 풀도 새도 나무도

지게작대기 부지깽이하며 돌멩이까라

온통 다 알아듣잖냐

 

 


시작 메모

김유정 소설 <만무방>에서 불량배 응칠이가 제 식구와 헤어지는 대목이 나온다. 착실한 농군이던 응칠이는 소작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마침내 야반도주하곤 막가는 만무방이 된다. 처음에는 아내와 여기저기 빌어먹으며 근근이 산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둘이 붙어서는 먹고 살 길이 막연하고 어린애마저 어찌될까 서로 갈리기로 한다. 그런데 그게 물방아간 땅바닥에서 나란히 누워 마지막 밤을 보내곤 헤어진다. 김유정은 어떻게 저런 인생도 쓸 수 있나. 이제 이런 땅바닥 인생들 앞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왜 전에 이문구가 말하지 않았나. 김유정 선생이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을 탔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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