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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김시습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2.07.03 21:02
  • 수정 2022.07.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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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는 있으나 누리지는 못한

자화상
                                    자화상

 김시습은 1435년에 태어나 1493년에 급성 병으로 사망한다. 신라 알지왕 후손 왕자 김주원이 강릉을 하사받아 강릉 김 씨 시조고 그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일성, 어머니는 울진 장 씨다.
 시습은 논어 학이편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땄다. 결혼하지 않아도 상투 틀고 어른 되면 받는 이름으로 본명을 대신하고 보통 한 개인 자는 기쁘게 벼슬한다는 열경.
 친구나 스승 제자 사이에 쓰는 호는 매화와 달을 좋아해서 매월당, 동쪽 봉우리인 동봉, 동쪽 봉우리 산 사람인 동봉산인, 푸른 산인 벽산, 푸른 산에 맑게 숨어산다는 벽산청은, 혹 췌 자를 써서 세상의 혹덩어리인 쓸모없는 늙은이라는 췌세옹이며 맑고 가난한 사람이라는 청한자로 스스로 불렀다. 맑고 차다는 풀이는 틀린 듯하다. 찰 한 자가 가난하다, 쓸쓸하다도 된다.

 공덕을 기려 왕이 주는 시호는 청간으로 평소 행적과 연관되는데 청빈하고 대쪽같다는 뜻이다. 청간공으로 부른다. 시호는 같은 명칭이 많다. 충무공도 여럿이다. 서거정도 할아버지와 같은 시호를 하사받았다. 법호는 눈 덮힌 봉우리로 부처 전생인 보살이 도 닦던 설잠이다. 역적 시신이라 화를 입을까 아무도 거두지 않았던 거열형 당한 사육신 시신 부분들을 모두 찾아 볕 잘 드는 노량진에 묻고 단종 제사를 지내 생육신으로 추대된다.

 평생 대제학을 한 서거정과 동문수학했다. 권근 손자이며 당대 최고 문인이며 서거정과 사촌인 이계전에게 배웠다. 성균관 근처에 살아서 유명한 학자들이 이웃이었다. 서거정이 15살 많은데도 친구인 걸 보면 김시습이 영재교육을 받은 듯하다. 커서도 방에서 김시습이 드러누워 벽에 발장난하고 서거정은 앉아서 장난을 받아주기도 했다. 서거정은 현실을 받아들인 반대 정치 성향이지만 김시습을 높게 평가하고 김시습은 서거정이 원래 수양대군 사람이라 비판하지 않아도 장난으로 골려주고 싶었을 거다. 오성과 한음 같다. 둘은 시를 주고 받았고 40살 더 많은 부제학과도 친구였으며 많은 학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무관 집안이지만 시와 글을 썼던 문인이며 불교, 도교, 유교를 결합한 철학자다.

 훈련원 도정 정3품 남효례 딸과 결혼하나 사별하고 세조를 인정 못해 산에 들어가 경주 남산 금오산에서 31세 때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몇 년 간 썼다. 거의 꿈을 배경으로 하고 여러 편을 썼으나 5편이 『금오신화』에 전한다.  
 소설은 보통 자기 얘기를 쓴다. 17세나 19세에 과거를 쳐서 떨어졌다고도 하고 치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금오신화』「남염부주지」편에서 과거시험에서 낙제한 주인공이 나오니 실제 과거에서 낙방한 듯하다. 
 여기서 부모 죽인 자, 임금 도리 못하면 죽는다 등을 보면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최초 금서인 걸 알겠다. 어쩌면 다른 편들은 소실이 아니라 더 심한 세조 비하라 의도적으로 사장된 지 모른다.                           
  37세에 서울 성동에서 농사짓고 환속, 47세에 재혼녀 안 씨와 결혼해 한 자녀를 얻으나 1년 만에 아내와 아이가 죽고 폐비 윤 씨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승려가 됐다. 59세에 부여 무량사 토굴에 기거하다 2007년에 청한자를 따라 지은 청한당에서 입적한다.        

我生 

我生旣爲人 
胡不盡人道 
少歲事名利 
壯年行顚倒                
靜思縱大恧 
不能悟於早 
後悔難可追
寤擗甚如擣       
況未盡忠孝
此外何求討
生爲一罪人
死作窮鬼了
更復騰虛名
反顧增憂悶
百歲標余壙
當書夢死老
庶幾得我心
千載知懷抱
                                                         
나의 생

사람으로 태어나
도리를 다하지 못 했다                
어려서는 명리를 쫓고              
젊어서는 실패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부끄럽고
일찍 깨닫지 못해
후회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
가슴 치며 잠 못 든다                                          
충효도 못 다하니
무엇을 구하고 찾을까
살아도 죄인이고
죽어도 궁색한 귀신이다
다시 헛된 명예 얻으니                           
근심 번민 더하네
백년 후 내 무덤 표할 때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주게
마음 안다면                                            
천년 뒤 품은 생각 알 수 있으리

My Life

I was born as human being;
I failed my duty.                        
I followed fame and fortune when little,                                 
I failed when young.                                            
I feel ashamed when I think about it,                 
not realizing early,
regretting but not undoing,                            
beating my breast, I can't sleep.
I didn't show my loyalty and filial piety too;                                          
what to look for and find?                                  
I am sinner, even I live,
I am poor ghost, even I die.
I get vain honor again;                       
anxiety and anguish are added.
When you write on my grave hundred years later,                                                 
write 'old man who died doing dream' please.                   
You know my mind,                                                                                          can know my think thousand years later.  

 삶은 수동적 운명적 어감이라 살아있는 생동감이 드는 생으로 제목을 정했다. 니체 철학을 삶철학이라 하지 않고 생철학이라 함과 같다. 또한 생은 불교 십이 연기의 하나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말하니 승려인 시인과 잘 어울린다. 잠깬다가 시적이지 않아 잠 못 든다로 했는데 어느 번역자가 깨닫는다로 한 건 오류다. 궁색한 귀신이라 쓴 거 보면 청한자가 가난하다 의미가 맞는 듯하다. 평소에도 청빈을 강조했다. 충효는 개념 언어라 영어로충효를 했다고 하지 못 한다. 진리를 했다 하지 않음과 같다.

 다섯 살 때 대학과 중용에 능통했고 세종대왕이 군주가 아이를 시험한 관례가 없어 사람들이 놀란다며 불러 승정원 지신사 박이창에게 시험을 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50세에 쓴 시에서 '아주 어릴 때 황금 궁궐 가니 세종께서 비단 도포 내리셨네 지신사 무릎 앉히시고 환관은 붓 휘두르라 했지 영물이라고 봉황 났다고...'라고 썼다. 『금오신화』에서도 용왕이나 염라대왕 만나고 귀한 선물 받는 장면이 많은데 이때 경험으로 쓴 듯하다. 기록 상 직접 알현은 못 했다 하고 시에서도 왕을 만났다면 그에 대해 썼을 텐데 선물 얘기 밖에 없다.

 일화에서 비단 50필을 내렸는데 아이가 어떻게 가져갈까 보니 허리에 묶어 질질 끌고 갔다는데 시에서는 비단 옷을 받았다. 50필이면 80미터 정도인데 아이가 가져갈 수도 없고 혼자 오지 않았을 텐데 가져갔다면 가족이 옮겼을 거다. 질질 끌고 가면 흙도 묻고 말이나 사람에게 밟히기도 할 텐데 도포를 하사받음이 맞다. 세종은 구설수나 안위를 염려해서 인지 몰래 잘 키우면 커서 데려다 쓴다 했다. 그래서 자가 열경인 듯하다. 스스로 본인에 대해 쓴 「서민」 시에서 벼슬로 밝은 임금을 도우려 했다라 썼지만 세종이 일찍 죽어 어두운 정치를 만나 숨었다. 

 필자의 오빠도 고등학교 때 아이큐로 전교 1등을 해서 당시 서울대 심리학과 장 모 교수가 엄마를 불러 이 아들은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국가의 아들이다 잘 키워라 했다. 시대를 초월해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같다. 김시습과 다르게 경찰 총경으로 국가의 아들로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세종과의 일화로 사람들이 김시습을 5세부터 유명 천재라 오세, 김오세로 불렀고 설악산 오세암은 김시습이 지어 공부했던 곳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여서 little이 맞다. 아이라도 이미 명성을 얻었다.                                                         
 시를 번역하려면 그 사람의 인생을 잘 알아야 한다. 헛된 명예심이 다시 일어난다로 번역한 건 틀렸다. 이미 나라에 평판이 자자했다. 스스로 명예욕이 있는 것처럼 번역하면 안 된다. 본인도 「나의 초상에 쓰다」라는 시에서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헛된 명예에 대해 썼다.

 책 사기 위해 서울 왔을 때 세종의 둘째 형님으로 독실한 불교 신자고 마음 맞는 효령대군을 찾았다. 법화경, 능엄겸 등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작업하는 세조를 도우라 해 열흘 정도 참여했다. 
 댓가로 『맹자』,『자치통감』,『노자』등 평소 사고 싶은 책들을 샀다는 말과 2년 일했다는 말이 있다. 이후 효령대군이 원각사 낙성식에 참석하고 「원각사찬시」도 부탁해 30대에 다시 유명해진 게 맞다.                 
 천 년 뒤 생각 안다는 말은 『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마지막에 꿈과 생은 같다, 꿈도 현실과 같다는 거다. 만복사는 절이고 저포는 백제 때 놀이로 주사위 같은 것을 나무로 만들어 던져 점수로 승부 겨루는 것으로, 윷놀이 비슷하다. 「용궁부연록」은 꿈에서 다 보았으니 현실을 떠나 산으로 간다. 「남염부주지」는 꿈에서 염라대왕 될 운명이니 현실 치료를 거부한다. 그는 꿈과 실제가 같다고 생각했다.                                             

無題 

終日芒鞋信脚行                      
一山行盡一山靑
心非有想奚形役
道本無名豈假成                           
宿露未晞山鳥語
春風不盡野花明
短笻歸去千峰靜
翠壁亂煙生晩晴

무제

종일 짚신 신고 내키는 대로              
산 하나 넘으면 또 푸른 산
마음이 원하지 않으니 어찌 육신에 메이고   
진리는 알 수 없는데 어찌 거짓을 행하리                        
밤이슬 마르지 않으니 산새 노래하고              
봄바람 부니 들꽃 밝다                                     
단장 짚고 돌아가니 수 천 봉우리 고요하고
푸른 절벽 안개 끼니 늦게 날이 갠다  

No Title                                           

In straw shoes all day long as I like                   
I go over a mountain, other blue mountain.                     
If mind doesnt want, how can body rule it,                         
If I don't know truth, how can I lie?    
Night dew doesn't dry out, so mountain birds sing,                
spring breeze blows, so wild flowers are bright.                         
I go back with short cane, thousands of peaks are calm,
getting foggy on cliff, it clears up late.

 짚신을 나그네로 번역한 게 있는데 짚신이 맞다. 마음이 원하지 않다를 마음이 물건이 아니다로 한 건 틀렸다. 원문 유상이 상념을 가지고 있다 의미로 비유상이라는 뜻은 생각이 없다, 원하지 않는다이다.
 원문 형역 단어는 마음이 육체의 부리는 바가 된다 뜻으로,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는 걸 말한다. 한글로는 메이다가 어울리고 영어는 원 뜻인 지배하다를 사용했다. 육체로 번역한 게 많은데 시어로는 육신이 적합하다. 시체, 사체보다 시신이 더 존중 어감인 것과 같다.
 여자란 단어를 예를 들면 남자의 상대적, 생물학적 단어로는 여자가 좋고 여성은 존중 어감이고 여인은 문학적 성적 단어다. 그래서 시에 많이 쓰인다. 시체도 시신이 좀 더 존중 어감이라 같은 표현이라도 미묘한 어감차를 살려 번역함이 바람직하다.
 무명이란 단어를 이름이 없다로 번역들 하는데 진리가 이름이 없다라고 하면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이름이 없다는 건 이름이 없어 알 수 없다는 거다. 무명에 알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밤이슬이라 밤이 아니고 새벽까지 마르지 않았다는 거니 아침이다. 목 축이며 신난 새들이 날아다니는 듯하다.                                                        
 자작시 「서민」에서도 밝히듯 여덟 달만에 말을 알아들었다. 세 살에 할아버지가 시를 지어보라는 말에 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복사꽃 붉고 버들 푸르러 삼월 이미 저무네 푸른 침 구슬 꿰니 솔잎 이슬이네'를 지었다. 학자 이이는 두 살 때라 한다. 그 즈음 유모가 맷돌로 보리 가는 걸 보고 '비 오지 않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 사방 흩어지네', 다섯 살엔 노인이 준 두부에 감사하며 '천성은 맷돌에서 왔으나 둥글고 빛나 동산에 뜬 달 같네 용 삶고 봉황 구운 진미보단 못해도 머리 벗겨지고 이 빠진 노인에게 좋다'는 「두부」를 지은 영재다.

乍晴乍雨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 
譽我便是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 
花門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寄語世人須記憶
取歡無處得平生

맑다가 비오니 

맑다가 비오고 비오다 맑고
하늘 이치 이러니 세상 인심이야   
나를 칭찬하다 나를 욕하니                              
명예 버리고도 명예 구하네         
꽃피고 지는 걸 봄이 어찌 하리                             
구름 오가는 걸 산이 어찌 하리
기억하라                                             
기쁨 평생 가지 않으리                                 

Sunny then Rainy                          

Sunny then rainy, rainy then sunny
heaven's truth is like it, so people's mind too.           
Complimenting me, you curse me;                                                                     
I ask for honor though gave up honor.                                                                    
Flowers bloom and fail; what can spring do?
Clouds come and go; what can mountain do?
Remember
happy never forever. 

 rainy는 전체 날씨 말할 때 쓰며 당장 비오는 걸 말하지 않아도 되고 raining은 지금 비오는 걸 말하니 여기선 rainy가 어울린다. 저런 대접 받는데 기쁨이 어디에나 있다는 번역은 잘못이다. 사람들아 기억하라는 상투적이라 빼고 산이 다투지 않는다를 라임 맞추려 어찌 하리로 했다. 명예를 버렸지만 세상 더러운 인심으로 다시 얻고자 한 마음이 동감간다. 걸식하며 가난하게도 살았는데 그많은 친구들은 뭘 했나 싶다. 우정도 부질없다.
 한명회가 젊어서는 사직을 보필하고 늙어서는 강호에 은거한다는 청춘부사직 백수와강호라는 글을 쓰자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는 청춘망사직 백수오강호로 바꿔 사람들이 감탄했다. 한명회가 화가 나 시 적은 종이를 찢었다고도 하고 현판이라 뗐다고도 한다. 신숙주가 가마 타고 가는데 "이놈! 선왕의 신신당부를 어긴 이 못난 놈!"이라 호통 치자 신숙주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율곡 이이의 김시습전에 보면 불교의식인 화장을 3년 뒤 하라 유언해서 절 옆에 안치하고 3년 뒤 관 여니 얼굴과 모든 것이 생시와 같아 죽음 이후 부처가 되었다고 믿어 화장하고 사리는 무량사에 모셨다고 나온다. 이이는 선도를 닦아 모습이 그대로라고 하며 그를 백세의 스승이라 했으나 이황은 비판했다.                                             
 친구가 예쁜 여종을 소개했으나 수준이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 당시 양반들이 대화도 안 되는 첩을 둔 것에 비해 외모가 기준이 아니고 절개도 있다. 노장사상을 가진 신비주의였고 젊은 시절과 나이든 시절 자화상을 그렸는데 화공이 정식으로 색조 넣어 그려준 거에 못지 않다. 
화공의 그림은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시조가 난 곳이며 15세 때 어머니 시묘살이를 한 강릉에 기념관이 있고 부여에 문학관이 있다. 

 능소화 꽃말은 명예다. 명예를 얻으나 누리지 못한 능소화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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