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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서 소중한 우리가 만드는 세상

김현경 전문 기자
  • 입력 2022.07.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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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달자』, 로이스 로우리

가난도, 고통도, 갈등도, 혼란도, 차별도 없는 평화로운 사회가 있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이런 사회는 어쩌면 모두가 꿈꾸는 사회일 수도 있다. 기억전달자』 속에 존재하는 평등 사회, 완벽한 질서와 조화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에 대해 독자는 순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삶은 목가적인 한 폭의 그림처럼 생명력 없이 정지되어 있는 듯하다.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이 모두가 똑같이 살아가는 이런 삶이 정말로 행복할까?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역할을 배정받고,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행동을 지시받은대로 수행한다. 공동체의 안정과 조화를 위해 정확한 언어 사용을 강조하지만 그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해제라는 단어이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해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책을 읽어가는 동안 질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모든 것을 알게 된 조너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를 사랑하세요?”

··········

그건 의미가 없어. 더 이상 쓰이진 않는 단어란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

사람들이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공동체는 순조롭게 돌아갈 수가 없어. 너는 이렇게 물어봐야 해. ‘부모님은 저와 함께 즐거우세요?’ 그러면 나는 그래라고 대답하고,”

··········

“‘제가 해낸 성과가 자랑스러우세요?’ 그럼 내 대답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래.’”

 

이 사회의 가족 단위 내 구성원들에게 사랑은 '낡아빠져'서 아무 의미 없는, 생명력을 상실한 단어이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정서보다 즐거움을 주거나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는 효용성과 기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부재는 소설의 초반에서 산모 역할을 부여받은 자가 낳은 아이를 가족 구성원들이 배정받아 키우는 데서 이미 예견된다.

 

단지 우리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단지 현재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억보유자 외의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한다.​
​기억보유자 외의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한다.​

 

기억전달자가 하는 일은 다음 기억보유자로 선출된 자에게 네가 있기 전, 내가 있기 전, 이전의 기억보유자가 있기 전, 그 이전의 세대들 전의 기억을 전해주는 것이다

 

역사가 부재하는 사회, 과거의 기억과 역사로부터 단절된 사회에서 한정된 관점을 견지하고, 고통 없이 살아가는 공동체는 인간의 감정을 마비시키고 영원히 어린아이의 세계관에 머무르게 한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기억전달자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해 보였다. “우리들이 그쪽을 선택했어, 동일성

 

이들에게는 사생활이나 비밀이 용납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밤에 꾸었던 꿈마저도 가족 구성원에게 고백하고 교정을 받아야 한다. 각 집마다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행동을 통제당하며 아무 위험이 없는 편안하고 규칙적인 동일성의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이곳에는 거울도 없다. 우리는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인식하고 타인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며 서로를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바로 그 때 자아가 생기게 되며 주체성도 형성된다. 모든 것을 획일화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맹목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규칙통제는 인간 본연의 자유를 혹독하게 억압한다. 물리적인 안락함이 자유로운 모험보다 인간의 삶을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일까?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통제 속에서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삶이 아니라 사육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미래를 누군가 결정해서 부여하는 것이라면 굳이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살고 있는 당위성은 무엇일까?

획일성을 강요하는 기형적인 체제와 평등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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