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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57] 김희정 피아노 독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6.30 09:55
  • 수정 2022.06.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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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연주자가 나이를 먹으면 연주력이 1-20대와 달리 퇴보하는 건 자연의 생리이자 만물의 섭리이다. 사람이 나이 듦에 따라 신체적인 기능이 떨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니 이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나이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모하는 게 현명하다.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에이징 커브는 신체를 사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똑같이 적용될 테다.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이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다들 살 수 없기 때문에 매달 봉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을 얻으려고 하며 취직을 하게 되면 연주자라기보다는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월급을 주는 학교의 학생들을 유치하고 졸업시키고 갖가지 행정을 보면서 연주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업적 평가와 실적을 위해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개최, 제출해야 되는 게 우리네 보통 연주자들의 패턴이다. 학교에 속한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정규직 채용을 위한 실적과 연구업적을 위해 음악회를 개최한다. 

무대인사하는 피아니스트 김희정

궂은 비가 연일 내리는 가운데 6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현재 명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김희정의 독주회가 열렸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2편에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그리고 2부에 슈만의 <환상곡>으로 인터미션을 합쳐도 1시간 정도 되는 짧은 프로그램의 피아노 독주회였다.

김희정 피아노 독주회 포스터

첫 곡인 스카를라티 소나타 2곡은 장마라 그런지 건반과 해머가 물속에 푹 담겨 있다 끌어올려진 느낌이었다. 인춘아트홀에 지금까지 열 번 넘게 가봤기 때문에 소리를 먹는 홀의 음향이나 구조 또는 조율 상의 문제보다 그저 비에 젖은 솜뭉치가 무겁고 둔탁했다. 옥구슬같이 굴러가는 발랄한 스카를라티보다는 점잖게 선율선을 타고 흐르면서 18세기 초기 바로크 건반 음악의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에서 김희정은 폭발적인 타건, 호쾌하면서 날카로운 용솟음치는 젊음의 연주보다는 스카를라티의 안락함을 그대로 유지한 체 우아하게 전개했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워터밤의 폭죽이 터지는 오색 창연함 대신, 그 끈적거리고 흐물거리는 마치 반 고흐의 '카페테라스'나 로트렉의 '물랑루즈 포스터' 같은 강렬한 개성 넘치고 멋들어진 8명의 파리지엥 대신 김희정은 교복 입은 단정한 학생들, 유니폼을 맞춰 입은 회사원 같이 8개의 소품들을 줄 세웠다. 슈만의 <환상곡>에서 슈만의 광기나 격정보단 그것들을 자제시키고 누르면서 여러 주체 못 하는 음악적 격랑을 진정시키며 3악장까지 완주하였다.

인사하고 바쁘게 퇴장하는 피아니스트 김희정

끝나고 나오면서 아무리 봐도 처음이 아니고 예전에 한번 접한듯한 인상이 끊이지 않아 귀가하자마자 옛 자료를 조사하다 '이거다'라고 외치며 2008년의 리플릿을 발견했다. 맞다! 2008년 당시 음악잡지 <음악저널>이 그 해를 전후로 귀국 독주회를 개최한 모든 연주자를 대상으로 심사, 가장 촉망받는 연주자에게 수상하는 '신인 음악상' 수상자가 김희정이 이었고 그때 그녀의 연주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이후로 벌써 15년 정도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 현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약관의 연주자들처럼 혜성 같은 존재였던 김희정이 이제 중견 연주자가 되었고 또 계속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으면서 세월과 함께 나아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바쁜 학사 일정 가운데 개최한 이번 콘서트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계속된 여정을 계속 같이 가다 보면 또 그녀의 연주를 접할 거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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