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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한 최명재 이사장 별세

권용
  • 입력 2022.06.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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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설립자인 최명재 이사장이 26일 오전,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기업인이자 교육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한 시대의 반항아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들에게 질 좋은 우유를 공급하겠다는 신념으로 기존 유가공업계와 치열하게 다투며 파스퇴르 우유를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고교평준화 흐름 속에서 민족 지도자 육성을 위한 영재 교육을 주장하며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27년 전라북도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졸업 후 서울대 경영대학의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상업은행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택시 운전사로 전직했다가 1960년대 직접 운수업(성진운수)를 일으켜 기업으로 첫 발을 내딛뎠다.

1970년대 중반에는 이란에 진출해 유럽과 중동에서 물류운송업을 번창시켰다. 이때 벌어들인 자금을 통해 1987년 강원도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처음으로 국내에 저온살균 우유를 도입한데 이어 국내 첫 미군납을 통해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기존 유가공업체와 소위 '우유전쟁'을 벌인 끝에 출시 1년 만에 매출을 10배 신장시켰다.

이후 고인은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 추진에 나섰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학교 설립에 재산 대부분을 바친 부친처럼, 민족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생이 되겠다는 평생 꿈을 이루기 위해 민사고를 탄생시켰다. 이에 1996년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부지(약 127만2천여㎡)에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하는 민사고를 개교했다.

고인은 파스퇴르 유업을 운영하며 번 수익금 대부분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투자해 투자금액이 1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해 30여 명만 선발해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파스퇴르의 부도 등과 겹치며 재정난에 부딪혔다. 당시 교사들은 급여를 받지 않고 교육을 이어갔으며, 학부모들이 자진해 기숙사비를 납부하며 어려운 학교 운영을 이어갔다. 현재에는 입학 정원이 150여명으로 늘어났다.

2004년 파스퇴르유업에서 분리되고 국가 재정 지원이 없다보니 귀족학교라는 오해도 있었지만, 세계 유수의 대학들로부터 민족주체성 교육을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2녀가 있으며,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이 고인의 유지를 이어 학교 운영을 맡고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8일 오전 6시 20분이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9시 민사고에서 학교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민사고가 자리한 횡성군 덕고산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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