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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52] 리뷰: We Soloists, 베토벤의 숙제 그리고 위 솔로이스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6.12 09:03
  • 수정 2022.06.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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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열정의 아이콘? 음악회 해설을 맡은 더블 베이스의 이창형은 베토벤을 빨간색의 작곡가, 즉 붉은 단심과 같은 열정의 작곡가로라 지칭했다. 현악4중주, 듀오 그리고 피아노3중주에 21세기에 베토벤이 살아있다면 이렇게 썼을 거다는 명제에서 만든 한국 작곡가의 창작곡 등 베토벤의 곡들로만 꾸며진 위 솔로이스츠의 마스터피스 시리즈 2번째 연주회의 첫 곡은 신만식의 현악5중주를 위한 <If, I....>였다.

좌로부터 바이올린 최지웅, 피아노의 윤소영, 첼로의 김우진

신만식의 <If, I...>는 만약에 2020년대에서 베토벤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썼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주문으로 작곡된 위촉곡이다. 제목에서 나타내는 바처럼 "만약 내가 베토벤이었다면?", "만약 내가 베토벤을 만났더라면?" 등의 줄임과 축약 그리고 생략으로 되어 있는 현존 한국 작곡가의 가정과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작품이다. 신만식은 베토벤의 현악5중주 op.104 1악장에서 모티브를 차용하며 그 곡의 형식을 가져온다. 즉 베토벤의 얼개를 유지한 채 그 안에 신만식 만의 내용을 새로 담은 거다. 얼마 전 신만식이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의 일부분에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중 '휴식'(Der Rast)을 인용한 거와 마찬가지 작업인 과거의 양식에 현대적인 감각의 재해석이 연상되었다. 더군다나 신만식은 절대음악의 추종자로서(지금까지 들은 그의 많은 작품들은 샤콘느, 카프리치오, 프렐류드 등의 악곡이 제목으로 되어 있다) 자신의 작업 궤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의 유물들과 연결망을 형성하는 코드들을 사용하면서 상호작용을 통한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이질적인 영역이라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며 교섭을 꾀한다.

작곡가 신만식

현악4중주 9번 작품 번호 59의 세 번째 <라주모프스키>는 거대하고 촘촘한 구성 하에 4개의 현악기가 모두 독립된 개체로서 빠른 템포 내에서의 활달한 움직임의 페시지가 1악장과 4악장을 관통하는 협주곡적인 기교를 요하는 곡이다. 그런 만큼 연주자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수며 거기서 생성된 강한 응집력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곡인데 악장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가 연주의 몰입과 감상에 지대하게 방해되었다. 흐름과 맥락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관객 대부분이 초대받은 자들이라 맹목적인 박수갈채와 환호만이 초대에 대한 보상이요 음악회 참석자의 본문이요 지인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실내악, 그중에서 정말 고도의 집중과 명상 그리고 긴장이 지속되는 현악4중주라는 장르에서의 작품에 대해 정말 1도의 이해도 없는 막무가내 함성과 손뼉은 정작 완성도 높은 연주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입장을 바꿔놓고 넋을 놓고 브라운관의 드라마에 빠져 있는데 자꾸 옆에서 말 시키고 리모컨으로 채널 돌려버린다던다 영화관에서 손에 땀을 쥐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자꾸 옆의 사람이 왔다 갔다 한다던가 영화의 내용과 하등 상관없이 자기 깐엔 즐겁고 분위기 맞춘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다른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신비스럽고 묵직한 서주부터 부점과 아티큘레이션의 미묘한 변화가 일품인 1악장부터 4악장의 숨 가쁜 푸가 주제와 레이싱까지 홀 자체의 분위기가 차분하지 않고 한없이 산만해 정작 그런 묘미를 만끽하고 연주에 동화될 수가 없었고 그토록 손뼉을 치며 환호를 질러댄 그들이 애정 하는 연주자의 면모와 연주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막상 연주자들에게 손해 아닌가? 다만 2악장의 주제의 개파에서 오는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움과 첼로의 잔향이 일품이었던 피치카토만이 뇌리에 남는다.

베토벤의 숙제, 그리고 위 솔로이스츠

오죽했으면 인터미션 때 하우스 어셔가 '악장 사이에 박수를 지양해 달라'라고 큰 소리로 안내하고 사회자인 이창형도 2부 개시하면서 우회적이고 완곡하게 박수 예절과 클래식 음악회 에티켓에 대해 설명했을까? 물론 1부가 끝나니 그전엔 분명히 점유되었던 좌석들이 곳곳에 비어 있긴 했다. 시민회관에서의 청소년 또는 향상음악회나 예술의전당에서의 이런 한국의 훌륭한 기성 연주자들의 실내악 단체 연주회 때나 관객들의 수준과 자세는 똑같다. 그저 아는 사람 눈도장 찍고 자리 채워 주기니 그 자리에서 필자만 얼굴 붉히고 있어봤자 이상하고 까탈스러우며 잘난체하는 놈이 되고 부끄러움만 내 몫이다. 그래도 교육의 효과인지 2부에서는 분위기가 정돈되고 오늘의 주인공인 '베토벤'과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박수도 터져 나오지 않았고 뭐가 그리 좋고 친숙한지 헤픈 웃음도 보이지 않았다. 2중주를 거쳐 <대공>에 이르게 되었다.

6월 11일 음악회의 연주자들과 곡명들

바이올리니스트 최지웅을 기억하리라! 첼로 김우진도 마찬가지다. 한 명은 부천시향에 한 명은 KBS교향악단에 있으니 악단의 일원으로서 분명 들었을 텐데 <대공>에 흐르는 기개 있고 귀족스러운 기품과 중후함이 물씬 묻어난 곡 제목 같은 품격 높은 열연이었다. 특히 바이올린의 최지웅은 중저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예술의 전당 IBK홀이라는 공간에 최적절의 음향과 음량을 선보였다. 여기에 피아노의 윤소영까지 4악장의 발랄함과 경쾌함을 더하면서 제대로 베토벤 실내악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음 위 솔로이스츠 연주회 때의 숙제는 프로그램북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돈을 좀 쓰더라도 1장짜리 브로슈어, 리플릿이라도 A4 크기로 확대하길 바란다. 청첩장 같은 크기에 깨알같이 박힌 곡명과 연주자명들의 폰트와 글씨 크기는 읽기에 곤혹스럽다. 이제 노안이 오고 시력이 나빠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귀도 집중, 눈도 크게 뜨고 종이를 얼굴에 가까이 들이댔다 멀게 댔다 수선을 떨면서 마치 보험계약서 약관에서의 주의사항 읽듯이 해야 된다. 연주자들의 면면이라도 제대로 알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응원하고 싶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묻지마 박수를 나까지 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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