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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우리 곁에 왔던 성자'

권용
  • 입력 2022.05.06 14:32
  • 수정 2022.05.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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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종교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 동아시아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 출간됐다.

100년 전 우리 곁에 왔다가 13년 전 떠난 김 추기경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교훈을 되새겨 보는 책, '우리 곁에 왔던 성자'를 통해 고인이 살아생전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만나볼 수 있다.

 

대한민국 종교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 동아시아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 출간됐다.ⓒ권용

 

김 추기경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공동선의 추구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 실천과정에서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권 옹호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침묵의 북한 교회를 위해서도 헌신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로써 대중매체와 언론인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불교 등 종교 간 대화에도 앞장섰다.

이 책은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을 격려하고 사랑했던 김 추기경의 행적과 일화, 그의 발자취를 통해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겪은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무엇보다 김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언론인들 스스로 기획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김 추기경은 종교의 벽을 넘어 예수님의 사랑으로 온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 위로를 주었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성자였다. 이 책은 김 추기경과 동시대를 살았던 언론인들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와 만난 일화와 에피소드, 추억을 모아 엮은 책이다. 집필에 참여한 언론인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며, 기록의 차원을 넘어 가톨릭적 신앙에 입각해 엮은 책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김 추기경은 좌우 정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본 사랑 그 자체인 성자였다.

“김 추기경이 진지하게 말씀하실 때는 정말로 온 세상이 진실해지는 느낌이었다. 1987년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추모미사 때 당국을 향해 외친 말씀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공권력을 투입하려면 지금 나를 밟고 가라” (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은 평화방송·평화신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1970~19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시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십자가 제단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책 본문에서)

“저는 당시 논란과 김 추기경님의 발언을 들으며 ‘역시 시대의 거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보수 쪽의 비판을 받았고, 막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진보쪽의 비판을 받는 모습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 김 추기경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김 추기경은 한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데 평가하는 사람들의 잣대가 움직인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김 추기경은 변함없이 빙그레 웃으며 “고맙다”고 하시고요.”
(김 추기경을 취재했던 김한수 기자의 글에서)

 

김 추기경은 눈높이 소통은 물론이며 누구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이 시대 지도자들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김 추기경 지근거리에 있었던 허영엽 신부는 김 추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1987년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 구내로 들어온 학생들이 오랫동안 명동 구내에서 농성을 벌였다. 김 추기경께서는 정부측과 대화를 시도하셨다. 학생들이 농성을 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무사귀환을 연결해 주시려 했다. 그러려면 농성 중인 학생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주어야 했다...... 그때 김 추기경께서 학생들이 농성 중인 코스트홀 대회의실을 방문했다. 대학생들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근 채 농성을 풀 것인지, 농성을 이어갈 것인지를 놓고 자유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김 추기경은 그 회의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셨다. 김 추기경에겐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죽거나 해서는 안 된다.’ 추기경이 하염없이 기다리자 학생 관계자들과 주위 사제들이 송구하다며 연신 주교관으로 가실 것을 종용했다. 일부 신자들은 학생들이 허락도 없이 무작정 성당을 점거하고 추기경님을 못 들어오게 한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엷은 미소를 띠시고 족히 반 시간 넘게 기다리시다 토론이 끝나지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셨다.” (책 본문에서)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날 밤, 나는 추기경님께서 보내주셨던 편지를 다시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지난 2002년 어머니를 떠나보낸 우리 형제들에게 친필로 보내주신 편지였다. 몸이 많이 아파서 장례미사에 참석을 못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김 추기경의 편지들은 모두 직함 없이 그냥 ‘김수환’으로 적혀있다. 격의 없고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늘 다정하고 잘 웃어주시던 김 추기경님, 그분의 바보 웃음이 그립다.”(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은 대중매체와 언론의 중요성을 알고 끊임없이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인의 역할이 성직(聖職)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항상 언론인들을 격려했으며, 그 역시 추기경이 되기 전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언론관은 사회정의를 향한 언론의 역할이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약화된 지금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수환’은 직접 기사를 쓰고, 외신을 번역해 다듬고, 편집 기획을 하고, 사설까지 썼다. 1951년 사제품을 받은 젊은 목자는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만난 은사 요제프 회프너 신부(1969년 추기경 서임)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 사회학’에 대해 밝게 눈떴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기초로 한 인간관과 국가관 등을 더욱 확실히 정립한 이 젊은 목자는 유학을 마치고 1964년 6월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사) 사장 소임을 맡았다. 김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쇄신과 현실 참여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의 평생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대로 살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매스컴 사도직에 특별한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셨다. 김 추기경은 마산교구장이던 196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매스컴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초대 총재가 된다. 그 뒤 김 추기경은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과 같은 언
론인 단체, 가톨릭 언론상, 가톨릭 가요대상 등을 만들어 운영했다.” (책 본문에서)
 

또한 김 추기경은 서울신문 노조 탄생의 숨은 주였이었다. 87년 5월 26일 홍보주일 특별 강연에서 서울신문 등 자유언론을 위해 투신하는 언론인들을 크게 격려했다.

이 책에서 최홍운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현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요 며칠 사이에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분들이 편집권 독립을 위하여 성명서를 냄으로써 언론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시고, 또 어제는 동아일보 기자 일동(124명)이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장’을 발표하면서 역시 언론 자유의 회복이 민주화의 최선결 요체임을 밝힌 점 등은 참으로 박해와 희생을 무릅쓴 용감한 궐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 같은 움직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한 이 땅에 언론 자유는 반드시 회복된다고 믿습니다.” (책 본문에서)

"서울신문 기자들은 추기경의 격려에 힘입어 이후 본격적인 노동조합 창립 준비에 들어가 1988년 4월 13일 아침 명동 YWCA 회의실에서 노조를 공식 결성했다. 단연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정부 소유 신문에서 사장 퇴출 운동에 이어 노조를 만들어 편집권 독립은 물론 소유 구조 개편까지 요구하고 나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은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소톨하게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시의적절하게 유머를 소통의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강의나 강론 때면 늘 유머로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시중에 유행 중인 유머를 기억했다가 사용했다.

“텍사스에 오셨던 그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김 추기경의 탁월한 유머 감각이다.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를 하셨는데, 영어와 혼합된 우리말 사투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미국에 이주해서 사는 경상도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외출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열쇠가 없어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방 안에서 부인이 “훈교?(누구인교?)”하니까, 밖에 있던 남편 왈, “미랑께(나랑께)”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좌중을 웃기며 재미있게 만드셨던 추기경과 함께한 행복했던 그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은 농담도 잘 하셨다. ‘삶은 계란’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지방 어느 대학에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강의를 하러 열차를 타고 가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던 차에, 마침 통로로 지나가던 간식 판매원이 “삶은 계란이요, 삶은 계란~” 하기에 귀가 번쩍 뜨이시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날 강연의 리드는 “여러분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삶은 계란입니다”로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은 평생 가난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남긴 재산 모두를 그를 위해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묵주를 사서 나눠달라고 했다. 구겨진 바지를 입고 비서신부에 택시빌르 꾸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김 추기경이 남기신 유산은 얼마나 됩니까? 김 추기경 이름으로 돼있는 통장은 없어요. 비서 수녀인 제가 모든 재정을 관리했는데, 잔액이 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추기경께서 당신이 선종하면 미사에 오는 사람들에게 묵주를 선물하라고 하셨어요. 그 대금을 지불하고 나면 모자랄 것 같아요. 교구에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자꾸 목이 메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다. 나는 오후에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렸다” (책 본문에서)

“어느 주일 오후에 형님 신부의 숙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방을 두드렸다. 열어 보니 김 추기경이 서 계셨다. 형님이 신학생 동생이라며 나를 소개하자 아주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셨다. 그러고는 형님 신부에게 “허 신부! 천 원짜리 몇 장 있나? 택시를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잠시 후 김 추기경은 형님이 드린 천 원짜리 몇 장을 쥐고서 외출하셨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분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책 본문에서)

 

늘 바보처럼 웃는 얼굴의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격한 언론인들이 많았다. 그는 말년에 투병 중에도 자신의 고통을 참고 타인의 고통을 돌봤다. 한 젊은 기자는 김 추기경에게 받은 쿠키 선물을 잊지 못해 유통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겨우 먹었던 사실을 고백한다.

“2008년 12월 24일 저녁. 그날 강남성모병원 로비에서 봉헌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때 나는 살아계신 추기경님을 마지막으로 뵐 수 있었다. 휠체어에 온몸을 의지한 채 미사에 참여한 추기경....추기경께서 비서 수녀님을 통해 취재 차 나온 내게 정성껏 포장된 쿠키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그 쿠키가 너무나 소중해 유통기한이 다 되도록 보관만 하다가 마지막에서야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눠 먹었다. 그날 이후 추기경께선 혜화동 주교관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셨다. 당신께서 그토록 평생 원하셨던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셨기 때문이다. (책 본문에서)

김 추기경을 만났던 언론인들은 그는 우리 곁에 왔던 성자이자 또 한 분의 예수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김 추기경을 만난 전 현직 언론인, 사제와 수도자, 현직 종교전문기자 등 20명이 육필로 쓴 김 추기경에 대한 따뜻하나 체험기이자 가슴 뭉클한 고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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