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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40] 리뷰: 원아영 피아노 독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4.14 10:32
  • 수정 2022.04.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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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3일 수요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기악과라는 한국 최고의 피아니스트 양성과정을 거치고 독일 뮌헨에서 석사과정을 졸업 후 스위스로 넘어가 바젤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취득한 피아니스트 원아영. 작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의 귀국 독주회 이후 관객들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다시 만났다.

피아니스트 원아영

① 슈베르트 소나타 14번 가단조

하고많은 슈베르트 곡 중 하필이면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친다면 그것도 단조의 곡을 친다면 한 번씩 거쳐가는 재미없는(?) 이 곡이란 말인가! 다른 슈베르트의 소나타였다면 원아영의 진가가 더욱 발휘될 수 있었을 텐데.... 이 곡 자체가 피아니스트가 뭔가를 보여주기 참 아리송하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정리되지 않은 슈베르트의 소나타 양식을 가진 가단조 14번 소나타에서 원아영은 음색의 절묘한 대비와 공명의 증대를 꾀하면서 자신만의 음향으로 홀을 가득 매웠다. 1악장 발전부의 왼손 옥타브는 다음 곡 리스트를 기대하게끔 박력 넘치고 정교했다. 한데 격렬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주체 못하고 흘러내리는 드레스의 어깨 끈이 상당히 거슬리고 연주에 방해가 된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어깨 끈 다시 올리고 난 다음에는 꼭 미스터치가 따라온다. 당연한다. 피아노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판국에 집중력이 깨지고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2악장에서 아련하게 다가오던 올 봄의 찬란했던 벚꽃길이 그런 미스터치로 인해 화들짝 놀라면서 사라진다. 2악장의 엔딩을 수놓은 인상적인 페달(아직 이걸로 판단하기에 이르다. 원아영의 페달링은 환상적이다. 손이 아닌 발로 음악을 그려나간 드문 경우였다.)에 이어 슈베르트 즉흥곡과 같은 옥구슬이 굴러가고 우아함까지 더해졌다. 3악장 마지막의 옥타브 페시지는 슈베르트에게 꼭 한번 시켜보고 싶다. 과연 본인은 자신이 지정한 템포 내에서 옥타브로 연주 가능한지....

② 리스트의 베네치아의 나폴리

빨리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어 발열 체크 따위는 하지 않고 나폴리에 가서 뱃놀이를 즐기고 싶다. 금호아트홀 연세 입장 전에는 발열 체크를 하더라. 오래간만에 본 유품이다. 아직도 이런 걸 왜 하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학교 내 위치한 시설이라 학교 건물들의 입장 시 점검하는 차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자답을 내렸다. 이젠 나도, 그리고 우리도 순례의 해를 떠나고 싶다. 너무나 오랜 기간 참아왔고 억눌러져 있었다. 순례의 해라니 거창하다. 무슨 리스트가 순교자처럼 거룩하기 그지없고 추앙을 받을만한 제목인데 백작부인과 바람나 도망치면서 부자 여편네 덕에 호의호식하면서 한량처럼 지낸 생활의 산물이란 걸 알면 부럽기만 하다. 필자 주변은 백작부인 대신 어디 가나 피아노 독주회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집결을 과시하는 제자 모임 또는 클래스 동문들로 포위되었다. 눈물 나는 우애다. 의리파들은 다른 클래스의 연주에서는 안 모이는 게 신기하다. 크리스티안 치머만 정도의 연주회에나 돼야 각자 표를 사서 다들 다시 모이지만....

무대인사를 하는 피아니스트 원아영

③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4번 다단조

앞의 슈베르트에서도 그러더니 1악장 제시부 반복은 안 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현된 자연스러움의 극치인 1악장이 원아영을 만나 물 만난 고기처럼 순수하고 인위적이지 않다. 2악장의 해석이 오늘 독주회에서 가장 특이했다. 자제하지 않고 명랑함이 마구 튀어나왔다. 호오 판단의 차원이 아닌 모차르트를 뛰어넘어 원아영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캐릭터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연주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지 정확한 비평을 할 수 있다. 원아영이란 피아니스트의 삶과 인생철학, 연주관 등을 알고 싶게 만드는 2악장과 그리고 비극과 예고된 운명 모티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3악장이었다.

④ 라벨 밤의 가스파르

모차르트의 2악장에서의 터치가 이번 '온딘에'서 삐져나온다. 모차르트보다는 한층 의미가 수긍이 된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은갈치 빛깔의 드레스의 색깔에 거기에 붙어있는 반짝이까지 더해져 물의 요정이 아니라 마치 인어 같았다. 1부에선 그렇게 어깨 끈이 흘러내리더니 인터미션 때 단단히 여미었는지 2부에서는 한 번도 거슬리지 않았다. '온딘'에서의 마지막 페달 사용은 미세한 발사용과 페달과 발의 분리로 소리의 전달이 입체적이면서 잔향이 시간차를 두고 골고루 퍼지고 소멸되는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른 곡에서도 그런 기교를 보이더니 원아영의 페달 용법과 천상의 짝을 이루는 밤의 가스파르 '온딘'을 만나 그게 절정을 이루어 황홀경이 펼쳐진 것이다. 그 순간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후회하리라. 2악장 '교수대'에서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씨가 연상되었다. 사형을 기다리면서 독방에 갇혀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높은 천장의 조그마한 창문 위로 칠흑 같은 밤이 저주를 퍼붓는 그 대목이...... 3악장 '스카르보'에서의 놀라운 입체감과 현란한 굿판이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난쟁이의 마법에 정신을 잃을 뻔했을 정도다.

원아영 피아노 독주회 포스터

불과 2달 전에도 아투즈컴퍼니가 주최한 연주회에서 수준급의 '밤의 가스파르'를 들었는데 과연 누가누가 잘하나니 듣는 입장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요즘 아투즈컴퍼니의 기획의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 독주회 음악회는 믿고 갈 정도로 먼 길을 가도 후회하지 않는다. 4월 26일에 또 아투즈컴퍼니가 매니지먼트하는 피아노 연주회가 열린다고 하니 기다려진다. 요즘 아투즈의 피아노 연주회는 실망시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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