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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38] 리뷰: 주연경 & 주연선 Duo Recital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3.28 08:51
  • 수정 2022.03.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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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7일 일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세 자매가 다 음악을 한다. 피아노를 했다면 피아노 트리오가 결성되었을 건데...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연고가 있다. 바이올린의 첫째 주연주와 셋째 주연경은 아직(?)까지 서울시향의 단원이고 둘째 주연선는 첼로 수석을 하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이직했다. 이들을 기르고 이끈 어머니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출신이다. 온 가족이 음악적 DNA를 공유한 셈이다. 직장뿐만이 아니다. 출신학교도 같다. 이쯤 되면 이들 성장의 큰 그림이 어땠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전략적 사고와 방향을 그리고 경제적 지원과 헌신이 있었는지 쉬 짐작이 간다. 엄친아가 아니고 엄친딸들이자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공적인 안착의 실례다.

바이올린의 주연경과 첼로 주연선

①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4개의 듀엣 BWV 802-805>

원곡이 아닌 건 아무리 다른 악기로 이식해서 연주한다 하면 악기에 정통한 대가의 교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연주를 잘 해도 뚜렷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걸 여실히 증명된 시간이었다. 원래 오르간을 위한 곡으로 구상하다가 악보 판매가 부진할거란 이유로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를 위한 작품집에 수록했을거라 추측할만큼 바이올린과 첼로, 또는 플루트와 바순 등 2개의 악기를 위한 지정보다는 건반악기의 오른손과 왼손 즉 고성과 저성을 지칭하는걸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각각의 파트를 맡았으니 현악기에 특화된 곡은 아니다. 하지만 콘서트의 첫 곡임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 없이 돌파하였다. 이 정도는 워밍업에 불과하다. 정말 현악기를 위한 곡에서는 두 사람이 어떤 호흡과 기교를 선보일지 보여주기 위한 전초전이자 맛베기다.

② 글리에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여덟 개의 듀엣, op39>

러시아 작곡가의 현악기를 위한 소품집은 언제나 좋다. 여덟 개 다 하지 않고 6번과 8번을 빼고 6개만 한 게 내심 아쉬웠을 지경이다. 2번 '가보트'에서 바이올린의 인상적인 슬라이드를 통한 발랄함과 전형적인 민속음악풍의 첼로 저음에서의 완전5와 다중음은 토속적인 정취를 진하게 풍겼으며 3번 '뱃노래'는 약음기를 낀 두 악기, 그중에서도 첼로의 유연한 상향음형에 주연경이 뿜어내는 선율미가 전형적인 러시아 뱃노래의 향기를 풍기게 해줬다. 7번 '스케르초'에서의 두 악기 간의 싱커페이션과 기동력은 잘 부합되었고 모범적이었지만 여기서 놀라긴 이르다. 진짜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다음 곡이었다.

자매연주가 주연경 & 주연선

③ 헨델- 할보르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파사칼리아>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대표적인 곡! 이러면 떠오르는 핸델-할보센의 '파사칼리아'! 연주자나 감상자나 익숙하다. 앞의 바흐가 자의적 과잉이 필수불가결하였다면 할보르센에 의해 현악기의 주법들이 용해된 헨델은 화려함을 덧붙였지만 자연스럽다. 어렵지만 극복 가능한 연주 효과는 만점이라 연주자들에게 제대로 가봉된 맞춤형 드레스같이 착착 핏이 살아난다. 3번 변주에서의 주연경과 주연선의 기동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앞의 바흐와 글리에르에서의 뭔가 빠진 듯한 어색함이 여기서는 전혀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동력에 그러면서도 제어할 수 있는 스피드였다. 폭주하지 않았다. 실내악 입시나 콩쿠르, 오케스트라 채용을 위한 엑섭에서나 볼 수 있는 기교의 호연이었다. 곡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럴만하다.

④ 라벨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삶이 불안하시나요? 도를 믿으세요! 예술의 전당에 가는 길에 남부터미널에서 또 만났다. 공연 입장 전 핸드폰을 끄기 전에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확인한 건 절친의 비트코인 투자하라는 권유 문자였다. 실존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투명은 현대인의 고질병이자 망령인데 라벨의 소나타 1악장에 주연경 & 주연선 두 사람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부조리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어 홀의 분위기 아니, 내 정서를 환기한다. 간결하면서도 촘촘한 악곡 구성에 대한 파악과 연주력이 혼합된 정교함이었을 선보인 2악장에서는 둘 다 칼로 그은 듯한 무슨 기계 같은(스위스 시계공 같았던 라벨이 들었으면 분명 감탄하고 좋아했을듯한) 음정의 정확한 측정, 즉 현의 보잉을 과시했다. 시작은 주연선의 피치카토에 주연경의 바이올린이었다면 이에 뒤질세라 주연경의 피치카토에 주연선도 맞불을 놓았다. 3악장 시작 전, 주연선이 숨을 고르면서 눈으로 악보를 먼저 읽고 가다듬는다. 확실하게 박과 속도를 정립하고 곡에 도입한다. 인상적이며 모범적이고 귀감이다. 요즘 이런 첼로 연주자 흔하지 않다.

부모님께, 찾아준 관객들에게, 그리고 지금까지 인생을 인도한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주트리오와 동년배인 필자 역시 비슷한 인생의 테크트리를 살았다. 필자의 처도 1남 3녀 중 장녀로 미술 조소 전공자다. 둘째는 공예를, 막내는 발레를 전공, 러시아에 유학을 다녀와 시립예술단에서 활동하다 현재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7-80년대 생들 중에는 자매들 모두 음악이나 예술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세 자매를 낳지도 않을뿐더러 세자매 모두 예술 전공 시키는 경우도 드물다. 그때는 그런지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트리오 같이 셋 다 예술계에 자리 잡은 경우는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이제 그들이 엄마가 되니 세자매는 커녕, 애도 안 낳는데... 그때는 그렇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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