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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29] 리뷰: 이정민의 창작오라토리오 '마가 수난곡'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2.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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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1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여의도 영산아트홀

요한이든 마가든 도마든 그리스도의 고난을 누구의 관점으로 적었냐의 차이일 뿐 성서의 복음서 중 마가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 수난 장면에 한국 음악적 요소를 가미한 작곡가 이정민의 창작오라토리오 '마가수난곡'이 2022년 2월 21일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초연되었다. 이런 류의 국악적 요소를 혼합한 성가곡, 전례곡, 성극 등은 이미 천주교 성당에서 많이 행해지고 교회에서도 매번 작곡가만 다를 뿐 자주 올려지는데 이번엔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음악분야 차세대 선정작곡가인 이정민에 의해 음악화되었다.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이정민(맨 좌 피아노 옆)

① 시나위(Prelude)

전체를 이루는 총 13개의 개별적인 악장 중 첫 곡인 전주곡이 제일 길었다. 성경의 내용을 음악으로 전달한다는 오라토리오의 기능과 성격에 부합되고 마치 사극의 타이틀롤 같아 앞으로의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이정민이 시나위라는 연주 스타일에 전주곡이라는 음악이 본격적인 음악작품이 전개되기 전 ‘도입’ 역할의 제목을 같이 붙인 건 그런 의미에서 적절했다. 허나 중반부 피아노와 오르간 두 건반악기에서 갑자기 메시앙 류의 피아노 음형이 등장해 산통을 깼다. 그랬다가 익숙한 C근음의 화음진행에 아르페지오가 나와 친숙했다. C조로 종결되었다. 각각의 요소들 간의 연관성과 인과율이 희박했는데 처음이니 그러려니 했다.

② 마지막 밤, 만찬의 밤 & ③ 가롯 유다를 향하는 말

더 이상 갓 쓰고 도포 입은 소리꾼과 서양 연미복을 착의한 합창단, 가야금과 피아노라는 요소에서 대립과 반대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동서양의 조화는 저번 1월, 역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출신 작곡가 김상욱의 발표회에서 상세히 언급했듯이 2020년대의 당연한 통합, 융합적 결과물이다.

④ 베드로의 부인 예고

이정민이 노래에서의 조성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 수 있는 곡이었다. 일단 고적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예언하는 복선적인 피아노의 전주는 일품이다. 이어 바리톤(예수님)과 테너(베드로)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테너에서의 변화화음의 강도가 급격함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화음의 전환이 거침없어 노래의 선율과 이질감이 쌨다.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는 베드로의 확언에서는 앞의 복잡한 화음 진행의 종지형이 이루어져 듣는 사람도 선율의 실타래를 버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⑤ 감람원의 예수 & ⑥ 가야바의 집

5번 감람원의 예수는 판소리 독창이었다. 5번에서 6번으로 넘어가는 게 왠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5번이 끝나고 무대 앞 스크린의 자막에서도 6번이 올라왔고 소리꾼도 독백을 시작하여 '그 증언도 일치하지 않더라'라는 문장까지 읽고 어색한 침묵과 뻘쭘한 동작이 흐르더니 무대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합창단과 기악단과 함께 나와 방금 읊었던 대사를 다시 반복했다. 전에 멈추었던 ' 그 증언도 일치하지 않더라'라는 문장이 끝나니 프로그램북에서 설명한 팀파니의 일관된 리듬이 발동했다. 이게 의도된 바인지 아리송했다. 성경의 내용을 소리꾼이 전달하고 베드로의 4번에서의 매듭인 베드로의 부인 장면이 나오면서 짧지만 장과 장을 이어주는 장면 음악이 피아노로 나오고 마친다.

지휘자 전상주와 소리깃든 나무콰이어 그리고 판소리 고한돌과 기악팀

⑦ 빌라도의 결정 & ⑧ 십자가 처형 선고

지금까지 내레이터의 역할에 충실했던 소리꾼이 판소리가 아닌 노래를 부른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는 군중의 악다구니가 거세진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죽음 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극의 중반을 넘다 보니 이정민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갔다. 그녀는 하나를 전체 통으로 내놓지 않고 단락과 단락을 블록처럼 잇고 조립한다.

⑨ 유대인의 왕

피아노의 동음 반복으로 마무리된 8번에 이어 건반악기만 남고 다른 기악은 빠졌다. 피아노(오르간) 반주에 맞춘 전형적인 합창곡의 형태다. 같이 하는데 판소리는 대사를 낭송할 때 서편제같이 가끔 서남방언이 섞여 나온다. Santus(거룩할지어다)와 같은 부분에서 6/8박자 계열이 나오는데 절로 박을 타게 만든다. 그렇게 끝나나 했더니 이정민의 성향이 또 발견된다.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포르테로 마치지 않고 그 뒤에 다시 앞의 것이 반복되면서 여운을 남긴다. 퇴장하는 건 소리꾼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소리꾼을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다.

⑩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 ⑪ 십자가 위에서의 말

여성합창으로 이루어진 짧은 간주곡이다. 확실히 곡의 동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길이도 현저히 짧아졌다. 처음의 그 호기롭고 웅대한 전주곡의 기상은 사그라들고 완전히 충전된 배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이제 한 줄 밖에 안 남은듯해 듣는 필자도 8부 능선을 넘는 듯하다. 스크린 자막과 싱크가 안 맞았던 것도 옥에 티였다.

⑫ 운명 후 일어난 징조: 3대의 퍼커셔니스트들의 난타

⑬ 그날에(THat day): 피날레, 마지막 곡에서는 크고 쾅 때리고 마쳐도 되었을 건데.. 그래야지 손뼉 칠 때를 사람들이 알지.....

작곡가 이정민의 창작오라토리오 '마가수난곡'

총평: 장면 음악과 3/8 계열에서 탁월하다. 텍스트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의 변화를 꾀하면서 행보는 갸웃거려지지만 종지로 귀착된다. 총체보단 텍스트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음악이 붙여진다. 엔딩 합창 <그날에>은 4~5개의 각기 다른 부분들의 연속이요 "별들이 하늘에서는" 하는 가사에서는 어김없이 전조와 함께 스타일이 바뀌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과 같이 하향 패시지로 처리되는 방식이다. 곡 전개와 응집도 힘 있고 웅장한 합창이라기보다는 절정 뒤의 다독임을 살포시 놓고 간다. 이번 이정민의 창작 오라토리오 '마가 수난곡'은 듣고 부르는 합창곡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악장과 악곡에서 다양하고 차별화된 특색과 기법을 도입하고 접목해 본 젊은 작곡가의 연구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걸 발판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한 작품 활동을 통해 현장에서 서로 찾는 작곡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번의 실연이 이정민의 앞으로 작품 창작에 큰 자양분이 되었을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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