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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27] 리뷰: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피아노 콘체르토 페스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2.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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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6일 수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베토벤의 황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의 2번 피아노 협주곡을 한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자체가 큰 선물이다. 음악회 제목처럼 피아노 콘체르토의 대축제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사랑을 받는 클래식 피아노 콘체르트를 대표하는 3곡을 세 명의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향연이다. 최영선이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그들과 함께 했다.

최영선이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의 피아노 콘체르토 페스타

① 손정범의 베토벤 5번 협주곡 '황제'- 2% 부족한 천연암반수

2017년 독일 뮌헨 ARD 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오른 손정범의 고음은 순도 100% 청정 그 자체였다. 그가 치는 고음은 마치 닌텐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의 광활한 대지에서 시커탑을 발견하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동을 하기 위한 낙수 한 방울과 같았다. 대지가 깨어나고 새들이 노래하게 만들고 밝은 햇살이 가득 차게 만드는 고음이었다. 위풍당당하게 시작한 황제의 1악장은 탄력 넘쳤으나 손정범과 오케스트라 둘 다 산만하고 합이 잘 맞지 않았다. 낭만적이고 고요한 2악장의 꿈나라를 거쳐서야 안정을 찾은 솔리스트와 악단은 3악장에서 저돌적인 맹수 같은 야생으로 휘몰아쳤으나 3악장 마지막에 또 미스가 나왔다. 그래서 2% 부족하다.

베토벤 황제를 협연한 피아니스트 손정범

② 김경민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 -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 전문사를 졸업한 피아니스트 김경민은 정교하고 예리한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보고 듣기만 해도 거침없고 시원스러웠던 진행에서 1악장 전개부의 2주제가 악몽이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필자도 무의식적으로 '뭐 하는 거야?'라고 낮게 소리를 지른 청천벽력이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프레이즈가 끝나고 다시 합류하였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녀나 필자나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 1악장은 제대로 치고 들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저 어떻게라도 무사히 마무리되기만을 바란거와 마찬가지의 시간의 흐름이었다. 협주곡이 3악장인 건 천지조화다. 가운데에 느린 악장을 배치하여 균형을 잡고 한숨 돌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며 3이라는 숫자 자체가 세 다리가 안정적으로 솥을 떠받친다는 올바른(正) 솥(鼎), 즉 ‘정정正鼎’이다. 2악장에서의 재기발랄함을 통해 가볍고 위트 있게 김경민은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지만 1악장에서의 충격이 커서 그랬는지 3악장까지 밸런스가 깨진 상태에서의 잔실수와 고르지 못한 호흡으로 인해 본인의 기량을 100% 선보이지 못한 거 같아 아쉬웠다. 듣는 필자도 아팠다.

차이코프스키 1번의 피아니스트 김경민

③ 아비람 라이케르트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내가 제일 잘나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인 아비람 라이케르트는 확실히 대가란 젊은 패기와 열정과는 다른 안정감과 여유만만함으로 대가란 이래야 한다는 걸 여실히 증명한 시간이었다. 좋은 연주란, 특히 실연에선 청자는 불안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연주자의 긴장과 떨림, 무대에서의 난조는 어디까지 매 순간 연주자의 사정과 컨디션 그리고 실력이지 그걸 청자까지 알고 보고 이해의 대상이 되어서는 어디까지나 지인 위주, 동호회, 학교에서의 동문들끼리의 다독거림이지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은 그런 것들이 핑계에 불과하다. 아비람 라이케르트는 불필요한 힘을 몸에서 완전히 뺀 모습으로 수백수천번 치고 또 쳐 몸에 완벽하게 익어버린 라흐마니노프를 오늘 롯데콘서트홀에서 있는 모든 사람들(그게 협연자들, 지휘자든, 오케스트라든 객석의 관객이든 무관하게)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자세였다. 사뭇 거만하게 보이기까지 한 라이케르트의 라흐마니노프는 협주곡이라는 지휘자와의 불꽃 튀는 기싸움을 애당초 저버리고 강한 자의식으로 스스로 음악을 끌고 가면서 노골적으로 너희가 나에게 맞추고 따라와 하면서 음악을 끌고 갔다. 어쩌겠는가! 그게 라이케르트의 한국에서의 위치요 실력이요 위상인데....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와 지휘자 최영선

여담: 롯데콘서트홀은 아직도 QR을 찍고 있더라. 예술의전당은 지난주에 갔어도 전자출입명부 안 하고 다음 주부터는 QR도 폐지될 거 같던데...2년이 넘어가는 코로나 기간 동안 음악회도 하루 전날 취소되기 일수요, 셧다운으로 공연장 폐쇄도 다반사요 지금은 비록 시행정지되었지만 작년 12월부터 1월까지 약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음악 들으러 갈 때도 방역패스를 제출하라고 하더니 이번 음악회가 QR을 찍으면서 온 동네방네 내 흔적을 남긴 마지막 음악회가 될 거 같다. 오늘 예당에 코심 연주회 평을 쓰러 가긴 하지만 거기 어차피 이제 QR 안 찍으니..... 정부와 언론 그리고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할 지리라... 방역이라는 명목하에 얼마나 부당하게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 당하고 음악가, 예술가들이 그 기간 동안 피눈물을 흘렸는지..... 예술가들을 돕고 지원하는 최상의 방책은 자신의 지갑을 열고 와서 듣고 보고 뜨겁게 박수 쳐주는거다. 2시간이 넘은 대장정을 이번에도 최영선과 밀레니엄심포니가 해냈다. 밀레니엄과 최영선의 공연에 가면 배부른다. 우선 제대로 한상 거하게 차린다. 밀레니엄심포니 측에서 공연장과 협의해 커튼콜 시는 자유롭게 사진 찍을 수 있게 조치한 것도 편했다. 밀레니엄심포니의 다음 정찬은 무엇일까? 이런 어려운 여건과 환경에서도 순수민간교향악단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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