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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21] 리뷰: 김상욱 작곡 발표회 '법고창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1.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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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1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일신홀

처음의 프레젠테이션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클래식이나 창작음악발표회에 가면 종종 이런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프레젠테이션 같은 작곡가의 작곡에 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종종 있는데 그건 기술자, 개발자 모아놓고 즉 전문가 집단의 학술대회 이상도 아니다. 스마트폰이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졌는지는 엔지니어, 개발자, 또는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궁금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자기에 맞게 효율적으로 쓰고 즐기는데 초점을 맞추지 내부 회로도에 관해선 하등 관심도 없는데 외부 공개적인 작곡발표회에서까지 이런 PPT는 정작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현악4중주 팀이 입장하고 뒤이어 가야금 주자가 나와 조율을 하고 7시45분(음악회 개시 시각 15분 후에야)에서나 첼로의 첫 음이 그어졌다.

무대 인사하는 작곡가 김상욱,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자신이 주인공인 날에는 스포트라이트를 오롯이 받아도 무방할텐데...그리고 정작 음악은 4곡, 총 45분에 불과해 아쉬워 더 듣고 싶었다.
무대 인사하는 작곡가 김상욱,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자신이 주인공인 날에는 스포트라이트를 오롯이 받아도 무방할텐데...그리고 정작 음악은 4곡, 총 45분에 불과해 아쉬워 더 듣고 싶었다.

앞의 연설을 듣지 않고 들었더라면 놀라우리만큼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와 일치에 더욱 빠져들었을거다. 미분음과 시김새, 평균율 그따위 작곡가와 연구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왜 청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가? 여기가 학교인가? 스마트폰 만들 때 기술상의 이런저런 문제가 난관이었으며 이걸 이런 방식으로 극복했다고 떠드는 건 공장이나 연구실에서 할 소리다. 음악이면 충분하다.

김상욱은 김죽파 가야금 산조와 민간풍류 가락 일부를 모델로 하여 멋스러움을 들어내고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깜짝 놀랄 만큼 가장 서양음악의 전통적인 기본편성인 현악4중주와 부합되고 조화를 이루면서 풍류와 유머스러움, 풍자와 우아, 받고 끊고 당기고 밀고 밀고 하는 시김새를 구현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뒤이어 이어진 대금과 현악4중주의 <청성자진한잎>에서도 작곡가 김상욱의 고민과 해결책은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각 악기마다의 메커니즘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 앞의 가야금과 현악4중주와는 다르게 횡으로 부는, 취구에 바람을 집어넣어 소리를 내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특색에 맞게끔 현악기도 글리산도와 트릴 등으로 대금에 스며들게 하였다. 국악과 양악의 가장 초보적인 구분이 악기제조의 차이이며 거기서 오는 음정의 불일치와 음률에 있는데 김상욱은 그걸 극복하면서 악기 간의 경계의 구분과 나눔이 아닌 하나로 통일하였다. 그러니 클라리넷과 현악4중주, 피아노와 현악4중주라는 서양악기편성 대신 대금, 가야금, 아쟁 등이 그 자리에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이질적이지 않은 글로벌스탠더드 실내악 편성에 편입이 되었다. 현을 튕기지 않고 활로 그어서 소리 내는 아쟁이 나오니 현악기들의 주법도 달라졌다. 가야금과 할 때는 그렇게 흔하던 피치카토가 여기선 중간부에 가서야 나왔다. <허튼 가락>에서는 비올라-제2바이올린-제1바이올린-첼로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집산되는 성부들의 캐논과 함께 두껍고 얇은 밀도의 변화를 더했다. 특히나 인상적인 건 따로 독립적으로 떼어 연주해도 전혀 무방할 2악장이었다. 김상욱의 개성이 가장 짙게 배어있으면서 아름다운 목가풍의 격렬해지는 비가 그리고 애가였다. 마지막 곡 피리와의 <대풍류>는 풍부한 선율을 변주곡풍으로 암보로 이끌어가는 피리 주자에 현악의 반주라는 이분으로 구성된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탈을 쓰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게 만드는 무아였다.

음악회 커튼콜에는 협연한 4명의 연주자들까지 같이 나와 무대인사를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그런 점이 앞의 15분짜리 프레젠테이션보다 훨씬 축제의 장을 만든다.
음악회 커튼콜에는 협연한 4명의 연주자들까지 같이 나와 무대인사를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그런 점이 앞의 15분짜리 프레젠테이션보다 훨씬 축제의 장을 만든다.

이제 더 이상 양악이네 국악이네 하는 해 묻은 논쟁과 시대적 배경은 서양음악이 유입된 지 100여년이 지난 2020년대에는 종식을 하고 악기의 구분과 음악인들이 자신의 전공(전공이라 쓰고 할 줄 알고 배운 것들이라고 읽는다)을 초월하여 협소하고 고립된 전문가들의 시대를 종결하고 통섭으로서의 진정한 융합, 즉 음악만이 살아 남고 존재하는 새 시대의 여명을 김상욱에게 보았다. 이날치밴드의 기악에서의 재현과 시도였다.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시대와 사회, 환경, 국민과 같이 동행해야 한다. 그게 바로 현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이요 우리 대한민국의 클래식 음악이든 국악이든 될 것이다. 국악? 용어부터 틀렸다. 클래식? 판소리? 트로트? 장르의 구분?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는 객체들이 듣고 즐기고 향유하는 음악 전체가 국악이요 이 시대의 음악이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 20211' 일환이었던 김상욱 작곡발표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 20211' 일환이었던 김상욱 작곡발표회

이제 음악대학도 클래식이네 국악이네 실용음악이네 하는 나눔 대신 안 그래도 인구감소로 학생들도 적어지는데 그냥 작곡과 또는 창작음악과로 충분하고 합쳐야 되고 ARKO 창작음악축전 같은 기획도 분야를 나눠 뽑고 연주하는 게 아닌 하나로 통합해 나아가야 됨을 새삼 오늘의 음악회를 통해 절감했다. 음악이면 음악이지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겠는가? 어차피 백년을 넘게 혼란과 정체성의 고민을 겪어온 우리나라에서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음악회 제목이 다시 눈에 큼지막하게 들어온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 한다는 뜻이다.,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 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거니 김상욱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여기에 동도서기(東道西器), 서양의 기술을 우리의 정신에 접목하면 된다. 또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까지. 음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자성어가 끊이지 않고 계속 머리에 떠오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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