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달 뜨면 시 생각나고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2.01.19 10:55
  • 수정 2023.03.23 22: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흰 달 소월

김소월은 음력 1902년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1934년 12월 24에 사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고 소월은 흰 달이란 필명이다. 맑고 고운 그의 심성과 시심이 잘 나타나는 듯하다. 오산학교와 배재고등 보통학교를 거쳐 도쿄대 상과를 중퇴한다. 1920년 시 「낭인의 봄」으로 데뷔하고 1926 동아일보 정주지국 설립했지만 실패한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다.

스승 김억의 애제자였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처럼 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리시스』나 모두 소크라테스가 말하듯 주체로 나오지만 제자 플라톤의 저서다. 소크라테스의 학설인지 플라톤의 학설인지 이견이 많다. 이처럼 김억과 김소월도 긴밀하다. 스승의 「먼후일」이란 시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썼으며 「못 잊어」 시도 누구의 시인지 논란이 있지만 김소월이 김억을 오마주해서 같은 제목으로 시를 쓰고 스승도 독려했다. 그는 소월을 진정한 시인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지만 독립운동하다가 변절해서 부각되지 않는다.

기존 번역들이 너무 문법으로만 번역하고 시의 맛이 살지 않아 간결하게 시인의 의도를 살려 필자가 번역했다.​

 

먼 후일 ​ ​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Long Time Later

 

Long time later, you look for me,

then I will say ‘forgot’ ​

 

You blame me inside,

‘missed so bad, forgot’ ​

 

Still blame me,

‘unbelievable; forgot’ ​

 

Today nor yesterday

long time later then ‘forgot’

 

가장 시적 번역이다. 소월님도 좋아할 듯하다. so bad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척으로 so much와 같다. still 부분은 though로 해서 아래 today와 두운 맞춰도 되지만 still이 더 시적이다. 소월 시는 그때에, 그래도 이런 라임도 중요해서 살렸다. 이제 김억의 먼 후일을 번역해 보자. 필자가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시다. 내 인생관과 같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데아, 영혼불멸설을 발전시켰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이든 그의 사상이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은 위대한 학문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연극이 발달한 그리스에서 그렇다면 극으로 쓰였을 거다. 그는 생존했고 최고 지성인 그의 최악의 범죄는 악법도 법이다란 착각이다. 영혼의 스승을 너무 빨리 보냈다. 소월은 김억의 시를 계승했다. 두 제자들의 스승은 그로 인해 불멸한다. ​

 

​먼 후일

 

사나이의 생각은 믿기 어렵고

아낙네의 사랑은 변키 쉽다고

우리들은 모두 다 한숨지우나

먼 후일에는 그것조차 잊으리 ​

 

Long Time Later

 

Man’s thinking is hard to believe,

woman's love is easy to change;

we all sigh but

long time later forget that even ​

 

진달래꽃​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Azalea

 

Disgusted to see me you leave,

I send you wordlessly easily ​

 

Mt. Yaksan in Youngbyon

azaleas

I gather armful and scatter on your way ​

 

Step by step

tread softly

petals placed, go ​

 

Disgusted to see me you leave,

no, I never weep ​ ​

 

진달래꽃은 azalea flower가 아니다. 장미가 rose flower, 백합이 lily flower가 아니듯. 첫 줄을 분사 처리하면 짧아져 시에 좋다. 때문에 의미가 된다. will이 거리감이 좀 있어 존칭의 느낌이 나지만 길이가 길어져 현재형으로 가까운 미래를 표현했다. let you go로 해도 되지만 see, send 슬랜트 라임을 맞췄다. 제목 진달래꽃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상징이라 단수 처리했고 시 안에서는 복수로 했다.

김억이 예이츠 시를 번역해서 소월도 예이츠를 알고 있었다. 예이츠를 오마주한 부분 tread softly 즈려밟다 표현을 예이츠와 같게 했다. 시는 산문이 아니다. 간결해야 한다. 그래서 생략 가능한 의미는 생략했다. 마지막 죽어도를 하버드대 한국어 교수 데이비드 매캔 교수도 진짜 죽는다는 영어로 번역했고 대한민국 모든 번역자들이 그렇게 번역했지만 죽어도는 가정법 죽더라도가 아니라 울지 않겠다를 꾸미는 부사적 용법이다. 결코, 결단코, 절대 울지 않겠다는 강조다.

못이 죽어도 안 빠진다 할 때 even if nail dies...나 친구가 죽어도 안 온다 할 때 even if she dies... 이런 표현은 말이 안 된다. 새빨간 거짓말 번역이 red lie가 아니듯이 정확한 한국어를 익히고 번역해야 한다. 한국에서 영문과를 나오거나 해외에서 영문학을 해도 다 저런 식의 번역이 많다. 그래서 한국어 전공자가 번역해야 더 좋은 번역이다.

앞부분 고이 보내드린다도 요즘 유행어 살려는 드릴 게 의미다.

매캔 교수나 다른 번역자도 gently로 했는데 저 고이는 찌질하게 꼬장부리지 않고, 탈 없이의 뜻이다. 다정하게가 아니라 순탄하게, 별일 없이, 곱게 그대로 포장해서 보낸다 의미다. 또한 매캔 교수는 without a word로 했는데 왜 길게 시에 넣나? 그런 번역이 많다.​​ ​ 시 번역을 보면 다 산문이다. 영한이든 한영 번역이든 시를 번역한 건지 수필을 번역한 건지 논문을 쓴 건지. 영어를 잘한다고 번역을 잘하는 게 아니다. 시는 번역본도 시여야 한다.

 

초혼​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소월은 오산학교 때 세 살 많은 오순을 사랑했지만 재학 중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강제 혼인했다. 후에 오순도 다른 사람과 혼인했다. 둘의 연락은 끊겼지만 소월은 그녀를 잊지 못했다. 몇 년 뒤 그녀가 남편에게 맞아 사망했다. 남편은 의처증으로 폭력을 일삼았다. 소월은 장례식에 참석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초혼이라는 시를 바쳤다. 이 사연을 들으니 그의 시 모두가 그녀에 대한 시처럼 느껴진다. 친구 김상섭을 두고 쓴 시라는 설도 있지만 절절함의 강도를 보면 친구는 아닌 듯하다. 친구에겐 심중에 남은 말도 없고 부르다가 본인이 죽을 정도도 아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전쟁터 병원에서 한용운의 시집을 읽은 군인들은 나았고 김소월의 시를 읽은 군인들은 죽었다고. 한용운의 시는 긍정적이고 소월의 시는 부정적이라 그런 거라고 하셨는데 와 닿는다. 뜬금없이 삼 년 전 소월이 꿈이 나왔다. 특별히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었고 평소 생각하던 시인도 아니다. 꿈에서 그는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다고 말했고 그 아들은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 가 본 적 없다고, 꿈의 내용은 그게 다다.

그의 요절을 단순히 그 당시 유행하고 많이들 죽었던 결핵인가 했는데 요즘 찾아보니 극단 선택일 수도 있고 우울했단 글이 있다. 신기했다. 그래서 첫 한국 명시인으로 그를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꿈을 그대로 쓴 내 시를 올린다. 영번역해서 영국 시인에게 보였더니 이외로 좋다면서 왜 죽고 싶은지 이유를 쓰면 좋겠다고 한다. 그건 아니다. 시는 논리를 다 쓸 필요는 없다. 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명예로 각자 삶의 무게가 다를 텐데 어떤 시를 규정지어 쓰면 감동이 낮아진다. 이유 없는 시도 괜찮다. 한 사람의 평이 다 맞는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오스트리아에선 죽고 싶었어 ​

 

여기서도 그래 ​

 

I Wanted to Die in Austria ​ ​

 

I wanted to die in Austria

I wanted to die in Austria

I wanted to die in Austria

I wanted to die in Austria

I wanted to die in Austria ​

 

Even same here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