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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부활한 정통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12.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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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이후 무려 6년 만에 방영하는 정통 대하드라마라고 하니 열 일을 제쳐두고 본방사수했다. MBC의 '조선왕조오백년'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20세기 최고의 사극이자 정통 사극의 전성기를 연 이환경 & 김재형 콤비의 '용의 눈물'을 30번 넘게 풀청하거나 최근의(그렇다 하더라도 7년 전의) '정도전'을 완주한 사람이라면 외우고 외울 재탕에 삼탕도 모자란 사극의 단골 소재인 조선 개국사 이방원의 이야기인지라 별 새로울 건 없지만 그래도 대하드라마의 귀환이자 40주년 기념작이자 32부로 편성된 '태종 이방원'이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12월 11일 토요일 첫 회를 시청한 후기다.

KBS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타이틀 샷

일단 퓨전 사극이란 미명 하에 고증은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역사인물들만 빌려와 작가의 뇌피셜과 판타지로 마음대로 내놓은 신파와 로맨스 위주의 요즘 사극에 비해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고 제작비만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정치, 전쟁을 소재한 중장년층 남성들의 기호에 맞는 사극을 다시 제작하였단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태종 18년, 자신의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훗날 세종)에게 양위하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자지간의 장면은 연극 같았다. 태종(주상욱 분)이 사람과 괴물의 차이를 운운하는 대사가 앞으로 이 드라마가 갈 방향을 제시하는 거 같았다. 즉 "너는 성군이 되거라. 내가 모든 악행은 뒤집어 쓸 테니"

태종이 자신의 아들인 세종에게 양위하는 장면
태종이 자신의 아들인 세종에게 양위하는 장면

'용의눈물'처럼 '태종 이방원'도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하지만 '용의 눈물' 때와 지금은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마초적이며 남성적인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게 통영이 되던 시대에 비해 지금은 페미니즘의 대두와 여성 지위의 상승, 인권에 대한 개념 정립 및 중요성, 갑질 제거 및 공정과 평등에 대한 추구 등 사회 기류가 그떄와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했다. 구국의 영웅이자 나라를 세운 위대한 인물이 아닌 가족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천륜 타령을 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명분을 먼저 따지면서 비난을 두려워하는 그런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에 집중한다. (사실 이런 경향은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보이고 여러 번 그래왔는데 여기서도 여지없이 그런 트렌드가 적용된 것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태종의 양위 장면으로부터 대단원의 막이 열린다.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한 드라마, 영화, 뮤지컬, 소설 등의 콘텐츠들은 그 사람의 일대기와 인물 위주로 집중되면서 극을 끌어가고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정도전, 장영실, 대왕 세종' 등등의 작명 작명보단 '왕과비',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으로 역사를 포괄적으로 포용하는 작법과 전개가 더욱 진중하며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다. 그건 현대극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똑같이 프로야구를 다룬 영화에서도 '슈퍼스타 감사용'은 한 개인이 우선이고 주변으로 퍼진다면 '퍼펙트게임', '스카우트' 등은 전체를 조망하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군상들을 다루니 스케일이 다르고 주인공이 여럿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회군을 결정하고 왕이 있는 평양으로 진군을 했음에도 야영지의 밤에 이성계(김영철 분)이 자신의 의형제인 이지란(선동혁 분)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의명분을 입에 올리고 자식들 걱정하며 청승을 떠는 장면,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 역의 배우 선동혁

친모인 한씨와 계모인 강씨 그리고 이복동생들을 데리고 포천을 떠나 이성계의 본거지인 동북면(지금의 함흥)으로 피신하면서 훗날 원수가 되는 계모 강씨(예지원 분)과 나란히 앉아 감사하고 네가 먼저 마음을 열었으니 나도 널 내 자식으로 받아주겠다고 무슨 요즘 시대나 할만한 센티멘털한 대사를 읊조리는 장면,

조만간 둘 사이가 원수가 되어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날 두 사람

형들의 생사를 몰라 최영(송영철 분)의 군사를 바로 앞에 둔 순간에도 공격을 망설이게 하고 아버지를 만류하는 이성계의 아들들과 "저 병사들이 보이지 않느냐? 누군가의 핏줄이다. 내 명령에 목숨을 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가라! 너희들도 싸워라..."라고 일갈하는 이성계의 오글거리는 대사들. 이런 감성적인 요소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 앞으로의 방향이 뻔히 보인다.

CG로 처리된 평양성 전투 장면! 이성계 vs 최영

아! 또 있다. 피난 중에 첩인 강씨에게 '자네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니 그렇다'라고 쏘아붙이면서 졸지에 속 좁고 덕이 없는 사람으로 되어버린 이방원의 친모 한씨(용의 눈물에선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역할이지만), 지나치게 똘똘하고 야무진 이방원의 처인 민씨(박진희 분, 후에 원경왕후) 등으로 기존의 나약하고 무능했던 우왕(임지균 분)을 수도가 비다시피 털털 털어 군사를 내주고도 불안해하지 않고 궁녀들과 술이나 마시면서 광기를 부리는 인물을 설정해 버린 작가 이정우와 시도 때도 없이 점철해버린 '반지의 제왕' 류의 지나치게 서양 판타지 풍의 음악.

광기를 보이는 우왕 역을 연기한 배우 임지규

변하지 않은 게 몇 가지 있어 반가웠다. 지난 '정도전'에 이어 이번에도 이지란 역을 연기하는 선동혁의 구수한 '형니메~~' 그리고 KBS 사극의 간판 김도현 성우의 품격 있는 목소리의 내레이션은 굽은 나무 선산을 지키듯하다.

이제 겨우 일회가 방송되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기 적은 우려와 비평을 보란 듯이 만회하고 다시 정통사극의 전성시대를 열 것인지 아님 벌써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감성적인 신파 요소로 더욱 흘러 이도 저도 아닌 잡탕 용두사미가 되어 겨우 재개된 정통사극에 찬물을 끼얹게 될는지는 두고 볼일이다. 오늘 12월 12일 일요일 밤 9시 40분, 2회가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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