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475] 리뷰: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백남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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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75] 리뷰: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백남준을 만나다'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1.09.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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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개최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2021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의 일환 '백남준을 만나다'의 공연에서 백남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 케이지의 작품 2개와 화음챔버가 위촉한 백영은과 최은진 그리고 공모에 선정된 김신과 전현석의 작품을 연주되었다.

무대인사를 하는 작곡가 백영은(가장 오른쪽)

첫 곡으로 선택된 존 케이지의 <네 부분의 현악4중주> 중 2악장 '느리게 흔들리며'는 미국의 가을을 경험해 보지 못한 필자에겐 '뉴욕의 가을'이나 '가을의 전설' 같은 감성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건조하고 황량하며 푸석푸석한 폐도(廢道)였다.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나거나 그 기간 동안 활동한 작곡가들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어쿠스틱의 극대화를 꾀했다. 지금에야 손에서 1분 1초도 떼지 않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코앞에 다가온 증강현실에 알고리즘의 조합, 빅데이터의 활용, 최첨단 기계로 인해 얼마든지 다양하고 불가능이 없는 소리의 조합을 쉽게 꾀할 수 있지만 새로움에 대한 상상력과 도전만 가득하고 그걸 밑받침하는 기술이 따라오지 못한 시기에는 인간의 한계치까지 끌어내면서 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곡들을 시도하였다. <네 부분의 현악4중주> 역시 거기서 보편적이지 않은 연주 기법과 비 상투적인 현악기들의 소리가 인간들의 행위로 창출되었을 20세기 중후반이야 신기하고 새롭고 경이로웠겠지만 지금은 극도의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이 버튼 한번이며 그런 사운드는 기계로 쉽게 뽑아낼 수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되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인간이 직접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지 MIDI로 듣지 않은 것과 대척점이다. <네 부분의 현악4중주>를 자신들의 고유 레퍼토리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즐겨 연주할 현악4중주팀은 없을거다.

그런 의미에서 김신의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역시 입으로 목관악기를 통해 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소리들을 끄집어 내려고 한 온갖 바람과 비말이 난무한 작품이었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 작품을 들을 때 가까이에서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으리.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 입으로 듣는 음악(1963), 백남준아트센터

최은진의 <낡은 기억들>의 1악장은 스토리텔링이 명확했다. 거북선이 움직였다. 과거의 기억 속으로 닻을 올리고 위용도 당당하게 항진하며 거문고의 8분음표진행으로 가속한다. 2악장의 거북선 문양은 거북선을 구성하는 소재로서의 음악적 오브제와의 연결로 국악기와 양악기의 이상적인 밸런스였다. 두 가지 다른 요소가 혼합하였는데 전혀 이질감이 없었고 잘 섞였다.2악장 마지막 부분부터 지금까지 전개와는 사뭇 다르게 국악 장단을 비롯하여 너무 많은 기존의 음악적 요소들이 등장하며 그전처럼의 융합이 반감된 게 아쉬웠다.

프렉탈 거북선, 대전시립미술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시대와 나라를 잘 만나 대접받는 거다. 길거리의 소음을 진실로 좋아해서 이런 작품을 남겼다면 2020년대 대한민국의 길거리 한 모퉁이 빌라에서 하루만 살아보라고 존 케이지를 데리고 오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공사판의 드릴과 해머 소리에 덜컹거리면서 지나다니는 지게차와 좁은 골목에서 아슬아슬하게 고개 운전을 하는 마을버스, 골목 모서리 편의점에서는 밤새워 술 먹고 욕지거리하면서 악쓰고 싸우고 건너편 학교 오물장에서는 프레셔 돌아가는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온갖 데모꾼과 시위대가 귓청이 떨어져나가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서울의 한복판에 '침묵'과 '고요'가 절실히 요구되는 마당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배부른 소리인가. 이런 판국에 그저 4분 33초 동안 멍하니 시간 때우기 동안 뭔가 해프닝을 일으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혼났다. 호응하고 맞장구 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케이지가 원했던 퍼포먼스가 되지 나만 원숭이, 불한당으로 남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차라리 끝나고 브라보를 외친 학생들이야 말로 벌거숭이 임금님에게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친 진실한 사람일 테다.

전현석은 음악에 대한 철학과 취향이 공간의 물리적 접근을 통한 소리와 공명에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소장된 TV Garden

엔딩을 장식한 백영은의 한 대의 비올라와 2대의 타악기를 위한 <TV Garden>은 악기의 취급과 활용도가 월등하게 능숙한 작품이었다. 왜 두 명의 타악기 주자가 무대의 양쪽 구석에서 종소리와 함께 세팅된 무대 중앙의 타악기로 다가오는지 빔프로젝터로 쏴진 백남준의 동명작품 <TV Garden>을 동시에 보고 들으면 알 수 있다. 담아내는 내용이 음악과 밀접하기 때문에 겉돌지 않는다. 그 안에 원시적인 생명력을 담아내면서 코로나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원동력을 선사한다. 물론 백영은이 이 곡을 위촉받아 작곡한 2017년은 백영은이든 백남준이든 미증유의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상상조차 예상치 못했을 테지만 백영은이 정원에 이미 담은 백남준의 굴곡진 삶은 과거를 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과 백남준을 추모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 생명의 존재 이유를 조명하며 인간 전체를 조망한다. 그래서인지 종지로 치달을수록 비올라의 선율은 점점 비가(Elegy)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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