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시성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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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시성 타고르
  • 김정은 전문 기자
    김정은 전문 기자 1poemday@naver.com
  • 승인 2021.07.2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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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나는 이름
타고르(사진=다음 갈무리)
타고르(사진=다음 갈무리)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1861년 5월 7일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 1941년 8월 7일 사망한다. 19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유럽인이며 아일랜드 유명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예이츠와 절친이다. 소월과 백석의 시는 예이츠 시를 오마주했으며 타고르의 시는 한용운이 오마주한 듯하다. 한용운 시의 ‘님’은 타고르 시에서의 절대자가 연상되고 비슷한 시상과 구절들이 많다.

 타고르는 인도 문학을 서양에 소개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서양 문학을 인도에 소개하기도 했다. 현대 인도의 뛰어난 창조 예술가이며 인도 벵골어로 쓴 본인 시를 영번역했다. 8살 때 시를 쓰고, 16세에 Bhinusiha(Sun Lion)라는 필명으로 첫 시를 발표하여 벵골(남아시아 동북부 지방을 칭하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있다)의 P.B.셸리라고 불렸고, 단편 소설가이기도 하다.

 인도주의자, 보편주의자, 국제주의자로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벵골 르네상스의 기수이며 형제들도 유명한 예술가, 사상가들이다. 그림, 스케치, 낙서, 수백 권의 책, 약 2천 개의 시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시성을 발전시켰고, 그가 세운 비스바바라티 대학에도 남아 있다.

 타고르는 고전적 형식을 버리고 언어적 엄격함에 저항함으로써 벵골 예술을 현대화했고 소설, 이야기, 시, 수필, 무용극은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주제를 다룬다. 기탄잘리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며, 시, 이야기, 소설은 서정성, 구어체, 자연주의로 호평받았다. 13명의 살아남은 아이들 중 막내이며 친할아버지는 빅토리아 왕족의 충신이었고 아버지는 친구 람 모한 로이가 옹호하는 브라만주의 철학을 만들어냈고, 로이가 죽은 후 브라만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타고르는 어머니가 그의 어린 시절에 죽고, 아버지는 널리 여행하여 하인들이 길렀다. 그의 집안은 문학 잡지의 출간을 주관했고 맏형은 존경받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다른 형제는 공무원이고 또 다른 형제는 음악가, 작곡가, 극작가이고 여동생은 소설가다.

 타고르는 교실에서의 교육을 피하고 그림, 해부학, 지리학과 역사, 문학, 수학,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인 영어를 배웠다. 그는 정규 교육을 싫어했기에 학구적인 고난이 되었고 정식 교육이 사물을 설명하지 못하고 호기심을 없앤다고 주장했다.

 호기심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데 그런 노크 때문에 무엇이 소년의 마음속에서 깨어났는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는 아마 바보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로써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을 교육 평가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역사, 천문학,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쳤다. 타고르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를 읽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의 역사에 대해 토론했고, 유명 시를 연구했다.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하인들을 짜증나게 했고 바깥 세상과 자연에 몰두하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타고르는 런던대학에서 잠시 법을 배웠으나, 다시 학교를 떠났고 대신 셰익스피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를 선택했다. 생동감 넘치는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민요는 타고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5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 중 2명은 어린 시절에 사망한다.

 1913년 11월, 타고르는 자신이 그 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1912년 기탄잘리의 이상주의와 서양인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성향을 인정하였다. 1915년 영국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으나 1919년 잘리안왈라 바그 학살 이후 작위를 포기했다.

 인도의 모든 국민의 마음이란 뜻인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 국가를 작사하고 인두교 전통노래를 기반으로 직접 작곡했고, 방글라데시의 나의 금빛 벵골이란 뜻인 아마르 쇼나르 방라(Amar Shonar Bangla) 국가를 작사했다. 이 곡은 방글라데시가 인도의 한 주에 속해 있을 때부터 불리워 후에 국가가 됐다. 스리랑카 국가의 작곡가인 스리랑카 마타는 타고르의 학생이었고, 이 곡은 타고르의 스타일에 영감받았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가를 보면 타고르의 작사 능력도 알 수 있다.

 인도 국가 :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대여, 승리 있으라, 인도의 운명을 살피는 그대여...중략...벵골이여, 빈디아, 히말라야, 야무나, 갠지스여, 온 곳에서 파도치는 모든 대양이여, 일어나 그대의 경이로운 이름을 알리고 그대의 성스러운 축복을 기도하며 그대의 영광스런 승리를 노래하라. 모든 이에게 행복을 전하는 그대여, 승리 있으라, 인도의 운명을 수호하는 이여! 승리를, 승리를, 승리를, 승리, 승리, 승리, 승리를 그대에게.

 방글라데시 국가 : 나의 금빛 벵골, 나는 그대를 사랑하리. 영원한 그대의 하늘과 바람은 내 삶에서 피리를 부네...중략...어머니여, 그대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차면 나는 눈물 위를 표류하리. 금빛 벵골, 나는 당신을 사랑하리.

 타고르는 일본을 잠시 찬양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제국주의를 비판했고 일본 방문 후 우리나라를 들르지 못한 미안함에 동아일보에 유명한 우리나라 찬양 시를 보냈지만 4줄 메모를 써준 걸 시로 포장했다, 다른 그의 시와 덧붙여 길게 만들었다 등 진위 논란도 있다. 타고르의 시를 읽어보자.

 

Grant Me                

 

Let me not pray to be sheltered from dangers

but to be fearless in facing them.                  

 

Let me not beg for the stilling of my pain

but for the heart to conquer it.

 

Let me not look for allies in life's battlefield

but to my own strength.

 

Let me not crave in anxious fear to be saved    

but hope for the patience to win my freedom.

 

Grant me that I may not be a coward,

feeling your mercy in my success alone;

but let me find the grasp of your hand in my failure.

 

들어주소서

 

고난을 피하기보다

두렴 없이 마주하기를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이 그치기보다

마음이 이겨내게 하소서                      

 

삶의 싸움터에서 친구를 찾기보다              

자신의 힘을 알게 하소서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인내로 자유롭게 되게 하소서  

 

겁쟁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성공할 때만 당신의 자비를 느끼지 않고                  

실패할 때라도 당신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Gitanjali 17

I am only waiting for love to give myself up at last into his hands. That is why it is so late and why I have been guilty of such omissions.​

They come with their laws and their code s to bind me fast; but I evade them ever, for I am only waiting for love to give myself up at last into his hands.​

People blame me and call me heedless; I doubt not they are right in their blame.​

The market day is over and work is all done for the busy. Those who came to call me in vain have gone back in anger. I am only waiting for love to give myself up at last into his hands.​

 

기탄잘리 17

 

나는 오직 사랑을 기다립니다.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기기 위해. 이로 인해 더디며, 내가 게으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법과 규칙으로 나를 굳게 묶지만 난 그들을 피합니다. 오직 사랑을 기다리고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기기 위해.

나를 꾸짖고 경솔하다 말하는 그들의 비난은 당연합니다.

장날은 끝나고 바쁜 이들의 일과도 끝납니다. 나를 부르러 왔던 사람들은 헛걸음에 화내며 돌아갑니다. 나는 오직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길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The Judge

 

Say of him what you please, but I know my child's failings.

I do not love him because he is good, but because he is my little child.

How should you know how dear he can be when you try to weigh his merits against his faults?

When I must punish him he becomes all the more a part of my being.

When I cause his tears to come my heart weeps with him.

I alone have a right to blame and punish, for he only may chastise who loves.

 

판사

 

당신의 뜻대로 그에게 말하소서. 저는 제 아이의 죄를 압니다.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 아이이기에 사랑합니다.

그의 잘못과 장점을 잴 때 그가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은 알까요?

제가 그를 벌할 때 그는 더욱 저의 일부가 됩니다.

그를 울게 할 때 제 마음은 함께 웁니다.

저만이 비난하고 처벌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꾸짖을 수 있기에

 

 시집 『기탄잘리』는 103편의 산문시로 각각 제목은 없고 쓴 것들을 모은 시들이다. 기트는 노래, 안잘리는 두 손 모아 바친다는 의미로 기탄잘리는 바치는 노래라는 뜻이다. 처음에 소개한 시 「들어주소서」는 『열매 따기』 시집에 나온 시로 제목이 「기도」로 소개되기도 한다. danger를 위험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위험은 당연히 피해야 하는 거니 여기선 고난으로 해석함이 맞다.

 타고르는 간디, 아인슈타인, 로맹 롤랑과도 친분이 있었다. 캘커타의 영원한 가난과 벵골의 사회경제적 쇠퇴를 슬퍼했고, 마지막 5년은 만성적인 고통과 두 번의 오랜 병으로 아팠다. 1937년 말에 타고르가 의식을 잃었을 때 시작되었고 혼수상태로 한동안 거의 죽을 뻔했다. 1940년 말에 비슷한 병이 왔고 회복되지 않았다. 1941년 8월 7일 80세의 나이로 타고르의 죽음과 함께 오랜 고통의 시대는 끝났다.

 형은 41년 7월 30일 타고르로부터 글을 받았다. ‘나는 내 친구들과 그들의 손길을 지상의 마지막 사랑으로 원한다...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답례로 어떤 사랑, 어떤 용서를 받는다면, 저는 말 없는 종말의 축제로 건너가는 배를 밟을 때 그것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 타고르의 시를 최초로 번역한 김소월의 스승 김억의 명시를 헌사하며 마친다.

 

먼 후일         김억(호 ; 김안서)

 

사나이의 생각은 믿기 어렵고

아낙네의 사랑은 변키 쉽다고

사람들은 모두다 한숨지으나

먼 후일에는 그것조차 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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