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399] 리뷰: 함신익 오케스트라 심포니송 '생상스와 도허티를'조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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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99] 리뷰: 함신익 오케스트라 심포니송 '생상스와 도허티를'조명하며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1.03.0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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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일요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시니의 <신데렐라>서곡으로 시작한 함신익 오케스트라 심포니송의 마스터즈 시리즈 II. 로시니의 서곡은 팝콘 하나 들고 아무 생각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때리는 영화 한 편과 진배없다. 기술의 진보로 재현하는 방법만 다를 뿐, 21세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환상적이고 솜사탕 같은 19세기 무대 음악이다. 목관 파트는 상큼하고 젊음은 싱그러웠다. 오보에에 이어 피콜로와 클라리넷 등 종횡무진 누비는 청량한 목관이었다. 함신익은 겨우 서곡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목관 주자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마스터즈 시리즈 II

생상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김태형 같은 논리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연주자에게 제격이다. 빛나는 착상이나 반짝이는 영감이 덜하고 다분히 직조적인 작품이 김태형과 함신익에 의해 여물어졌다. 환상곡풍의 1악장은 지극히 안정적이면서 차분하다. 이런 뭔가 잡을 수 없는 듯 허공을 걷는 듯한 전개는 왜 초연 때 관객들이 냉담하고 어리둥절했는지 감이 잡히게 한다. 역시나 오늘 한국에서의 청중도 150여년 전의 초연 시 프랑스에서의 관객들과 별다른 차이 없다. 1악장 연주하는 사이에 객석에서 프로그램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3번이나 났다. 1악장 1주제는 생상스의 제자이기도 한 포레의 모테트 <Tantum ergo>에서 차용하였는데 탄툼 에르고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지존하신 성체'라는 가톨릭 성가다. 발랄한 2악장을 거쳐 박력 넘치게 3악장이 종료되고 함신익이 2악장에서 부드러운 솔로로 감미로움을 더해주었던 호른 수석을 가리키자 자신들에게 손짓을 한지 알고 환호를 지르고 있던 뒤의 합창석의 관객들이 파도타기 하듯이 일어나 마치 텔레비전의 오디션 프로그램 관객 응원을 보는 듯해 재미있었다. 지휘봉이 가리키는 방향과 의미를 안다면, 곡의 내용을 안다면 자신들이 와~하고 일어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인원의 편성인데 생상스의 교향곡 2번은 로시니에서와 전혀 다른 오케스트라 교향곡 사운드를 끄집어낸 함신익의 능력이 증출하다. 악기 배치도 비올라가 지휘자 오른편에 있고 첼로가 안에 들어가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에 끼어 있고 더블베이스 4명은 비올라 뒤에 있다. 금관도 왼쪽부터 호른, 트럼펫, 트롬본 그리고 팀파니를 한 줄로 세웠다. 조금만 심포니송이 더 여력이 되어 현의 숫자가 많으면 좀 더 육중할 텐데. 로시니에서 와인 같은 달콤함이었다면 생상스의 교향곡 2번에서는 이탈리아의 밝은 태양 같은 소리가 났다. 여러모로 멘델스존이 연상된다. 생상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멘델스존의 피아노협주곡 라단조가, 그리고 같은 조성(비록 단조로 시작하긴 하지만 A라는 근음), 우아한 칸타빌레의 2악장과 타란텔라로 된 4악장이 공통점인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가 말이다. 생상스 교향곡에서는 악기 배치의 탁월한 묘안인지 제2바이올린보다 작품에서 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비올라의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나 비올라 수석의 적극성과 몰입은 다른 비올라 파트 연주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타란텔라 리듬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연주회에만 가면 커튼콜 떄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기립박수치는 고정관객들이 있어서.

차라리 밴드, 관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면 경향성이 더 맞을 거 같은 도허티는 전형적인 미국 음악이요 온갖 미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혼종 되어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다. 마이클 도허티의 '선셋 스트립'을 들으니 199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키보드 주자로 참가해서 연주한 도허티의 선배 작곡가인 존 애덤스의 '쳄버 심포니'기억이 소환되었다. 그 당시 독일의 은사께서 너무 이런 악풍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연주로 미국의 고속도로가 아닌 투박한 한국의 산천, 무주구천동이나 태백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민초들의 모습을 그려낸 한국 토속 작곡가의 작품을 듣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오늘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음악회는 생상스를 제외한 앞과 뒤에 비록 시대와 민족성, 풍토는 다르지만 암울한 시기에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유희의 기능, 현실적인 오락 음악으로서의 선곡을 한 이유가? 마스크가 필요 없던 아름답고 소중했던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우리 국민들에게 날개(The Wing)을 달아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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