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가락 4개인 테니스 선수의 값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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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가락 4개인 테니스 선수의 값진 승리
  • 기영노 전문 기자
    기영노 전문 기자 kisports@naver.com
  • 승인 2021.02.1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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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손 모두 손가락이 4개씩인 영국의 프란체스카 존스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 본선에서 처음으로 이겨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존스는 지난 14일 호주 멜버른에서 벌어진 WTA 투어 필립 아일랜드 트로피 단식 본선 1회전에서 중국의 정싸이싸이를 2-1(6-2 3-6 6-2)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정싸이싸이는 세계랭킹이 44위이고, 프란체스카 존스는 245위에 그치고 있다.존스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손가락이 4개씩이고, 발가락은 오른쪽이 3개, 왼쪽 4개 뿐인 선수다.

 

 

손가락 두 개로 올림픽에 출전한 이상균

한국에도 손가락이 두 개인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까지 했었다.

1956년 멜보른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레슬링 그레꼬로만 형은 수준이 너무 낮아서 선수를 출전시키지 못했고, 자유형에서만 플라이급의 이정기, 밴텀급의 이상균, 라이트급의 오태근 선수 등 3명의 선수만 파견했다.

그런데 밴텀급에 출전한 고 이상균 선수는 정상적인 선수가 아니었다.

이상균 선수는 레슬러로서는 부적합하게도 왼손이 손가락이 두 개뿐인 결정적인 장애를 가진 선수 였다.

이상균 선수는 올림픽이 열리기 5년 전, 1951년 6.25전쟁 때 슈루탄을 다루다가 터지는 바람에 왼 손 가락 3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상균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아예 손가락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상균 선수는 손가락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손목을 사용하는 기술과, 팔을 빗장 지르는 암 훅 등을 자신의 주 무기로 개발해 실전에 사용했다. 그리고 다른 선수보다 두 배 이상 체력 훈련을 많이 했다. 왼 손가락 3개가 없는 것을 다른 것으로 보강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기술과 체력훈련을 엄청나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른 손 악력은 다른 선수들보다 휠씬 강해서 일단 상대 선수를 잡았다하면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이상균 선수는 그야말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이상균 선수는 멜보른 1차전에서 필리핀의 라벨 선수를 폴로 꺾었다.

이상균 선수는 비록 왼손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그 대신 기술 파워 그리고 막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선수도 쉽게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차전에서도 파키스판의 지할 선수를 판정으로 누르고 3회전에 올랐다.

3차전은 운이 좋아서 부전승을 거두고 4회전에 진출했다.

4회전에서 일본의 이이즈까 선수에게 판정패를 당했지만, 4회전 결과 벌점이 이이즈까가 이상균 보다 많아서 이상균 선수가 5회전에 올랐다.

당시는 레슬링 경기 방법이 일종의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5회전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당시 5회전 진출자가 4명 뿐이었기 때문에 4강 진출을 의미했다.

그러나 4강에 올랐다고 해도 메달은 보장되지 않았다.

4강에 오른 4명의 선수 가운데 점수를 따졌기 때문이었다.

경기 룰을 보면 승패에 따라서 폴로 이기면 벌점이 0점이고, 판정승은 1점 그리고 판정패는 3점을 잃는 등 어떤 내용의 승리와 패배를 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부과 되었고, 점수가 적을 수록 유리했다.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실패

이상균 선수는 5회전에서 우승후보인 이란의 야코비선수를 만났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자유형 레슬링이 강한 나라인데, 야코비 선수는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선수 였다.이상균 선수는 야코비 선수에게 아깝게 판정으로 패해 4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아깝게도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이승균 선수를 이긴 야코비는 은메달을 땄다.

이상균 선수는 멜버보른 올림픽 이후 은퇴를 해서 후진을 키웠는데,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196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레슬링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장창선 선수가 바로 이상균씨가 은퇴를 해서 지도자로서 키운 선수 였다.

그 후 레슬링은 84년 LA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6대회 연속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는데, 바로 이상균 선배와 같은 투혼을 후배들이 이어 받은 것이다.

고 이상균 씨는 태릉선수촌장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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