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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기원전 108년에 (위)滿조선 평정하고 한나라가 봉한 5개 제후국의 위치를 보니 황하 기슭이네! 5개 제후국 말고 漢四郡을 한반도 평양에 따로 두었나? 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4)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0.12.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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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선열전 마지막 부분을 한자 원문과 대조하여 보면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네 개 군으로 정했다. 참은 홰(획, 확)청후에 봉하고, 음은 적저후에 봉하고, 겹은 평주후에 봉하고, 장은 기후에 봉했다.

최는 아비가 죽어 매우 공이 있음으로 열(온)양후에 봉했다.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封參爲淸侯. 陰, 狄苴侯. , 平州侯. 長, 幾侯. 最以父死 頗有功, 爲涅(溫)陽侯.

頗 자못 파, 매우, 퍽, 편파(偏頗) 편파

 

조선이 4개 군이 되었으니 뒤에 나오는 설명은 당연히 4개 군에 대한 설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웬걸 익숙한 낙랑, 진번, 임둔, 현도는 이름이 없다.

읽기 힘든 글자들이 마구 나온다.

세어보니 4개 제후가 아니라 5개 제후다.

  1. 그럼 한사군을 설치한거야? 한오군을 설치한거야?
  2. 아니면 한사군 따로 있고 (위)滿조선 망한 뒤에 5 제후국이 따로 생긴 거야?
  3. 새로 만든 사군은 홰청후, 적저후, 평주후, 기후에 해당하고 홰청후나 앞의 4개 제후국중 하나는 滿조선의 수도 왕험에 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한사군은 없다. 있다면 (위)滿조선 후에 5개 제후국이 생겼을 뿐이다.

 

사기 조선열전이 편찬된 것이 기원전100년 경이라고 하면, 200년 후인 기원후 100년 경에 반고의 한서가 만들어졌다. 한서 『漢書』「朝鮮傳」은 卷95 「西南夷兩粤朝鮮傳」에 있는데 사기 조선열전을 거의 그대로 베꼈으며 유일하게 첨가된 글자가 낙랑,진번, 임둔, 현도이다.

 

한서가 만들어지고 190년 후, 사기가 만들어지고 390년후인 290년에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했다. 삼국지 위서30 동이전은 조선을 따로 기술하지 않고, 동이전 안에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한을 두어 기술하였다.

 

440년경에 범엽의 후한서가 만들어졌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東夷列傳)은 부여,읍루, 고구려, 동옥저, 예, 한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진수의 삼국지와 비교하면 ‘예’가 따로 들어간 것이다.

자세한 비교는 다음 기회에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고)조선은 기원후 100년경 만들어진 (전)한서를 마지막으로 중국 사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마천이 (고)조선을 평정했다고 쓴 지 210년 지나서부터다.

범엽이 후한서를 쓸 때는 (고)조선을 이어받은 동이계 나라마저도 없었거나 아니면 동이계 나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고)조선을 이어받았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을려고 조선에 대하여 쓰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위)만조선이 없어지고 들어선 5 제후들의 영토는 당연히 과거 (위)만조선의 영토였다. 그 곳은 지금 어디일까?

먼저 사기의 원문에 변화가 없었을까? 사기의 판본과 필사본을 정밀 대조하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기의 판본을 추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역사책 史記에 주를 단 역사책들이 있다. 사기집해와 사기색은, 사기정의 등이다.

사기집해(史記集解)는 80권으로 송나라의 배인(裴) (AD 420-479)이 썼다고 한다. 대략 저술연도를 460년이라 하자. 배인의 아버지는 배송지(裴松之)로 진수 삼국지의 주석서를 썼다.

사기색은(史記索隱)은 30권으로 통일 후 당나라의 사마정(司馬貞)이 쓴 책이다. 대략 저술연도를 730년이라 하자.

사기정의(史記正義) 는 장수절(張守節)이 통일 후 당나라때 쓴 책이다. 대략 680년이라 하자.

(위 집해, 색은, 정의에 대한 글은 ‘돈마니의 블로그’에서 옮겨 썼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many0203&logNo=3010008166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사기에 달린 주석을 볼 때 사기의 저술연대에 가까운 순서가 집해, 정의, 색은이다.

 

색은의 편찬시기는 대략 730년 경이다.

(위)滿조선후 5제후국이 생긴 지 대략 840년이 지난 때이다.

668년에 고구려가 망하고 840년이 지나 조선 성종 연산군시대인 1500년경에 역사책을 보고 고구려 마지막 위치에 설명을 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해당 지역에 가서 전승(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을 채취했는지 알 수 없음으로 기존의 책을 가지고 대조하여 설명을 달았다고 봄이 합리적일 것이다.

 

史記 권20 “건원이래후자연표 建元以來侯者年表- 한무제 건원(建元) 연간 이래(즉 한무제 이후 (제)후(侯)를 책봉한 연표”에 ‘색은’이 주로 설명을 달았다. 설명은 대부분 발음 (한자 읽는 방법)이어서 위치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1)평주 는 양부(梁父)  (2020년 현재 산동성 태안시. 색은이 주를 단 것이 아님)

2)적저 는 발해 (勃海) (이원환 주. 사기열전 표에 나오는 것임으로 한서지리지 발해군으로 본다)

 

3)홰청 은 제(齊)

3-1) ‘색은’이 단 설명에서 ‘홰’는 강이름이고 ‘제’에 있다고 함. 강 이름은 홰수,획수 혹은 확수일 것임.

3-2) 원문 : 홰(획,확)청() 【索隱】표(表)에는 제(齊)에 있다고 한다. ‘ 음은 ‘獲’(획, 확, 홰)이고, 강 이름이며, 제에 있다. 또한 음이 ‘乎卦’의 반절이다.

3-3) 이원환 주 : 한서지리지 하동군 호(홰, 획, 확濩)택현이 있는데 삼수변의 濩임. 택은 습지를 말하는 택 澤. 고조선때 강이 있었던 지역으로 봄. 강 이름은 확수 ((獲, 濩) 水) 일 것임. 인근에 강이 많음.

 

4)기 는 하동 (河東) (이원환 주 하동은 황하의 동쪽. 한서지리지에 나오는 하동군으로 본다)

5)열(온)양 은 (表)에는 제(齊)에 있다고 하고, 지(志)에는 남양(南陽)에 속해있다.

한대(漢代) 남양군(南陽郡) 열양현(涅陽縣)은 현재 허난성[河南省] 난양시[南] 전핑현[] 호지진[侯集]과 덩저우시[鄧州市] 랑동진[穰东镇] 사이에 해당한다.( (2020년 현재기준임 '색은'이 주를 단 것이 아니고 한국사데이터베이스가 주를 담)

 

이를 토대로 5제후국의 위치를 지도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이원환 편집
이원환 편집

 

 

(위)滿조선의 5개 제후국을 천천히 다시 찾아보자.

황하 연안에 제후국이 있다. 기후, 홰(확)청후,평주후, 적저후 이다.

특히 홰청후 도읍지로 추정되는 한서지리지 하동군 확(홰, 획, 호)택현은 지금의 산서성 진성시 양성현이다. (위키백과 하동군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8F%99%EA%B5%B0_(%EC%A4%91%EA%B5%AD)

산서성 진성시 양성현은 상나라 유적지 (기원전 1600년~1046년)인 '은허'가 있는 하남성 안양시 은도구 은도로에서 직선거리 약 150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황하문명 '은허'는 (고)조선의 문명인가? (계속)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편집한 것이다.

제후국명

제후공

연호 원봉 몇 년

제후국명

제후 공적

연호 원봉 몇 년

平州 【索隱】表在梁父

朝鮮兵至降侯.

三年(B.C. 108)四月丁卯, 元年. 【集解】如淳 : 唊音頰. 四年((B.C. 107), , 無後, 國除.

평주(平州) 【索隱】표(表)에는 양보(梁父)001에 있다고 한다


양보(梁父) : 현재 산둥성[东省] 타이안시[泰安市] 있다.

조선의 장수로서 한나라 군대가 이르자 투항하여 후(侯)가 되었다.

3년(B.C. 108) 4월 정묘,

후(侯)겹() 원년이다.

【集解】여순(如淳)이 말했다. “‘ 음은 ‘頰’이다.”

4년(B.C. 107),

후(侯) 겹()이 죽었는데, 후손이 없어,나라가 철폐되었다.

荻苴 【索隱】音狄蛆. 表在勃海.

朝鮮兵至圍之降侯.

三年(B.C. 108)四月, 朝鮮韓陰元年.

적저(荻苴) 【索隱】음은 ‘狄蛆’이다. 표에는 발해(勃海)에 있다고 한다.

조선의 상(相)으로서 한나라 병사들이 이르러 포위되자 항복하여 후(侯)가 되었다.

3년(B.C. 108) 4월, 후(侯) 조선상(朝鮮相) 한음(韓陰) 원년(元年)이다.

【索隱】表在. 音獲, 水名, 在. 又音乎卦反.

朝鮮尼谿相使人殺其王右渠 來降侯.

三年(B.C. 108)六月丙辰, 侯朝鮮尼谿相(侯) 元年.

홰청() 【索隱】표(表)에는 제(齊)에 있다고 한다. ‘ 음은 ‘獲’이고, 강 이름이며, 제에 있다. 또한 음이 ‘乎卦’의 반절이다.

조선 니계상(尼谿相)으로 사람을 시켜 그 왕이었던 우거(右渠)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여 후(侯)가 되었다.

3년(B.C. 108) 6월 병진, 후(侯) 조선 니계상(尼谿相) 참(參) 원년이다.

【索隱】音機. 表在河東.

朝鮮王兵圍朝鮮降侯.

四年(B.C. 107)三月癸未, 侯張䧄. 【索隱】韋昭云 : 「䧄, 姑洛反.」 歸義元年. 六年((B.C. 105), 侯張䧄使朝鮮, 謀反, 死, 國除.

기(幾) 【索隱】음은 ‘機’이다. 표에는 하동(河東)에 있다고 한다.

조선(朝鮮)의 왕자로서 한나라 병사들이 조선을 포위하자 항복하여 후(侯)가 되었다.

4년(B.C. 107) 3월 계미, 후(侯) 장각(張䧄)이 【索隱】위소(韋昭)가 말했다. “䧄은 ‘姑洛’의 반절이다.” 귀의(歸義)하니 원년이다. 6년((B.C. 105), 후(侯) 장각(張䧄)이 조선에 사람을 보내어 모반하도록 하니, 죽고 나라는 철폐되었다.

涅陽 【索隱】表在, 志屬南陽.

朝鮮路人, 兵至, 首先降, 道死, 其子侯.

四年(B.C. 107)三月壬寅, 康侯元年.

太初二年(B.C. 103), 侯死, 無後, 國除.

열양(涅陽) 【索隱】표(表)에는 제(齊)에 있다고 하고, 지(志)에는 남양(南陽)에 속해있다.001한대(漢代) 남양군(南陽郡) 열양현(涅陽縣) 현재 허난성[河南省] 난양시[阳市] 전핑현[镇平县] 호지진[侯集] 덩저우시[鄧州市] 랑동진[东镇] 사이에 해당한다.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으로 한나라 병사들이 이르자 먼저 항복하였으나 도중에 죽어 그 아들을 후(侯)로 봉했다.

4년(B.C. 107) 3월 임인, 강후(康侯) 자최(子最) 원년이다.

태초(太初) 2년(B.C. 103), 후(侯) 최(最)가 죽고 후손이 없어 나라를 철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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