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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3 / 계동 할머니

김홍성
  • 입력 2020.12.2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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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큰아버지네 마루방은 큰아버지의 작업실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이젤만 세워져 있고, 어떤 때는 작업중인 캔바스가 이젤에 올려져 있었다. 큰아버지가 마루방에 테라핀 냄새를 풍기며 유화를 그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마루방에 세워져있던 큼직한 인물화가 생각난다. 큰아버지가 그린 계동 할머니다. 도록을 찾아보니 나온다. 그림 속의 계동할머니는 남색 마고자 차림이다. 상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갠 자세로 단정하게 앉아 있다. 팔꿈치 밑에는 작업 중인 색동천이 깔려 있고 배경에는 재봉틀이 놓여 있다.

계동 할머니는 어머니 형제들의 막내 숙모인데, 어른들은 그냥 어머니라고 불렀다. 계동할머니는 4학년 밖에 안 된 나를 서울로 전학시키라고 권유한 장본인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릉 큰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서양화를 배우러 일본 유학을 가도록 도운 분도 계동 할머니였다.

계동 할머니가 다녀가신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를 이리 온하고 불렀다. 이전에는 들어본 기억이 없는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아버지는 뒷마당 우물가에 화분을 조르르 늘어놓고 분갈이를 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 옆에 가서 섰다. 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말없이 화분을 매만지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아버지의 하이칼라 머리가 반지르르 빛났고 포마드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아버지의 포마드 냄새를 싫어했다. 그 냄새는 아버지의 가죽 잠바 냄새나 소독약 냄새처럼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어머니가 참기름을 발라서 구운 김 냄새에 식욕을 느끼고 젓가락을 들었다가도 아버지의 포마드 냄새를 맡고 느끼했던 기억이 뇌리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손질을 마친 화분 하나를 한쪽으로 치워놓고 불쑥 서울 학교로 전학 가겠니?’하고 물었다. 역시 아주 부드럽고 나직한 음성이었고, 서울로 전학 갈 꿈도 꾸지 않았기에 얼떨떨했지만 서울에 간다는 자체가 좋았다. 

2학년 때 우리 집에 다니러 왔던 계동 외삼촌들 중 한 분을 따라 서울에 갔던 적이 있다. 지금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4학년 때는 서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찍은 네모난 흑백 사진들이 그 일을 증명한다. 덕수궁 앞에서, 서울역 앞에서, 시청 앞에서 찍었다. 건물이나 풍경 위주로 찍은 사진들이어서 내 모습은 아주 조그맣게 나왔다. 반바지에 운동화와 스타킹을 신고 운동모자를 쓴 그 아이는 분명 나지만 지금은 사진 찍은 기억조차 없다.

서울 혜화동의 초등학교 운동장이 떠오른다. E 초등학교는 개교를 앞 둔 사립 학교였다. 시험 보러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좁은 운동장에 가득했다. 교실에 들어가 시험 보고 나오니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계동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험 잘 봤니?’하고 물어서 문제가 아주 쉬웠어요.’라고 했는데, 발표 보러 가서 보니 불합격이었다. 계동할머니와 어머니는 몹시 서운해 했다.

결국 혜화동의 혜화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혜화초등학교는 원래 혜화동이나 명륜동에 사는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여서 우리 반에는 나처럼 주민등록만 혜화동으로 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혜화초등학교는 이른바 일류중학교합격률이 높은 학교여서 나처럼 위장 전입을 하고 전학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른 동네에서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중학교 시험에 떨어지자 재수를 위해 6학년을 다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사나운 아이들도 있았다. 유리알을 빼내서 유리알을 감싸고 있던 금속이 가시처럼 돛친 반지를 낀 주먹으로 약한 아이들 얼굴을 때려 피를 보는 걸 즐기는 아이도 있었다. 눈에 흙을 끼얹어 눈을 못 뜨게 해놓고 마구 발길질을 해대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패거리를 이루어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돈은 물론이고 통학을 위한 버스표나 전차표도 빼앗았다. 그 아이들은 그것으로 군것질을 하거나 만화를 봤다. 어떤 아이는 개피 담배도 사서 피웠다.

그 아이들에게 버스표나 전차표를 빼앗긴 날은 별 수 없이 걸어야 했다. ‘국산사자음보미실(국어,산수,사생,자연,음악,보건,미술,실과)’ 교과서와 참고서와 자습서와 수련장과 도시락을 담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돈암동 아리랑 고개를 넘을라치면 진땀이 나서 온 몸이 젖었다.

정릉으로 건너가는 다리 난간에 가방을 걸쳐 놓고 쉬면서 시커먼 물과 시뻘건 물이 섞여 흐르는 개천을 굽어보다가 개천에서 풍기는 독한 냄새를 맡고 기침을 한 날도 있었다. 다시는 그 아이들에게 버스표나 전차표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날도 바로 그 날이었지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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