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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소설] 화분

모은우 전문 기자
  • 입력 2020.11.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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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여니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넘실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풀냄새가 섞인 것 같은 진한 냄새가 사뭇 반가웠다. 고개를 돌려 방안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날짜에 붉은 색 사인펜으로 비뚤비뚤한 원이 하나 그려져 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두니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굵은 빗방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내리는 소나기들은 그녀가 약속을 지켰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편지와도 같았다.

거실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이 작은 공간이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 이다. 창문의 바깥쪽에 걸려 있는 받침대에 화분들을 올려놓자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가 화분들의 가련한 꽃들을 흠뻑 적셔주었다.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녀는 자신을 태우고 남은 것들을 호수에 뿌려 달라고 했었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 말라가는 여린 잎사귀처럼 가여웠다. 그렇기에 작은 단지에 들어있는 그녀의 하얀 흔적 역시 애처로울 정도로 가벼웠지만 그것을 들고 있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녀의 흔적을 한 움큼 집어 거울 같은 호수에 뿌릴 때마다 내 몸의 일부를 잡아 뜯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돌아보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동안 침대만이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었으며 하늘은 그녀가 세상으로 자유롭게 나가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구름이 되고 싶어. 어디서든지 노닐 수 있는 구름이.”

그녀는 가끔 병원의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남은 것들을 호수로 데려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구름이 되고 싶었기에 자신을 호수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혼이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녀는 호수의 물이 구름이 되면서 자신의 영혼도 함께 오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장례식은 갑작스러웠으며 최대한 단출하게 치러졌다.

그리고 그날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장례식 장을 잠시 나와 무심하고 떨어지고 있는 소나기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문뜩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소나기가 오는 날 떠날지도 몰라.”

장례식이 치러지지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틀리기 바랐다. 아니 틀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마지막까지 그녀가 옳았다.

내가 만약 하늘로 떠나 구름이 되면 내 기일에 다시 소나기가 돼서 돌아 올 거야. 그럼 우리는 그때 다시 만날 수 있어

언젠가 그렇게 말한 그녀는 밝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이윽고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비가 돼서 흘러가 버리면 나는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남들보다 더 큰 두려움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의미조차 남기지 못하고 잊힌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그녀의 목소리에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상태는 호전되고 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군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계신 의사선생님은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가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나을 수가 있는 건가요?”

의사선생님께 몇 번이나 확인을 받고 원장실을 나섰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복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병원 벽의 차가운 색감도, 신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들리는 날카로운 소음도, 걷지 않을 때 들리는 처연한 적막함도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옥죄지 못하였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녀에게 선물을 건네고 싶다. 그녀가 전부터 가지고 싶다고 했던 화분은 어떨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사주면 좋을 것이다. 이제 곧 그녀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그것들을 마음껏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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