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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01] Critique: 바리톤 김대수 독창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9.01 09:24
  • 수정 2020.09.0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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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31일 월요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정통 독일 가곡 연주회라니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연주회는 가야 된다. 아니 필자의 취향상 꼭 가줘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음악회 개최 유무가 불투명해서 그렇지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은 민간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 영산아트홀, 일신홀 그리고 오늘의 금호아트홀 연세까지 요즘 음악회 분위기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특히나 독창회는 프로그램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하는 백화점식 나열인데다 무슨 집안 잔치의 끝판왕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교회 집사, 권사, 장로님이 음악회 관객 중 다수를 차지한다.(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 클래식 음악회 관객 동원에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잘 모인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 노래를 앞에서 부르니 동원된 관객들이 집중이 잘 될 리도 없고 딴짓하고 분위기 흐리는데 크게 일조한다. 한국에서의 관객의 수는 주최자나 심적으로 좋을 뿐 음악회 수익과는 하등 상관없으며(대부분이 유료 관객이 아닌 초대손님이니까)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몰려 작품과 연주에 집중도 할 수도 없는 분위기 대신 정말 올 사람만 몇 사람 와서 몰입하고 진심을 다해 박수를 쳐주는 광경이 너무나 훈훈하고 감동적이다.

바리톤 김대수 독창회
바리톤 김대수 독창회

바리톤 김대수의 성량은 금호아트홀 연세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나중에 그가 부르는 독일 오페라(가급적이면 모차르트가 아닌 다른)나 오라토리오도 듣고 싶을 정도였다. 첫 곡인 <아델라이데>에서부터 풍부한 성량에서 울리는 딕션의 선명함이 시어에 따른 장면전환과 맞물려 조화를 이루었다. 피아니스트 박은정은 명확한 강약의 대비에 속도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완급조절로 김대수와 함께 했다. 그러고 보니 반주자 박은정은 작곡과 출신이다. 작곡과를 나왔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곡에 대한 구조와 텍스처는 일반 기악과 출신보다 분석과 학습이 용이한데 많은 경험에 기반한 노하우로 피아노 파트를 '배경'으로서 '정경'인 성악과 같이 만들어나갔다. 노래의 단순한 보조적인 기능이 아닌 독일 가곡 특유의 피아노 부분의 강화로 인한 음악 배경 설정을 박은정은 탁월하게 보조를 맞춰주었다.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다섯 번째 곡인 '5월이 되면 들에는 풀이 돋아나고'는 제목 그대로 청량함을 선보이며 싱그러운 젊음을 과시했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은 거룩해질 것이네'라는 가사와 함께 거센 몰아부침 후에 이어지는 후주는 성악가가 소리꾼으로 박수갈채를 갈망하는 쇼(Show)적인 요소를 배제한 노래와 반주의 절묘한 배합이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작품이 그 앞에 놓이고 살아남는다.

바리톤 김대수와 피아니스트 박은정
바리톤 김대수와 피아니스트 박은정

지난 주의 푸치니 오페라 4편과는 반대로 확실히 가곡은 힘이 덜 들어간다. 영원히 이대로 파묻혀 들을 수 있는 거 같이 편안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다른 관객과의 거리도 3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쾌적하다. CGV에 고작 30명 정도 띄엄띄엄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될까? 금호아트홀에서의 아늑함과 김대수의 목소리가 영혼만으로 사랑받으면서 행복하다. 2부 리스트 첫 곡 <기쁘고 한편 슬프고>와 브람스의 <그대의 푸른 눈>는 슈베르트, 슈만 이후의 가곡 아니랄까 봐 처음부터 화음의 변화에서 오는 신비함과 낭만성이 가득히 퍼졌다. 반음계 화성의 표본이요 후기낭만파 음악의 정수로서 리스트의 경건함(?)과 브람스의 소박함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라는 설교 대목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의자에 놔둔 소지품 떨어지는 소리가 중년 부인에 의해 발생해 잠깐 감흥이 깨진 거 빼고는 무능 도원이 따로 없다. 그리고 볼프의 해학과 괴짜 3인방 <아이헨도르프 가곡집>에서의 악사, 학자, 으스쟁이 등을 만나고 헤어진다. 사회의 간지러운 면을 꼬집고 긁어준다. 그만의 블랙 유머가 가사에 따라 변하는 문학적 서술에 스며들고 김대수는 그걸 캐치해서 다양한 톤칼라(톤파르벤이라고 해야 하나?)로 전해준다.

'오 사랑하라, 사랑 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감염될지 알 수 없는 대규모 유행 상태에서 사람 간 접촉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와중에 일면식도 없는 성악가의 연주회에 그저 독일 가곡이 듣고 싶다고 멀리 신촌까지 발을 떼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며칠 전 43세의 나이로 대장암으로 요절한 마블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의 메시지였다. 여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리고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것이 힘들다는 내용의 할리우드 스타지만 우리네 일상과 너무나 닮은 하소연에 보스만이 친구인 조시 개들에게 남긴 메시지다.

"이제 비가 그쳤어. 그러니 밖으로 나가서 깊은숨을 들이쉬어. 지금의 공기는 하늘이 LA로 출근하는 차에서 나는 매연으로 인한 연기들로부터 3주간 휴가를 얻은 후에 뿜어내는 공기라 너무나 신선한 공기고 그 비는 '천사들의 도시'(Los Angeles)에게 꼭 필요했던 긴 샤워를 내려준 걸 거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오늘 우리가 맞은 아름다움과 경외로움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해. 우리는 햇빛이 됐든 비가 됐든 구름이 됐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순간순간을 즐겨야 해. 그리고 내일 비가 또 오더라도 나는 바깥에 비를 놓고 비를 잡고 싶어."

리스트도 오늘 음악회에서 말한다. 이런 인간성이 상실한 증오와 혐오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서로 사랑하라고.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상대방을 경계하고 색안경 끼지 말고 보며 오해하고 험담하지 말고 헛똑똑이로 자기를 과신하지 말고 그저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라.... 이 영원불멸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가곡 독창회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와 깊은숨을 들이쉬니 연세대의 교정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이젠 가을이구나... 내일도 코로나가 계속되겠지만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특별하고도 평범한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감사와 사랑으로 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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