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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00] Critique: 그랜드오페라단의 올댓 푸치니, 올댓 오페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29 09:05
  • 수정 2020.08.2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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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8일 금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작년부터 해서 올해까지 가장 많이 접한 지휘자가 카를로 빨레스키다. 2019년 고양시 교향악단을 통해 4번, 보름전에 대한민국국제오페라페스티벌에서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통해서 한번, 총 다섯 번의 콘서트에 레퍼토리도 생상스와 브람스 교향곡에 문태국, 양인모 등 한국의 영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에 이어 올해는 카를로 빨레스키 모국의 음악인 이탈리아 오페라를 연거푸 감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푸치니다. 푸치니 한편이 아닌 올댓 푸치니, 올댓 오페라(All that Puccini, All that Opera)라는 제목의 그랜드오페라단이 주최하는 푸치니 4대 걸작의 갈라 콘서트다.

그랜드오페라단이 주최한 '올댓 푸치니, 올댓 오페라'
그랜드오페라단이 주최한 '올댓 푸치니, 올댓 오페라'

<라보엠>을 시작으로 <토스카>와 <나비부인>을 거쳐 <투란도트>까지 남녀 주인공의 대표적인 아리와와 합창을 겪들인 장장 2시간이 넘는 오페라 투어였다. 말이 갈라지 한편도 아닌 4편에서 엑기스만 뽑아내 감상해서 마치 4편을 다 본거 같은 푸치니 종합선물세트다. <라보엠>의 미미 역을 맡은 소프라노 윤정난은 안정적인 호흡을 밑받침한 아주 정확한 인토네이션과 딕션이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중저음부터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고음역까지 능수능란하게 오가면서 '내 이름은 미미'에서부터 저력을 드러냈다. '내 이름은 미미'의 중간부 '하지만 겨울이 지나가면'이라는 대사와 함께 오케스트라에서 나오는 푸치니 특유의 현 사운드를 빨레스키와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뽑아낼 땐 황홀했다. 푸치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리다.

그랜드오페라단 단장 및 예술총감독 안지환과 메트합창단

바통을 이어 받은 <토스카>의 김라희는 넓은 소리의 질감으로서 기품 있으면서 고귀한 토스카를 연출했다. 그건 나중에 2부에서 여왕으로의 등장에 기대를 품게 만드는 전주와 같았다. 역시나 <토스카>에서의 그림 같은 한편의 멜로드라마 오케스트레이션은 연출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내어 푸치니를 더욱 빛냈다. 클라리넷은 영롱했으며 더블베이스의 저음은 육중했다. 그리고 '오묘한 조화'에서는 성당지기도 보고 싶었다.

8월 28일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올댓 푸치니

푸치니의 정수를 한 무대에서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될 건데 1부가 끝나니 지쳤다. 라보엠과 토스카 오페라 2편을 연속으로 하이라이트를 통해 감상하고 나온 듯했다. 나만 그런 걸까? 다른 관객들은 어떨까? 흔치 않은 기회이자 열창이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들을 수 있는 거 자체에 감사하지 못한 필자의 배부른 투정일지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듣는 사람이 힘들다고 그러면 무례일 테니. 그렇게 2부가 열리고 <나비부인>이 등장했다. 미미였던 윤정난이 초초상으로 분해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 좌중을 한 순간에 장악해 버리는 그녀의 카리스마에 굴복하고 만다. 역시나 '오묘한 조화'에서의 서주처럼 플루트,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솔로로 펼쳐지는 '어느 개인 날'의 전주 부분은 환상적이고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나비부인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 핀커튼 역의 테너 김동원과 지휘자 카를로 빨레스키

<투란도트>에서는 합창단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소프라노 김은경이 류 역을 맡아 부르는 '들어보세요 왕자님'은 애절하고 절절하게 연모의 정을 읊어 나갔다. 사교계의 여왕이지만 정절의 대명사인 이탈리아판 '성춘향' 토스카에서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황제국의 여왕으로 변신한 김라희는 '이 궁전 안에서'에서 다시 한번 절개와 기백을 뽐내었다. 지휘자 카를로 빨레스키는 지치지도 않는다. 엄청난 스태미나로 강건하게 그리고 역시나 오늘도 무슨 토스카니니의 재림같이 암보로 지휘한다. 작년부터 가장 많이 접한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은 지휘자인데 그의 지휘를 보고 있자면 듣는데도 힘들어하는 필자가 무안해진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학구열과 강한 프라이드를 과시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놀라운 소화력이자 진정한 청춘이다. 거장이다. 카를로 빨레스키 같은 지휘자에게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붙이는 거다. <투란도트>의 마지막도 라장조로 끝난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 들었던 함신익과 심포니의 송의 교향곡 2번도 라장조였다. 라장조가 내포하는 환희와 승리의 메시지가 여기서도 뿜어낸다. 왕자와 공주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이루며 뜨거운 포옹과 함께 운집한 관객들이 환호와 함께 외치는 <투란도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가사는 '당신에게 영광을'이다. 그 당신은 코로나 시대,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대상이다. 푸치니가 전하는 라장조 에너지다.

출연진과 프로그램

입장 마감은 다 돼가는데 단돈 4천원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 찌질한(?) 필자를 보고 대신 프로그램북 한 권 구입해준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단장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평은 쓸 수 없었을 테다. 일반 기악 콘서트도 아니고 성악가들이 주축이 된 오페라 갈라 콘서트의 출연진 면면을 살피는 게 곡을 아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정난, 김라희에 김은경까지 세 명의 디바를 기억해야겠다. 윤정난이 투란도트를 부르고 김라희가 초초상이었다면? 재미있는 상상이다. 분명 조만간에 그렇게 만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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