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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95] 두 사람의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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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일 사이에 연거푸 두 사람의 한국 작곡가가 별세했다.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한국에 도입하고 대한민국 예술원 음악분과 회원인 강석희 서울대 작곡과 명예교수가 향년 86세로 16일 오전 1시 13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4년에 태어난 고인은 19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인 ‘원색의 향연'을 발표하며 컴퓨터로 만든 전자 음향을 국내 음악에 도입한 1세대다. 1969년 ‘현대음악 비엔날레'를 주관하기도 했으며 '범음악제'를 조직, 한국에 현대음악의 보급과 전파에 앞장선 인물이다. 다른 한 명은 1943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성장한 후 서라벌예대 기악과를 입학하고 1967년부터 2006년 정년 퇴임 때까지 39년간 마산중학교와 김천중,고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향년 77세로 18일 오후 역시 숙환으로 별세한 작곡가 이안삼이다. 

1970년대 초반 독일 유학시설 스승 윤이상(왼쪽)과 함께한 강석희(오른쪽) 교수. 사진 대한민국예술원 제공

작곡가 강석희는 1970년 독일 유학을 떠나 당시 독일서 활동하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으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1982년부터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펼쳤다. 주요 작품으로는 국악관현악곡 ‘취타향'(1987), 서울 올림픽 성화 음악 ‘프로메테우스 오다'(1988), 오페라 ‘초월'(1997), 첼로 협주곡 ‘베를린'(2003), 음악극 ‘보리스를 위한 파티'(2003)와 ‘평창의 사계'(2006) 등이 있다. 실험적인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1976년 ‘파리 작곡가제전’ 입상을 비롯해 ‘대종상 음악상’(1979), ‘대한민국 작곡상’(1979),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0) 등을 수상했다. 1969~1992년 서울 국제현대음악제 ’판 뮤직 페스티발(Pan Music Festival)‘의 기획 및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1982~2000년 19년간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트럼펫을 전공하던 이안삼은 '가고파'등의 명곡을 쓴 김동진 작곡가의 권유로 트럼펫 대신 붓을 들어 오선지에 선율을 쓰기 시작했다. 서술한 대로 39년간 경상도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면서 2년간 미국에 건너가 브루클린 음대 작곡과를 수학하고 줄리어듬 음악원 지휘과를 수료했다.

좌로부터 신귀복, 이안삼,이수인,최영섭 작곡가

“작품에서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작곡은 하나의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며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음을 구조화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강석희의 발언은 그의 음악 철학을 함축한다. 강석희는 한국 현대음악의 거장으로서 학계에서 엄청난 권위와 영향력을 끼쳐 80년대부터 2010년 초반까지 한국 작곡계의 사조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진은숙을 비롯 그에게 사사한 수십 명의 제자들이 세계적으로 퍼져 스승의 음악관을 계승하였으며 음악은 감정의 예술이 아닌 철저한 계산하에 설계되는 구조물로 취급되었다. 그게 또 20세기 후반의 서양현대음악의 경향이었다.

작곡가 강석희 (1934-2020)

그에 반해 이안삼은 한국 가곡 전성기(1970~1980년대)를 되살리려 ‘클래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63세로 정년퇴임을 한 후 서울로 올라와 2008년 인터넷에 ‘이안삼 카페’를 오픈해 동호인을 모집했다.(정말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계에서는 이안삼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중파 방송에서의 외면과 학계에서의 무관심과 하류 수준으로 천대받던 가곡들이 새로운 활로를 띄게 되어 외면받던 가곡이라는 장르가 가곡의 실 소비자와 향유층을 만나면서 자생하고 부활하게 되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불러보고 시를 써 문학에 심취해보면서 단순한 소비층, 타자로서 머무른 게 아닌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소비자들을 만나게 되니 전문 성악인들이 합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이 작사한 곡이 전문 작곡가를 만나 시와 음악의 결정적인 조합체인 가곡으로 탄생하여 다른 이들에게 불리는 희열과 단절되다시피 한 문화유산의 맥을 잇는 자부심도 갖게 된다. 즉 작곡가와 연주자, 저명인사와 비평가, 제작자 등 음악이라는 매개로 직접 참여하면서 심리적, 경제적, 예술적인 유희로서 그 유희 안에 관계를 맺고 서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고 적용시켜 고사 직전에 있던 한국 가곡을 '시장의 힘'으로 부활시켰다.

작곡가 이안삼(1943-2020)

학계에서는 존경해마지않은 현 기성세대와 음악대학교수들의 스승으로, 실질적인 음악 행위 현장에서는 한국의 슈베르트 급으로 칭송받으며 애정 되며 팬클럽까지 조성한 작곡가로, 두 사람의 행보와 인식은 현저히 다르다. 작곡가 강석희를 주제로 한 논문을 수백 편이다. 이안삼에 관한 논문은 없는 반면 이안삼 가곡집과 음반은 수십 종이다. 이제는 이렇게 양분된 형태를 벗어나 위 두 경우를 모두 포섭하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아우른 한국의 작곡가가 나올 때이다. 이미 존재한다. 새 시대를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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