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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조막손 메이저리거 짐 에보트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8.13 11:06
  • 수정 2021.06.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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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유튜브 체인지 그라운드(바로가기)

조막손 메이저리거 짐 에보트

시범종목으로 열렸던 1988서울 올림픽 야구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

미국은 당연히 에이스 짐 에보트를 선발로 내보냈고, 에보트는 일본의 강타선을 7안타 3실점으로 틀어막고, 티노 마르티네즈의 홈런 2방에 힘입어 5대3으로 이겨 금메달을 획득했다.

비록 시범경기이기는 하지만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미국에 바친 에보트는 오른손이 없는 조막손 선수였다. 야구는커녕 일상생활을 해나가기도 어려운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에보트는 선천적으로 오른 팔꿈치 이하의 손이 없었다.

아버지 마이크와 어머니 케이시 사이에 미국 미시간 주 프린트에서 태어난 에보트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6살 때부터 혼자 공 던지기를 즐기고 11살 때 리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고교 졸업을 앞둔 그에게 메이저리그 팀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36라운드에 에보트를 지명하고 입단을 권유했다.

그러나 "지금 프로에 가면 나는 단순히 구경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내 능력을 평가받고 싶다"며 "왼팔로 돈을 벌고 싶지, 오른팔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입단 권유를 거절하고 미시간 대학에 입학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만약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로 갔다면, 물론 프로에서도 마이너리그라는 적응기간이 있었겠지만 대학을 가서 야구를 하는 것 보다 휠 씬 어려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야구를 중도에 포기했을 지도 몰랐다.

에보트는 미시간 대학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다가 1988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에 미주대륙의 야구선수권대회라고 할 수 있는 팬암 대회에 출전해서 8승1패 방어율 1.70으로 미국을 은메달로 이끌었다.

에보트는 1987년 미국 최우수아마추어 선수에게 주는 설리번상과 골든 스파이크 상을 받은 뒤 미국 야구대표팀의 에이스로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딴 것이다.

 

 

에보트, 메이저리거가 되다

에보트는 이듬해 메이저리그 캘리포니아 엔젤스(현 애너하임 엔젤스)에 입단했다.

에보트는 모든 야구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메이저리거로 발탁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꿈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손이 하나 없다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을 믿고 열심히 노력을 하였습니다."

최고 94마일(약 151km)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에보트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신인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경우는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에보트 외에 한국의 박찬호 등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만큼 에보트는 아마추어에서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에보트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뉴욕 양키즈,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의 명문 구단을 거치며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87승 108패 4.25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이왕이면 100승을 채우고 싶었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었다.

1991년에는 18승11패(방어율 2.89)로 사이영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뉴욕 양키즈 선발 투수였던 199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는 대망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 날 인디언스는 캐니 로프턴(센타 겸 1번 타자, 3타수 무안타). 카를로스 바에르가(2루수 겸 3 번타자, 4타수 무안타), 매니 라미레스(지명 타자 겸 6번 타자, 3타수 무안타) 짐 토미(3루수 겸 8번 타자, 2타수 무안타) 등 쟁쟁한 타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돌아가면서 25번이나 타석에 들어서서 에보트로 부터 단 한 개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에보트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메이저리그 헤드코치를 꿈꾸고 있지만 지금은 스프링캠프에서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200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너하임 에인젤스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는 시구를 해서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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